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의 노후낙낙] '공짜 점심 낭인'을 어떻게 봐야 할까

수업 여가로 활용하는 중장년에 교육기관 속앓이

이준호 기자 | 기사입력 2021/05/12 [15:25]

[이준호의 노후낙낙] '공짜 점심 낭인'을 어떻게 봐야 할까

수업 여가로 활용하는 중장년에 교육기관 속앓이

이준호 기자 | 입력 : 2021/05/12 [15:25]

[이준호의 노후낙낙] * [이준호의 노후낙낙]은 올바른 노후생활을 위한 시니어 문화를 진단합니다. 낙낙은 즐겁다는 樂樂의 의미와 '넉넉하다'는 뜻, 노후를 노크한다는 Knock Knock의 중의적인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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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어떡해.. 어떡해.." 상고대처럼 새하얀 머리의 여성이 PC 앞에서 어쩔 줄 모른다. 70세를 눈앞에 둔 이 여성은 3D 프린팅 강의를 수강 중이다. 이미 교실 앞 모니터 속 강사의 진도는 멈출 줄 모르는데, 돌처럼 굳은 손은 움직일 줄 모른다. 누군가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에 앓는 소리를 내보지만 도움의 손길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 마지못해 누군가 일어나는 소리가 뒷자리에서 들린다. 다행이다. 구원의 순간이다.

 

지난해 한 서울의 한 직업훈련원에서 직접 목격한 장면이다. 사실 주위에서 이런 광경을 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은퇴 세대를 지원하는 큰 축으로 '교육'이 중심에 있다. 평생 해왔던 일을 떠나 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를 돕는다는 취지다. 

 

교육기관도 다양하다 서울시 산하에만 서울일자리센터와 지역별 여성인력개발센터, 직업교육센터, 노인종합복지관까지 따지면 세기가 어려울 정도다. 여기에 50플러스센터도 있고, 고용노동부 산하 지역 폴리텍대학도 중장년에게 선호되는 기관으로 꼽힌다. 맘만 먹으면 손안에 닿는 배움터는 매우 많다.

 

▲ 중장년 대상 직업교육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인생 설계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사진은 본문 내용과 무관함)(사진=울산 동구 제공(뉴시스))  © 팝콘뉴스


문제는 이런 교육제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제대로 활용하면 새로운 직업의 기술을 얻거나 사업의 아이템을 발견해 인생의 제2직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실제로 일부 교육기관에서는 독특한 부류의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교육과정만을 찾아 떠도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면 지난해까지 목공 수업을 들었다가 기관을 옮겨 올해는 요리 수업을 받는 식이다. 누군가는 이들을 '공짜 점심 낭인(浪人)'이라고 부른다. 교육을 받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그저 정해진 시간에 나와 또래들과 수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목적인 나이 많은 학생들을 말한다. 게다가 일부 교육기관에서는 무료 점심 식사까지 제공하니 여가생활로는 이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민폐 없이 학교만 다니는 것이 뭐가 나쁠까 생각하기 쉽지만, 공짜 점심 낭인들로 인한 폐해는 존재한다. 앞서 예를 든 배경지식이 필요한 정보통신 등의 기술 분야가 특히 그렇다. 교육을 진행하는 기관이나 강사의 입장에선 엄연히 학생인 이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수업을 진행하기는 어렵다. 이들이 강의 내용을 이해하고 질문을 멈출 때까지 쉽게 진도를 나가기 어렵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도 쉽지 않다. 직업교육 과정 중 상당수는 그 대상이 '18세 이상의 성인이면 누구나'로 지정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청년들과 중장년이 뒤섞여 한 교실에서 수업받는 일이 흔하다. 당장 취업이 급한 젊은이들 입장에선 유유자적한 수업 속도를 즐길 처지가 아니다. 

 

수업의 성과를 자격자 취득자 수나 취업자 수로 평가받는 교육기관의 입장에선 교육의 효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점심 식사 낭인들도 공식적인 수업 평가 의견의 제출 권한을 가진 학생이라는 점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육 희망자 모집 과정에서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어렵다. 일부 인기 과목을 제외하면 수강인원을 채우는 것이 만만치 않은데, 정원 미달은 폐강 위기로 인식하는 담당 교수들은 이들의 신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 국내 한 중장년 일자리 기관의 교육장면.(사진은 본문 내용과 무관함)(사진=한밭대 제공(뉴시스))  © 팝콘뉴스


이를 바라보는 학생의 생각은 어떨까. 올해 초 기술교육원에서 1년짜리 정규 교육과정을 수강한 한 40대 수료자는 "열정을 갖고 수업에 임하는 60~70대 동기생들을 보면 존경심과 경외심까지 들지만, 수업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있거나 본인 능력에 맞지 않는 분들을 보면 청년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공짜 점심 낭인의 숫자가 줄지 않고 있다는 것. 한 교육기관 관계자는 "중장년 비중이 증가하면서 수강 자체가 목적인 분들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물론 이러한 부작용을 모두 은퇴 세대의 탓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인생은 게임처럼 쉽지 않다. 새로운 직업을 정하기도 어렵고, 수강 분야를 결정했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진 않는다. 교육 후에 왜 빨리 새 직업을 정해 사회에 다시 뛰어들지 않느냐고, 수료했으면 다음 교육 기회는 양보하라고 윽박지를 수 없다. 여러 번의 실패를 극복할 체력은 그들에게 남아있지 않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본격화는 이제 막 시작됐다. 이러한 부작용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학생 수와 취업자 수에 매몰된 직업교육 제도를 개선하고, 청년과 중장년 모두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공짜 점심 낭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