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인 삶에서 게을러도 괜찮은 삶으로

▲ 최근 20~30대 청년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에세이 도서들(사진=팝콘뉴스). © 편슬기 기자


(팝콘뉴스=편슬기 기자)몇 년 전 서점을 휩쓸었던 책들이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하버드 새벽 4시 반’, ‘공부하다 죽어라’ 등 공부를 통해 이른바 ‘개천에서 용 나는’ 계층 상승을 꾀하고, 노력에 수반하는 고통들은 성공에 필요한 당연한 밑거름으로 여겼던 책들이다.

주어진 한정적인 시간 동안 치열하게 달리고 경쟁하며,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삶만이 가치 있는 삶이라 사회로부터 강요당하던 당시에는 ‘노력’이라는 것이 아주 당연하게 여겨지는 미덕이었다.

전력을 다해 목적지까지 쉼 없이 달리지 않으면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히던 시대, 조금이라도 뒤처질까, 정해진 길을 벗어날까 마음 졸이며 안달복달하던 이들은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번 아웃(Burn out: 신체적·정신적으로 탈진해 무기력해지는 현상)으로 지쳐 쓰러졌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다 그들이 문득 생각한 것은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시대에 대한 회의’였을 것이다.


노력해라? 혹시 꼰대이신가요?


▲ 횡단보도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우리는 꼭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걸까?(사진=픽사베이 제공). ©편슬기 기자

몇 년이 지난 지금, 인생 선배들의 ‘노력해라’라는 말은 어느새 꼰대들의 ‘노오오오력을 하란 말이야!’로 바뀌어 조롱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귀담아들었던 조언이 조롱으로 바뀌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노력이 만능 해결사 역할을 했던 지난 시대와는 달리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결코 메꿀 수 없는 계층 간 간극과 그로부터 오는 무력감과 박탈감에 있다.

좀 더 제대로 짚자면 젊은 세대들이 흔히들 말하는 ‘수저’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지난해 7월 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직업 계층 이동성과 기회 불균등 분석’ 보고서에서는 아버지가 ‘1군 직업’(입법 공무원, 고위 공무원, 기업 임원 및 관리자, 전문가)에 종사할 경우 자녀도 1군 직업을 가질 확률이 32.3%로 나타났다.

반면 이들의 자녀가 판매종사자 등 ‘3군 직업’(서비스 종사자, 판매 종사자, 단순노무 종사자)을 가질 가능성은 13%로 매우 낮은 수치를 보였다.

아버지가 3군 직업일 경우 자녀도 3군 직업을 가질 확률은 24.1%였는데, 이는 1군과 2군 직업(기술공 및 준전문가, 사무종사자, 기능원 및 관련 기능 종사자)을 가진 아버지에 비해 3∼11%가량 높았다.


더불어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계층 상승 사다리에 대한 국민인식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개개인이 노력해도 계층 상승의 가능성이 낮다는 답변이 84.4%를 차지했으며 가능성이 높다는 답변은 16.6%에 그쳤다.

부모들이 지닌 재력에 따라 자녀의 직업도 결정 나는 현 세대에서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개미처럼 돈을 모아도 계층을 이동하는 사다리는 사실상 부서진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많은 국민들이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세태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도서들


▲ 부의 계층을 나누는 '수저', 다이아몬드부터 흙수저까지 종류는 다양하다(사진=픽사베이 제공). © 편슬기 기자

한날한시에 태어나 같은 출발선에 서도 두발로 달리는 아이와 헬리콥터를 타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이들을 두고 어찌 평등한 출발이라 말할 수 있을까? 수저는 노력으로는 극복 불가능한 절대적인 권력과 다름없다.

역대 최고치를 찍은 청년 실업률, 점점 높아져만 가는 20대 청년 파산, 하나라도 더 가질 나이임에도 오히려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아지는 요즘 젊은 층들은 더 이상 노력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라는 것을 깊이 체감하고 있다.

그런 사회 흐름을 읽기라도 하듯 요즘 서점가에는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나답게 살자’ 등 위로를 건네는 에세이 형 책들이 가득 들어찼다.

아마도 지금 지친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따뜻한 말 한마디와 위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독자들에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친절해지려 노력하지 말고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나를 존중하고 특별하지 않은 나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혹은 ‘열심히 살지 말자’, ‘게을러지자’라며 좀 더 노골적인 말로 유혹을 해오기도 한다.

지금까지 충분히 열심히 살았어, 고생했으니까 잠시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 경치도 둘러보고 나만의 속도를 지키면서 잠시 게으르게 살아보는 건 어때?라고 속삭이는 달콤한 제안들은 지친 청년들을 달래고 어른다.

하지만 옛말에 뭐든 과하면 독이 된다 했던가, 트렌드에 맞춰 지친 청춘을 위로하는 책들이 서점가에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매대는 지금 알록달록한 파스텔 색상의 에세이 책으로 가득하다.

혹자는 이를 두고 과잉 위로 사회라고도 말한다.

단순 위로를 바란다면 가볍게 읽기에 좋을지 모르나 일부 그럴싸하게 포장된 말들에 감화돼 지나친 자기 연민과 합리화에 빠져 허우적대고, 실수나 실패의 원인을 사회와 남 탓으로 돌리게 되는 현상은 반드시 경계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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