K2코리아 전신으로 지난 2월 창업
은둔경험 청년 사회적 '자리' 만들어
아직 어렵지만 '희망' 있어

▲ 13일 은둔경험 청년으로 구성된 은둔청년 지원 법인 '안무서운회사'를 셰어하우스 '안무서운집'에서 만났다. (사진 왼쪽부터) 유승규 대표, 진현정 은둔고수, 정인희 은둔고수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지난 6일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소통TF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사회와 단절이 장기화한 청년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청년도약준비금 등의 구체적 지원책도 약속했다.

지난 1월에는 광주광역시에 이어 서울시에서도 사회적 고립 청년 지원 조례가 본회의를 통과했고, 앞서 지난해 말 현 정부 역시 '청년 취약계층 과제 발굴 연구' 용역을 진행하는 등 공백으로 남아있던 공식 통계를 추진하고 있다.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 등으로 분분했던 이름도 '은둔·고립 청년' 등으로 모이는 모습이다.

다만, 아무리 정밀한 공식 통계 결과가 나오고 제도가 생기고 예산이 마련된다 해도, 지원의 방향에 관한 구체적이고 적절한 고민이 없다면 작동할 리 없다.

지난 13일 은둔경험청년 당사자 기업 '안무서운회사'를 찾았다. '은둔도 스펙'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에게서 은둔 경험 당사자로서 은둔청년 지지 방법에 대한 고민을 들었다.

■ 은둔이 은둔'경험'이 될 수 있도록

'안무서운회사'는 올해 첫발을 뗀 작은 신생 회사다. 직원은 자립 은둔청년 4명. 전신인 K2인터내셔널 코리아(이하K2코리아) 직원 출신 청년 두 명과 K2코리아의 당사자 멘토 육성 프로그램 '은둔고수' 시즌2 참여자 두 명이 은둔고수, 셰어하우스 관리, 프로그램 기획, 은둔청년 실태 알리기부터, 계약서 관리, 지원사업 신청 등 경영 실무까지 나눠맡고 있다.

작은 회사가 감당하기에 많은 일이지만, 이들이 그래도 버티는 배경에는 '은둔 경험'이 실제로 '자원'으로 작동한 경험들이 버티고 있다. 유승규 대표, 정인희 활동가, 진현정 활동가는 각각 5년, 10년, 3년여의 은둔 경험이 있는 은둔 당사자로, 각각 전신 K2코리아에서 은둔고수 1기, 2기, 2기 활동을 거쳤다.

우울증, 공황장애, 긴 취업 준비에 따른 소외감 등이 한 데 엉켜 있는 탓에 돌이켜보기 힘겹고, 떳떳하게 말할 수 없었던 '흑역사'는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비로소 나의 '경험'이 됐다는 설명이다.

진현정 활동가(이하 '현정') "(은둔고수는) 5개월 과정이었는데, 초반에는 전문 상담사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그 기간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데 안도도 느끼고, '내가 이래서 그때 그런 소외감을 느꼈구나', '이래서 자꾸 우울해졌구나' 하고 파악할 수 있었다. 또, 보통 사람에게는 '집에만 있었다'는 건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과거인데, 이걸 베이스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니까, (자립이) 더 당겨진 것 같다."

'경험'은 경험을 펼칠 자리가 마련되면서 '역량'이 됐다. 안무서운회사는 교육과정을 마친 은둔고수들과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와 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회사설립 이후 소셜 펀딩 플랫폼 '오마이컴퍼니'의 리워드 차원에서 당사자 부모님과의 상담도 진행했다.

정인희 활동가(이하 '인희')"(리워드 상담에) 40~50대 중년 가장분이 상담에 나왔다. 우리가 2030 청년들이다 보니, 우습게 보실 수도 있을 텐데, 진지하고 솔직하게, 자제분 이야기뿐 아니라 자기 이야기도 해주시더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유승규 대표(이하 '승규')"(은둔고수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은둔청년 부모님 중에) 기존 전문가들에게 가본 분들이 많다. 그런데, 전문가도 은둔청년에 대해서는 '교재'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 가족과 비슷하게 은둔 경험이 있는데, (은둔 경험에서) 나온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하는 니즈가 많다. 자녀와는 이야기 나누기 어려우니까."

