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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사람을 잇는 낭독봉사단체 '책 읽는 사람들'

"내 목소리로 남을 도울 수 있어 행복감 느껴"

편슬기 기자 | 기사입력 2021/02/16 [14:40]

세상과 사람을 잇는 낭독봉사단체 '책 읽는 사람들'

"내 목소리로 남을 도울 수 있어 행복감 느껴"

편슬기 기자 | 입력 : 2021/02/16 [14:40]

(팝콘뉴스=편슬기 기자) 사람과 사람 간 단절이 익숙해진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연결'을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타인과의 소통과 세상으로 향하는 길까지 막혀버리기 직전인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목소리'로 작은 속삭임부터 큰 울림까지 전하는 사람들.

 

바로 낭독봉사단체 '책 읽는 사람들'이다.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창구, '소리'


▲ 낭독봉사를 진행하고 있는 (좌측부터)조아라 씨, 김미성 씨, 김보영 씨, 최미정 씨(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소리'는 세상과 이어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다. 점자 역시 시각장애인들의 세계를 넓히는 데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지만 소리가 전하는 풍부한 감정은 서로 결이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귀로 듣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적지 않다.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오디오 북, 다양한 장르가 담긴 드라마 CD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 많은 작품이 출시됐고, 되고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해당 플랫폼의 접근성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기종의 스마트폰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청각 보조 기능을 지원한다. TTS 음성엔진으로 화면의 텍스트를 인식, 음성 정보로 변환해 제공하는데 위에 나열한 플랫폼들이 이러한 기능에 적합하지 않으면 시각장애인들이 아무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낭독봉사 단체들이 기부해오는 양질의 오디오 콘텐츠들은 시각장애인들의 문화생활의 지평을 넓혀줄 뿐만 아니라 세상의 크고 작은 소식들, 타인들의 소소한 이야기 등을 전하고 있어 중요한 '소통 창구' 중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이들이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기는 카세트플레이어와 CD플레이어인데 카세트플레이어 생산이 중지됨에 따라 요즘에는 주로 CD로 만들어진 음성 도서를 도서관에서 대여하고 반납하는 형태로 구독이 이뤄지고 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조작이 익숙한 젊은 세대의 경우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전자 도서 및 음성 도서를 대여해주는 센터에서 운영 중인 스트리밍 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기도 한다. 해당 서비스들은 이미 오디오북이 나오기 전부터 시각장애인들이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다만 낭독봉사자들을 통해 기증받은 콘텐츠 위주라 전문 성우들을 기용해 녹음한 작품보단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은 과거에 비해 연출이나 연기 등에 더욱 치중한 작품들도 나오고 있어 시각장애인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낭독 봉사 대상이 되는 글은 단ㆍ장편 소설, 수필, 시나 에세이 혹은 샘터나 좋은생각과 같은 잡지에 실린 투고 글,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 클래스나 행사, 모임 등의 소식지까지 광범위하게 다룬다.

 

'책 읽는 사람들'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집필한 책을 봉사자들이 녹음해 기부하기도 했다. 복지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책을 쓴 작가들이 무척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지금이야 '낭독봉사'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이 높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낭독봉사' 개념은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소리와 사람들이라는 녹음실과 낭독봉사단체 '책 읽는 사람들'을 운영 중인 장영재 대표는 10여 년 전 우연히 인천 소재의 시각장애인복지관으로부터 낭독봉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의 연사로 초청받으면서 '낭독봉사'의 길에 발을 들이게 됐다.

 


"보다 생생하고 실감 나게" 낭독 교육과 봉사 병행


▲ 녹음과 편집, 음향효과 등 기술부문 전반을 맡고 있는 장영재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장영재 대표는 "당시 교육을 위해 방문했던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녹음을 돕다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좀 더 실감 나고 생생한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책 읽는 사람들'의 구성 계기를 밝혔다.

