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학교폭력 전년 16.3%에서 31.6%로 증가...'역대 최대'
"피해회복 책임, 가해자와 피해기록물 통해 사업 영위하는 플랫폼 사업자에게 있어"

▲ 22일 서초구 푸른나무재단 본사 앞에서 재단 관계자 및 학교폭력 피해학생 등이 "학교폭력, 방관의 탈을 벗어라"라는 구호에 맞춰 준비해온 탈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익명 채팅 앱을 이용한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배달 앱 대면거래 기능을 이용해 피해자의 집 주소로 다량의 음식 배달 ▲결제 앱에 피해자의 카드나 계좌를 연동해 대리결제 강제 ▲중고거래 앱을 통한 강매 및 협박 ▲SNS 게시 사진 등을 이용한 딥페이크(합성물) 제작…. 학교폭력이 디지털로 장소를 옮기면서 나타난 피해 사례다.

사이버 학교폭력이 전년 대비 약 2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가 발생하는 매체인 '디지털 플랫폼'과 학교, 부모, 선생님 등 주변 어른들의 불분명한 해결에 사이버 폭력 확산의 책임이 있다는 분석이다.

■ 사이버폭력 피해 전년 대비 2배 늘어

22일 푸른나무재단이 서초구 위치 본사 1층에서 진행한 '2022 전국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 발표 기자회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전국 17개 시도 초등학교 2학년~고등학교 2학년 재학생 60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학교폭력 경험률은 2020년(6.7%)과 비슷한 7.0%로 집계된 반면, 사이버폭력 경험률은 2020년 16.3%보다 2배 높아진 31.6%로 집계됐다. 2019년 5.3%와 비교해 6배 증가한 수치로, 언어폭력(19.2%), 신체폭력(11.9%), 따돌림(11.8%) 등의 응답을 웃돈다.

사이버폭력 피해 유형은 사이버 언어폭력 28.4%, 사이버 따돌림 15.4%, 사이버 명예훼손 14.3% 순이었다. 사이버폭력 경험 또는 목격 매체로는 카카오톡 27.2%, 페이스북 16.6%, 인스타그램 9.3%, 틱톡 7.9%, 에스크 5.2% 순으로 응답했다.

최선희 푸른나무재단 상담본부장은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을 필수매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코로나19가 비대면 학교폭력을 촉진한 것도 있지만, 해당 세대의 일상생활에서 온라인 영역을, 비율로 따지자면 오프라인 영역과 비슷하게 또는 더 많이 일상생활에서 차지(하게 된 이유가 크다)"라고 말했다.

■ '제때 피해자 일상회복' 목표여야...당사자 사과받는 'ADR' 등 기구 고민할 필요도

사이버 폭력이 증가하고 있지만, 대응 체제 변화는 더디다.사이버폭력은 가해자 특정, 피해 사실 입증 등이 까다로워 조사가 늦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현행은 처벌을 포함한 사안 처리가 완료된 후에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보호 및 처분을 결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학교 전담기구가 사안을 접수하고, 여러 기관 이관을 거쳐 처벌조치, 보호조치를 결정하기까지는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행정심판이나 소송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더 길어진다.

최 상담본부장은 "이런 일련의 절차는 행정적 사안 처리 중심의 과정이다. 피해 회복보다는 가해자 처분 중심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적시 개입과 함께 당사자의 동의를 전제로 한 가해학생 및 그 가족과의 화해·분쟁조정도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설문조사 결과, 피해학생의 34.0%는 '피해 후 가장 필요한 것'으로 '가해학생의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를 꼽았다. 문제해결 과정을 밟았지만 '불만족한다'라고 답변한 학생(20.7%) 중 26.0%는 '처벌은 만족하지만 사과와 반성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두 번째로 높은 답변은 '나(피해학생)에 대한 보호조치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17.1%)'였다.

현재 푸른나무 재단이 교육 당국과 함께 운영하는 학교폭력 화해·분쟁조정사업을 살펴보면, 화해분쟁조정은 당사자와 그 가족의 동의를 전제로 진행되고, 학교폭력 사안 조치와 별도로 진행된다. 분쟁조정이 성립하더라도 학교폭력 사안 조치는 따로 이뤄진다.

최 상담본부장은 "현재 운영 중인 화해·분쟁조정제도 관련 제도를 학교폭력 사안 발생 즉시 발동하도록 개정해야 한다"며 "(다른 산업 분야에는) 행정형 ADR(소송 외 대체분쟁해결제도)이 설치돼 있다. 참고해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 "사안 처리가 마무리되면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긴급히 돕는 부분과 사후 지속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같이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며 '학교폭력 피해자 전담기관'을 통한 피해 학생 및 그 가족에 대한 사후 지원 강화 등도 제언했다.

■ "'플랫폼' 책임서 자유롭지 않아...학교·선생님·학부모 대응 역량 키워야"

무엇보다 제도를 시행하는 어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날 피해 경험을 이야기한 김하나(익명) 양은 "학교폭력 문제를 선생님께 신고하자, '바쁘니까 다음에 이야기하자, 애들이랑 얘기해보자, 만나서 해결해야지 자꾸 이렇게 숨는 건 나쁜 것'이라고 하시더라. 부모님께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거다, 억울해도 참아라, 이런 경험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냐,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했다"며 "학교폭력은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의 방관보다 더 무서운 건 어른들의 방관"이라고 말했다.

조사 결과,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필요한 것'을 묻는 말에 전체학생(18.7%), 피해학생(17.2%), 가해학생(16.7%), 목격학생(18.4%) 등 모든 학생군에서 '주변 어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기에 1회 이상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의무화한다. 또,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조치를 명시하고 있다. 다만, 교육청, 학교 자원, 학교장의 의지 등으로 사례별 간극이 크다.

최 상담본부장은 "피해자 사후관리 및 회복지원을 위한 표준화된 매뉴얼 마련이나 법에 명시된 학교폭력지역대책위원회 및 협의회의 운영현황을 점검하는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면서도 "예비교사, 학교폭력 전담교사, 학교전담경찰관, 부모 등 주변 어른들이 평소 이상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고 초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푸른나무재단은 청소년 사이버폭력 예방사업 '푸른코끼리 학교장 선언운동'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장이 '사이버폭력을 묵과하지 않겠다'라고 학생 및 교직원에게 선언하는 운동이다.

동시에 청소년 가입자 보호 방안 마련 등 플랫폼 기업의 책임 역시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주한 푸른나무재단 교육본부장은 "대부분의 사이버 학교폭력 양상이 디지털 매체를 매개하고 있다. 디지털 세대의 사회적 책무가 요구된다"며 "피해 회복을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디지털 피해기록 삭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피해 회복에 대한 보상이다. 이 책임을 가해자, (피해기록) 제작자, 이를 통해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사업자에게 물어야 한다. 여기서 플랫폼 사업자가 자유로울 수는 없다. 법 개정이 병행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푸른나무재단은 상담 전화를 지난 20여 년간 운영하고 있고, 사이버폭력 피해학생 피해기록 삭제 사업 등도 진행하고 있다.[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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