직업인으로 '일하는 경험'에서 얻은 새로운 지식도 자립을 유지하는 힘이 됐다. '생각보다 별것 아니'라는 깨달음이다.

승규 "부모가 자신의 불안을 자식에게 투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번에 또 안 되면 어떡할래?' 자꾸 묻는다든지. (그런 말이 반복되면) 완벽히 준비돼야만 사회에 나갈 수 있을 것 같고, 자꾸 겁을 먹게 된다. 사회에 나와서 보면, 허술한 어른들도 많고, 모든 직장이 완벽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 더 많은 일이 아니라 더 '맞는' 일

다만, '일하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곧 일자리 '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이들은 선을 그었다. 당장 절박한 것이 '자신감'인 때가 더 많다는 설명이다.

승규 "코로나19가 한참일 때 코로나 특수로 공공일자리가 많이 생겼다. 거기 참여한 당사자가 있는데, 오히려 자기효능감이 떨어져서 돌아오더라. '일자리 늘리기'를 위해서 만든 일자리라, 그냥 앉아있다 오고. 내가 꽤 쓸모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은둔청년 지원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양적으로 '뿌리는' 그런 상황은 안 생겼으면 좋겠다."

특히 자립을 막 시작한 청년들에게는 일 경험에도 '단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승규"(나 역시) 잘 모를 때는 천지개벽하듯이 잘할 수 있겠지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았다. 단계별 성장이 중요했다. '중간다리'가 필요하고,K2에서는 청년재단 일 경험 프로그램이 그 역할을 했다. 생각보다 재능이 있고, 일할 수 있는 은둔청년들이 많다. 고학력 청년도 많고. (중요한 건) 갑자기 풀타임으로 근무하지는 못하니까, 일 경험의 기회를 단계별로 주는 거다. (K2코리아와 안무서운회사에서) 인희 님도 풀타임으로는 일하지 않고 있다."

▲ 안무서운하우스 입구 © 팝콘뉴스

'집' 역시 은둔과 자립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중요한 도구다. 현재 안무서운회사는 K2에서 운영하던 은둔청년 당사자 셰어하우스 '안무서운집' 두 동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현재 활동가 일부를 포함해 일곱 명이 여기서 거주하고 있다. 사무실도 다락이 있는 셰어하우스 한편에 마련했다.

인희 "작년 5월부터 여기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데, 요리를 그전까지는 하나도 못 했다. 공동생활하면, 요리 실력이 있는 사람이랑 없는 사람이 함께 식사 당번을 한다. 요리하는 법 배우라고. 이게 '짬'이 생기니까, 요리가 너무 잘 되더라. 레시피를 보면 예전에는 '하나도 모르겠다' 싶었는데, 이제는 알겠고. 뿌듯하고, 보람도 느끼고 신기하고, 요리하는 게 즐겁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다시 '재은둔'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지지대' 역할도 한다. 은둔청년은 정도는 다르지만 조금씩 집에서 '불편'을 느낀다. 그렇다고 혼자 생활은 곧장 은둔으로 빠질 우려가 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 나누고, 활동가들이 마련한 연극 등 교류 활동을 원한다면 참여하는 새로운 환경이 '소속감'과 '안도', 활동에 대한 자신감으로 돌아온다는 설명이다.

승규 "K2에서 공동생활 등을 경험하고 창업까지 하게 된 은둔고수들이 사회에서 버틸 수 있는 내성, 유연성이 더 생기는 것 같다. 공동생활을 하지 않고, 은둔고수 등 가느다란 실로만 연결된 분들은 지지대가 없으니까 고꾸라지는 경우가 많더라. 우리는 같이 살고, 최근에는 인수위가 방문한다든지 쓸모나 효용감을 느낄 일도 늘고 있다."

현정"예전에는 마스터(유승규 대표)가 '인터뷰해 볼래요?' 물으면, 항상 '얼굴 공개해요?'부터 물었다. 나중에 검색했을 때 내 얼굴과 함께 은둔 경험이 뜨면 흠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나중에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면, (은둔 경험에 대한) 인식 변화에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분야에서 많이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 사회에 은둔청년 '자리' 만들 수 있다는 '희망'

이처럼 자립으로의 '다리들'을 만들기 위해 안무서운회사는 백방으로 뛰고 있다.

