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맛과 멋을 알린다

(팝콘뉴스=김진경 기자) [문화예술 산업은 전무후무할 정도로 대중화되고 파편화되어 일상 곳곳에서 숨 쉬고 있다. 소설가는 온라인 이야기 플랫폼을 통해 독자를 만나고 에세이 작가는 블로그를 통해 출판사를 만난다. 새로운 예능인은 공중파보다 팟캐스트와 유튜브 채널에서 더 쉽고 빠르게 인지도를 얻고 있다. 청년 예술가들에게 그리고 대중에게 예술은 어느 때보다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는 말은 성공하기 쉬워졌다는 뜻이 아니다. 그만큼 더 치열해졌다는 의미다. 어느 때보다 더욱 치열해진 문화예술업계에 뛰어든 청년들은 누굴까.]

(사진=유물시선)
(사진=유물시선) ©팝콘뉴스

"<유물시선-돌>은 사람들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나오는 '돌'에 열광하는 반응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그동안 한국사는 시대별로, 주제별로 묶여 주로 설명되고, 재질별로 소개되는 경우는 많이 없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돌'을 시작으로 유물을 '재질'별로 소개하는 시리즈를 선보이는 전통문화 큐레이터가 있다. BTS를 비롯 케이팝의 세계적 인지도 상승과 함께 전통문화에 대한 재발견과 개발이 한창이다. 기성 기업이나 예술가 이외에도 많은 에디터와 인플루언서가 전통문화에 주목하고 있다.

트위터 계정 '한국의 맛과 멋'과 출판브랜드 '유물시선'을 운영하고 있는 조부용 에디터도 그중 하나로 최근 유물을 중심 주제로 굿즈와 도서를 제작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1 문화 콘텐츠 큐레이터는 아직은 대중적으로 다소 생소한 직업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특히 전통문화 그중에서도 '유물'에 집중하게 되었나요?

"문화 콘텐츠 큐레이터라는 말보다는 '콘텐츠 에디터'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익숙하실 것 같습니다. 종이 잡지와 각종 콘텐츠 플랫폼을 비롯해 요즘은 인플루언서나 유튜버도 그 역할을 하고 있죠. 저는 원래 영화를 소개하는 플랫폼에서 에디터(기자)로 일했었는데요. 책, 여행 정보를 큐레이션 하는 일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분야의 큐레이션 콘텐츠 플랫폼들을 접했는데요."

"한국 유물이나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온라인 플랫폼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쪽 분야가 막상 찾아보면 양질의 정보들이 담긴 콘텐츠들이 많거든요. 국가에서 만든 자료나 웹진도 있고, 공공 박물관 전시들의 콘텐츠도 정말 훌륭하고, 문화유산으로 남은 자료나 유물은 이미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을 통해 검증된 것들이죠. 이런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되는 상품이나 책, 영화나 드라마들에도 재미있는 기획이 많고요."

"그런데 그런 정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중간 단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를테면 전통이나 유물 관련 정보를 얻는 '아이즈매거진' 같은 곳이랄까요? 정말 약간의 흥미만 있어도 솔깃하게 되는 전통, 유물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플랫폼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러나 단순 호기심에서 끝나지 않고, 깊은 관심, 혹은 덕심(?)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 한국사 뉴스레터를 보내고, 한국 유물에 대한 책을 만들고 관련 상품들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2 한국 전통문화의 매력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조부용 큐레이터가 특별히 느끼는 매력은 무엇인가요?

"유럽이나 서양 국가에서는 전통 유적, 유물로 관광 산업을 이어가지만, 한국은 다른 것 같아요. '현재'의 문화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지금 한국 사람들의 감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상님들의 감각을 발견할 때 재미있고, 더 큰 의미로 다가와요. 예를 들어, 케이팝이 미국과 일본 음악 등의 영향을 받았지만, 우리나라만의 특색을 녹여 동시대에서 가장 세련된 음악을 만들고 있잖아요. 한국 유물들도 보다 보면 그런 점이 많아요. 중국 등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지만, 그대로 따라 하지 않고 차별성을 두었고, 한국만의 멋을 잘 버무린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옛날에도 우리나라 조각이나 공예품, 그림 등을 보고 극찬하던 다른 나라 사람들의 글들을 보면, 지금과 그 감성의 결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3 최근 BTS가 국악과 한복을 케이팝에 적용하는 등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는 추세인데요. 이런 젊은층의 관심을 실감하신 일화가 있나요?

