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자영업 방해 않는 일자리 찾아 고심…경제적 지원 외 효과 커

▲ 최근 시니어클럽의 새로운 시장형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편의점. 사진은 구로시니어클럽이 운영 중인 드림마켓 모습.(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이준호 기자)* 굿업! 평생현역 코너는 인생의 후반전에서 새로운 일터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중장년을 만나러 갑니다. 굿업은 정말 대단하다는 Good Up과 좋은 직업(業)을 뜻합니다.

"요즘 뭐해"라는 안부 인사. 우리가 주변에서 듣는 흔하디흔한 인사다. 그러나 일자리가 없는 중장년에게는 이 평범한 인사는 비수가 되어 날아와 가슴에 꽂힌다. "논다"는 대답은 목까지 올라왔다 멈추기 일쑤고, 지금 준비하고 있거나 잘되지 않는 일들을 설명하기엔 구차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 안부에 대답할 용도의 가짜 직업을 서너 개씩 만들어 놨다 상대에 따라 꺼내 쓰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직업은 마치 또 하나의 자아처럼 작동한다. 오랜 직장생활이 몸에 익은 중장년일수록 이러한 의식은 더욱더 깊다. 명함 없이 남 앞에 서는 것을 벌거벗은 것처럼 부끄럽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나이가 들어도 적당한 '일거리'가 중장년의 생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다. 또 자신을 늘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가꾸고, 긴장감 속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활동을 통한 운동 효과까지 얻는 것 등도 일자리가 갖는 효과에 대한 노인 일자리 현장에서 만난 중장년 근로자들의 증언이다.

실제로 많은 지자체에서 노인 일자리 증가로 인한 지역민의 생활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바로 '시니어클럽'이 있다. 시니어클럽은 지난 2001년 노인 일자리 전담기관으로 지정되면서 탄생했다. 당시 정부는 시니어클럽이 노인들의 경제활동과 사회참여 활동을 통해 밝고 건강한 노후를 돕는 기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전국에서 활동 중인 시니어클럽은 2020년 7월 기준으로 176개소로 증가 추세에 있다.

현재 전국에서 시니어클럽에서 제공하고 있는 노인 일자리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시장형과 사회 서비스형이 그것. 시장형은 말 그대로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영리 활동을 일으켜 이를 통해 발생하는 매출 중 일부를 노인 일자리 인건비로 재사용하는 형태의 사업이다. 빵이나 반찬을 만드는 제조판매형과 택배와 같은 서비스 제공형, 장난감 수리와 같은 공동작업형 등이 있다. 사회 서비스형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은 일자리이지만 생활환경 개선이나 복지 증대를 위해 추가로 만든 일자리. 지역의 돌봄, 생활 시설을 지원하거나 저소득층, 다문화가정, 맞벌이 부부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을 돕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공익활동형 일자리도 있다.

▲ 인근 교육기관 납품 등 지역 환경을 고려한 시장형 사업도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은평시니어클럽이 운영 중인 꽈배기나라.(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시니어클럽이 지금처럼 자리 잡는 데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시니어클럽에 대한 낮은 인식도 문제였지만 경험 부족도 한몫했다. 시행 초기 시니어클럽의 프로그램이 대부분 '시니어 카페'나 '노인 택배'와 같은 천편일률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데 그쳤던 것도 이 때문. 그러다 특산품 활용 등 지역 특성에 맞는 아이디어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일자리 창출은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한 시니어클럽 관계자는 "시니어클럽 활동이 서울 등 대도시보다 지방의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활성화가 빨리 이뤄졌던 것도 활용할 수 있는 지역 특성 자원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토지나 건축물 등 일자리 사업을 위한 활용공간의 확보가 용이한 것도 지방 시니어클럽의 이점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들은 지역과 상관없이 성과를 내고 있다. 일부 시니어클럽에서 시행 중인 편의점 사업도 그중 하나. 관내에서 매물로 나온 편의점을 확보한 뒤 편의점 프랜차이즈와 협약을 맺고 중장년을 교육해 배치하는 방식이다. 고양, 강서시니어클럽 등이 이러한 방식의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달 30일 개소하는 피자스쿨 구로항동점도 눈에 띄는 일자리 사업이다. 구로시니어클럽의 주도로 지역민 대상으로 피자를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해 노인 일자리를 만들어낼 계획이다.

물론 이러한 일자리 창출이 쉽지만은 않다. 서울의 한 시니어클럽 관계자는 "지역민과의 이해 충돌이 어려운 부분 중 하나"라고 꼽았다. 그는 "카페나 분식집 등 주변 자영업자와 상권이 겹치는 종목의 경우 민원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운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예산이 투여되는 사업이니만큼 '청년 일자리'와 겹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애로사항 중 하나다. 또 사업에 관한 경험 부족이 발목을 잡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업을 추진하는 시니어클럽의 자체 노하우가 부족하다 보니 일반적인 창업에 대해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시니어클럽의 사회복지사들은 사업의 영속성을 위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일자리 참여 중장년보다 먼저 교육을 받는 과정을 거친다. 이들은 일자리에 공석이 생기면 직접 꽈배기를 빚거나 커피를 내리는 등의 실무 능력을 갖춰야 한다. 준비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역 내 일자리를 원하는 노인들의 특기나 경력 등을 알 수 있는 '노인 인력풀(Pool)'이 형성되지 않은 것도 실무자들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실무자들은 "특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된 새로운 사업을 기획해도 꾸준하게 인력이 공급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후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 진행에 있어 시니어클럽 실무자들이 꼽는 가장 어려운 점은 냉소적인 시선이다. 한 관계자는 "예산이나 고용계약 형태 등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일자리의 질과 양이 사회의 평범한 일자리에 비해 낮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적 지원 이외에도 사회참여 유도와 고독 방지 등의 효과가 있다"며, "노인 일자리를 쓰레기 일자리나 노인 알바로 폄훼하는 것을 볼 때마다 기운이 빠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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