 

단순히 책을 읽어 내용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제대로 말하는 법과 책 속 등장인물에 깊게 몰입해 감정을 연기할 수 있도록 봉사자들에게 가르친다면 시각장애인들이 듣는 콘텐츠의 질이 높아지고 만족도 또한 높아지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2014년에 발족한 '책 읽는 사람들'은 고양시자원봉사센터에 등록된 봉사 단체로 일반인 남성 봉사자 1명, 여성 봉사자 6명 총 7명으로 구성된 봉사단 1기가 처음 꾸려졌고 지금까지 쭉 이어져오고 있다. 올해 초급반 인원은 총 16명이 모집됐다고 한다.

 

낭독봉사와 교육은 우선 짧은 오리엔테이션을 거쳐 낭독 교육에 참여할 신청자들을 받으며 진행된다. 그렇게 해서 모인 인원은 장영재 대표가 사비로 운영하는 녹음실에서 3개월 단위로 낭독에 필요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게 된다.

 

매년 11월부터 12월까지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고 1월부터 3월까지는 초급반 수업을, 4월부터 6월까지는 중급반, 7월부터 9월까지는 고급반 수업이 차례로 진행되며 약 1년의 수료 기간을 거친다.

 

이 기간 동안 수강생들은 발음과 발성, 호흡법에 대해 배우고 단순히 쓰인 글자를 읽는 것이 아닌 청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위 '말하는 법'을 익힌다. 소리가 올곧게 뻗어나가는 방식, 어떻게 표현해야 청자들의 흥미를 이끌어내며 극을 재미있게 이끌어갈 수 있을 지 등에 대한 내용이 주 커리큘럼이다.

 

그러나 교육을 끝까지 이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작년 모집된 낭독 교육 신청자들은 35명이었지만 수료 기간을 끝마친 최종인원은 3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낭독 교육을 마친 사람에 한해  녹음반에서 본격적으로 낭독 봉사에 투입된다.

 

대부분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콘텐츠 기부를 하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기간은 보통 6개월 이상이며 정기적으로 교육에 참석해야 하는데 낭독 봉사 참여 진입 장벽이 높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한 시각장애인복지관 관계자는 "음성 도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자료 중 하나로 점자나 전자 도서를 접하기 어려운 분들이 선택하기 때문에 청자가 도서 내용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낭독 규칙을 숙지한 후 낭독봉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성우 활동 경력이나 낭독복사 경험이 있을 경우 연습낭독 기간 조정이 가능하다고 부가적으로 덧붙였다.

 

장영재 대표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낭독봉사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것은 시각장애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라며 "내가 어떤 기술이 있어야 하고 실력이 좋은 게 우선시 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이 제일이다"라고 강조했다.

 


"봉사와 함께 찾아 온 일상 속 작은 변화들"


▲ 각자 읽은 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봉사자들(사진=팝콘뉴스).     ©팝콘뉴스

 

이날 녹음실을 방문한 봉사자들은 총 4명으로 각자 1~3년의 낭독 교육 및 봉사를 진행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과 차례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이도 사는 곳도 제각기 달랐지만 이곳에 모여 봉사를 하며 느끼는 점은 모두 한 마음 한 뜻이었다.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뿌듯함과 내 목소리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한다는 것이었다.

 

■최미정(50대 중반, 서울 서대문구 거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연찮게 낭독 봉사를 알게 된 최미정 씨는 올해로 교육 및 낭독봉사 2년 차다. 그는 평생 봉사에 대한 짐을 지고 살아왔다고 얘기했다.

 

줄곧 앞만 보고 내 가족만 챙기고 살았는데, 2년 전 은퇴를 한 후 나도 사회에 도움이 됐으면 싶어서 봉사를 알아보게 됐고 그렇게 낭독 봉사와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는데 매번 배울 때마다 난관에 봉착한다며 아직도 많이 노력해야 한다며 쑥스럽게 말했다. 올바른 발성과 친구에게 말을 건네듯 읽기 위해 매일 아침 성경 읽기 연습을 한다는 최미정 씨. 선생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자연스럽게 말해보려 애쓰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 속상한 심정을 전했다.