"저 역시 방탄소년단의 팬이어서 그 부분을 실감하고 있는데요. 제가 '한국의 맛과 멋'이라는 계정을 하필 트위터로 시작한 것도 연관이 깊습니다. 그때쯤에 저도 계정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고, 전통문화 굿즈나 한복을 만드는 곳들이 뜨기 시작해서, 그런 곳들을 제 계정에도 많이 소개했어요. 가끔 제 계정에도 케이팝 팬들이 '이 유물이 전시된 곳이 어디냐' 하는 질문을 댓글로 달리기도 하고, 번역 계정들이 인용 형태로 일본어나 영어로 번역하여 설명하여 게시하는 경우도 있을 때,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넓어졌다고 느꼈어요."

"지금 젊은 층들은 전통을 한 번 하는 이색 체험이 아닌 일상의 놀이처럼 받아들인다는 느낌이었어요. 더 맛있는 약과 파는 곳을 찾아다니고, 경복궁 생과방, 궁궐 달빛기행, 전통 콘셉트의 디저트나 음료 카페에 가기도 하고요. 전통 관련 굿즈들을 보고, 단순히 '예쁘다' '귀엽다'라는 이유로 구매하고요. 저는 오히려 요즘의 젊은층이 여러 나라의 문화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전통문화도 어렵다거나 하는 거부감 없이 쉽게 다가가고, 다른 취미와 다르지 않은 방법으로 일상적으로 즐기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4 큐레이터로 활동하시면서 유물을 모티브로 한 상품을 꾸준히 개발 및 판매 중이신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나 상품이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처음 출판한 <백제금동대향로 동물백과>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동세대 또래들과 다르지 않게 <해리포터>와 지브리,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데, 어느날 '백제금동대향로'를 보는데 한국판 <신비한 동물사전> 같아 보였어요.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니, 동물과 인물 캐릭터가 85가지나 되었어요. 그 안에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도 있었지만, 현실 세계에 없는 신수들도 많이 있었는데요. 불교와 도교적 도상들이 하나의 작품에서 어우러지는 모습이 다채롭게 보였습니다. 아직 이 캐릭터들을 하나하나 그리고 설명한 콘텐츠가 없다는 게 이상할 정도였어요."

"해리포터나 지브리가 지금까지 인기 있는 이유는 다채로운 캐릭터들뿐만 아니라 탄탄한 세계관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백제금동대향로 세계관도 알고 보니 대단했어요. 향로 밑에서부터 감상하면 용-연꽃-산과 5악사-봉황의 모습이 기승전결 구성으로 잘 짜여 있어요."

"책에 부록으로 수록한 조경철 역사학자의 논문에서는 중국의 박산향로와 달리 백제금동대향로는 ‘5악사’를 두어 불교와 도교뿐만 아니라 유교도 접목했다고 밝혔어요. 하필 '악사'를 배치한 점이 재미있었어요. 코인노래방과 케이팝 나라의 조상님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향을 피우면 함께 피어오르는 연기의 움직임까지 고려한 걸까요? 향로를 한 차원 더 공감각적으로, 예술적으로 만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처음 이 책을 기획했을 때만 해도, <백제금동대향로 동물백과>를 소개하려면, 백제금동대향로부터 설명해야 했어요.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유물이었죠. 그런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유물을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지더라고요. '본격 유물 입덕서'를 목표로 이 책을 만들게 된 것인데 많은 사람들의 입덕시키는 데 역할을 한 것 같아 뿌듯했어요. '백제금동대향로' 실물이 있는 국립부여박물관에 함께 비치되어 판매되고 있으니 성공한 덕후가 된 것이나 다름없죠. 독립출판으로는 이례적으로 출간 1년이 조금 넘었는데, 벌써 3쇄를 찍고,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된 것도 뿌듯했습니다."

#5 가장 기억에 남는 소비자의 리뷰나 소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백제금동대향로 동물백과>을 읽고, 책을 들고 국립부여박물관에 다녀왔다는 독자님들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만든 콘텐츠가 계기가 되어 먼 거리에 있는 박물관을 찾았을 누군가의 하루가 상상됩니다."

#6 2024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 계획이나 진로가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거창하게 사업 계획이랄 건 없고, 동료들과 함께 만든 '유물시선'의 브랜드의 특색을 살릴 수 있는 크고 작은 콘텐츠를 만들어 가고 싶어요. 처음엔 막연히 취미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새 꽤 본격적으로 이 일을 하게 되어버렸어요. '유물을 과거에 두지 않고 동시대로 가져온다'는 슬로건에 맞게 한국 유물을 바라보는 동시대 사람들의 시선이 담긴, 저부터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들을 만들어 나누고 싶습니다." [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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