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친구 통해 접한 장애인 연극, 이후 근 20년…극단오고 연출가 권건하 씨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울타리[fence]: 모든 사람이 가족과 이웃이 되는 이야기들.

대부분의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부모와 가정, 학교 같은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간혹 울타리 없는, 누구보다 울타리가 필요한, 울타리 밖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스스로 울타리를 걷어찬 이들도 있습니다. 코너 [울타리]는 그런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독자들의 관심이 그들에게 필요한 울타리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설한 코너입니다. 기사를 읽는 동안만큼은 마음의 울타리를 활짝 열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극단오고 권건하 연출가(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장애인 연극은 땅 깊숙이 숨겨진 보석을 캐내는 것과 같아요. 보석이 있는 걸 알고 캐내는 일. 당연히 즐겁죠."

권건하(38) 씨는 2020년 1월 설립된 신생 '극단오고'의 대표이면서 동시에 연출가다. 그는 대학 회화 수업에서 만난 장애인 친구를 통해 '장애인 연극'을 처음 접했고, 그곳에서 티셔츠에 그림 그리는 일을 부탁받고 흔쾌히 응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장애인 연극판에 발을 담갔다. 서당 개도 풍월을 읊기까지 삼 년이라는데, 20년 가까이 '장애인 연극'에 빠져 살았으니 모르긴 몰라도 이 판에서 건하 씨의 잔뼈는 제법 굵어졌을 것이다.

권건하 연출가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세상이 온통 혼란스럽고 많은 것들이 언택트화 되고 있을 때 오프라인 연극을 연출해 무대에 올렸다. 연기하는 이, 봐주는 이, 저쪽과 이쪽의 가교 구실을 하는 이까지 여러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야 가능한 일을 한 것이다. 잔뼈 굵기는 아무래도 용기와 비례하는 것 같다.

극단오고의 첫 작품이자, 권건하 연출가의 처녀작이라 할 수 있는 장애인 연극의 제목은 '반달'. 과거와 현대를 넘나드는 이 극은, 장애인 구성원을 둔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 안에서 빚어지는 여러 문제와 세대를 거치며 오랜 시간 지나서야 깨닫게 되는 이해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서울문화재단의 '2020장애예술인창작활성화지원사업 공모'에서 당선돼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어쨌든 예산이 마련된 덕에 관객 앞에 선보일 수 있었던 기적 같은 작품이다.

장애인 연극은 장애 있는 연극배우가 출연하고 관객 즉, 사회에 장애와 관련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특징인 극이다. 재미, 감동만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비장애인들만이 출연하는 일반적인 연극과 다를 것도 없다. 연극 한 편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밟아야 하는 과정은 장르 상관없이 다 똑같다. 대본이 없다거나, 연습을 건너뛴다거나, 배우가 빠진다거나 하면 그것은 이미 연극이 아니므로.

물론 장애인 배우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장애물 없는 연습 장소와 극장 찾는 일 같은 것은 일반 연극에 비해 스태프의 품이 조금 더 필요하다. 장애인 배우들은 비장애인 배우들과 비교할 때 체력이 약하기 때문에 욕심내 밤을 새우며 연습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점 또한 다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 8일 서울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극단오고 권건하 연출가(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권 연출가는 바로 이러한 '다름'이 장애인 연극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다름'을 극복했기에 지난해 8월 1일과 2일 이틀간 세 차례의 상연을 마친 뒤 '보석을 캐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도 말한다.

"극을 올리기까지 6개월여간 준비했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장애인 연극은 땅속에 숨겨진 보석을 캐내는 일과 같아,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이 맛은 장애인 연극판에서 내내 느껴왔고, 결과적으로 볼 때 극단오고를 설립하고 정식 연출가로 데뷔할 수 있게끔 해 준 원동력이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연극판이 침체한 까닭에 권 연출가는 요즘 다소 무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어서 기다림은 초조함이 될 때도 있다고 권 연출가는 말한다. 그런데도 내년 상연을 목표로 지난 연극 '반달'을 집필한 김소망 작가에게 극본을 의뢰했고, 틈틈이 이견을 조율하며 극을 무대에 올리는 날만을 손꼽고 있다.

장애인이 연극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이슈가 되던 때가 있었다. 장애인 연극도 세월과 함께 내공을 쌓았다. 요새는 장애인 연극배우도 예전보다 많이 늘었고, 극의 소재 또한 다양해졌다. '장애인 연극배우 출연'을 티켓 파워 삼을 수 없는 때가 된 것이다. 그 때문에 비장애인 연극과 마찬가지로 관객의 시선을 잡을 수 있는 소재를 발굴하는 것은 요즘 장애인 연극 연출가의 덕목이 됐다. 미대를 졸업한 그가 201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평생교육단 스토리텔링과에서 극작을 수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장애인 배우들과 극을 하고 나면 마음에 남는 것이 많은데,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가끔 장애인 연극만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장애인 연극을 통해 역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경계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비장애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사회에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크게 더 널리 알리고 싶은 것뿐이다. 극을 무대에 올리고 나면, 해내고 나면, 그렇게 감동일 수가 없다. 극이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정말 큰 희열이 느껴진다. 이런 기쁨을 뒤로한 채 돈을 우선순위에 뒀다면 극단을 설립할 용기도 연출을 맡을 배짱도 부리지 못했을 것이다."

▲ 장애인 연극 '반달' 출연자들.(사진=극단오고 제공) © 팝콘뉴스


또,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나야 본업인 디자인을 하며, 어렵지만 그래도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지만, 장애인 배우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연극을 할 수가 없다 보니 이 판을 아예 떠나려는 분들도 있다. 안타깝다. 부디 코로나19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보통 소극장에 연극 한 편 올리는데 아무리 못해도 3,000~4,0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이 돈을 투자하고도 이익을 내는 극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연극이 사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연극에는 돈보다 더 큰 희망이 있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권건하 연출가는 자신의 역할을 장애인 연극에 국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장애인 연극을 연출할 기회가 오더라도 이 사회에서 장애가 있는 이들이 하는 말, 하려는 말의 메아리가 되고자 하는 생각은 놓지 않을 것이라고.

권 연출가는 인터뷰 마지막에 "장애인과 비장애인, 분명 다른 점이 있다. 서로 소통하는 방법도 과정도 다르다. 장애인들은 분명 사회로부터 그리고 비장애인으로부터 배려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사건 사고 때로는 갈등 같은 것들이 드러나 세상이 떠들썩해져야만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돌아본다. 인간의 마음은 다 똑같다. 몸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연극을 통해 사회에 계속해서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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