 

초반과 달리 생활 속 모든 글을 접할 때마다 학생의 마음으로, 성우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됐다는 말에 기자가 "그럼 몸에 완전히 밴 것 아니냐"고 묻자 "그 정도 까진 아니다"라며 쑥스러운 듯 손사래 쳤다.

 

최미정 씨는 사실 젊을 때 꿈이 성우이기도 했고 아직까지 제2의 꿈이라면 꿈일 수 있는데 봉사도 하면서 함께 꿈을 이루고자, 자아 실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김미성(44세, 경기도 일산 거주)

김미성 씨는 3년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도서관을 갔다가 우연히 '어서와 낭독은 처음이지?'라는 포스터를 보게 됐다.

 

이전부터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어와서 목소리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가 운명적으로 낭독 봉사 포스터를 접하게 되면서 용기를 내 교육을 신청하게 된 김미성 씨.

 

그는 "낭독봉사에 대해 가족 전체가 알고 있어서 남편도 두 자녀들도 저를 많이 지지해 준다. 평상시 외출할 땐 가지 말라고 붙잡는데 낭독봉사에 간다고 하면 순순히 보내주는 아이들이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럽다. 언젠가 모자간에 낭독봉사에 함께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는 낭독봉사를 3년 동안 진행하며 생긴 직업병(?)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자녀들이 잠들기 전 읽어주는 동화책을 아이들보다 더 열성적으로 나서서 읽어주게 된 점이다. 상황 표현과 캐릭터 연기에 다소 과도한 열정을 쏟아붓다 보니 종종 "엄마 그냥 원래대로 읽어줘"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며 민망한 듯 웃었다.

 

■조아라(36살, 일산 정발산동 거주)

조아라 씨는 낭독 교육을 받고 활동한 것은 햇수로는 3년 차, 실제 활동은 2년째다. 낭독봉사에 대해 미리 알고는 있었지만 실력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선뜻 시작하기가 어려워 몇 년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 일산으로 터를 옮기면서 근처에 낭독봉사단체인 '책 읽는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됐는데 처음엔 문을 두드릴 용기가 없었는데 낭독 교육도 함께 해주신다는 말을 듣고 찾아오게 됐다고 했다.

 

현재 조아라 씨는 경기도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소식지가 오면 그걸 녹음해서 시각장애인들이 들을 수 있는 사서함에 보내고 있고, 그 외에 소설이나 에세이 등 글 녹음으로 낭독봉사를 하고 있다.

 

그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은 500여 명이나 된다.

 

조아라 씨는 "20대 땐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싫었고 누군가가 나를 돕거나 내가 남을 돕는 일 없이 혼자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30대가 되고 아이를 낳고 보니 알게 모르게 내가 남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고 살고 있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세상이 굴러가는 틀 안에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해 힘닿는 데까지 봉사에 활동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김보영(43, 김포시 운양동 거주)

김보영 씨는 오늘 모임에서 가장 막내로 교육을 받기 시작한 지 몇 달을 조금 넘긴 새내기 교육생이다.

 

김보영 씨는 "코로나19로 단체 교육은 못 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따로 방문해 연습하고 있다. 처음 교육을 받았을 때 정말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다. 어렸을 적부터 따뜻한 감성이 담긴 목소리를 통해 사람들을 품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줄곧 생각해왔다"며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도 아이를 키우는 주부인데, 우연한 계기로 시를 접하게 됐고 어르신들 앞에서 시를 낭송하면서 무대공포증을 극복하고 남들 앞에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더불어 자신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형태를 잡게 됐다고 회상했다. 

 

'읽는 것'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그렇게 다듬은 목소리를 통해 남을 돕고 싶다는 것, 그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수업 때마다 선생님께 받는 지적이 아프게 다가오기 보단 기쁘게 다가온다는 김보영 씨. 자신이 부족한 점을 정확히 긁어주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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