K2코리아가 지난 2012년부터 재정 상황으로 문을 닫은 2021년까지 관계를 맺은 청년재단, 행복공장, 성북구 등과의 사업 계약을 통해 활동비를 충당하고 있고,2월 설립 이후, 사회적기업진흥원과 사단법인 씨즈에서 운영하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유승규 대표는 "펀딩을 통해 활동비 천만 원을 모으기도 했고, 1~4월 인건비를 일부 지원하는 단체도 있었고, 인수위의 400억 원 규모 바우처 사업 언급도 있어서, 운영 여력이 생길 것 같다. 예상보다는 상황이 낫다"라면서도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승규 "실제로 정책을 만들고, 이 정도 예산편성이 되기까지는 K2코리아와 직원들의 역할이 있었다. 은둔 경험 당사자가 창업한 거의 첫 회사인데, 공모전을 하면 업력이 없다 보니까 떨어지더라. 지금 있는 소중한 노하우가 소모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교재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될 텐데 싶은 마음이다"

회계나 행정 등을 담당할 '중간 지원조직'이 부재해 '번아웃' 위험에도 처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승규 "내실이 찰 시간이 없다. (은둔청년 지원) 기회를 만들기 위해 중요한 인터뷰나 정책에 목소리 내는 자리에 가야 하고, 내부 프로그램을 개발할 시간이 또 필요하고, 행정적으로 기부금 처리할 여력도 없다. K2코리아와 청년재단은 공동생활 프로그램을 연간 2억 원 규모로 3년 정도 지원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이 생길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기반이 무너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사업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희망' 덕이다. 은둔 경험이 '스펙'이 될 수 있는 사회적인 자리, '직업'을 같이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다.

특히, 최근 인수위 청년TF가 ▲청년정책종합지원 플랫폼 구축 ▲청년도약준비금 제공 등 정책 마련을 공언하고 나서면서, 기대를 구체화해보고 있다. 은둔청년 상담 지원 관련 전문화 과정을 만들거나 만일 은둔청년 자립을 돕는 일본의 '이바쇼' 등 '안전한 공간'이 국내에도 생긴다면, 운영자로도 나설 수 있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승규 "광주광역시에 은둔형외톨이 지원센터가 생기지 않았나. 거기 상담사 교육과정에 제가 가야 한다. 교재가 없으니까 당사자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고, 인터뷰를 통해 유효한 (지원)기술을 찾는 중이다. 은둔고수분들이 직접 첫 단계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결자해지'하는 방법으로 사업을 진행한다면, 충분히 수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취 시에 은둔이 심화하기도 하는데, 취약계층의 안부를 도시가스 검침원이 묻는 것처럼,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

▲ 사무실 벽면에 붙은 엽서. '은둔도 스펙이다'라고 적혀 있다 © 팝콘뉴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국내 은둔청년 지원 활동의 큰 축을 담당하던 K2코리아가 폐업하면서, 두 곳이었던 셰어하우스 중 한 곳은 문을 닫았다. 일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10명이 참여할 수 있는 은둔고수 지원사업에는 40명이 몰렸다. 집은 현재까지 사는 사람들이 자부담하고 있다.

유승규 대표는 "성북구 셰어하우스가 문을 닫으면서, (입주를 위해) 경합을 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은둔고수 사업 등도) 추가적인 스펙을 얻으려 참여하는 거면, 떨어져도 다른 사업 참여하면 되지, 싶을 텐데, 누구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게 마음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은둔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에서는 여전히 '희망'이 묻어난다.

승규 "(용기를 내달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용기를 낼 수 없는 환경이라는 걸 경험해왔다. 은둔이 심하면, 방문 상담도 도움이 안 된다. 누가 가도 다 외부인이고 신뢰할 수 없으니까. 그들의 경로에서, 유튜브든 음식 배달이든 뭐든 콘텐츠를 잘 만들어서 우리가 그들의 마음을 흔드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그전까지는 지금 힘든 게 당연한 거니까, 용기를 낼 수 있으면 내시고, 못 내시면 기다려주세요. 우리도 이 과정까지 수많은 지원으로 여기까지 온 거니까, 여러분한테도 그게 갈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현정 "아, 세수는 안 해도 이는 꼭 닦으라는 얘기도 드리고 싶다. 은둔 생활 끝내고 나가려고 할 때 치과에서부터 돈이 너무 깨지면 멘탈이 거기서부터 털리기도 하니까."[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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