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모터가 새 생명을 찾는 병원, 경기모터

▲ 경기모터 문갑수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옛날부터 '기술자들은 무식하다'는 말 많이 하잖아. 근데 나는 무식하다는 소리 듣기 싫거든. 그래서 내 기술에 자부심을 가질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부단한 노력을 했지. 우리 배울 때만 해도 기계를 다 일본 사람들 밑에서 배우다 보니 다 일본말이었어. 그 책을 사다가 국문으로 바꿔서 공부했어. 기술자 '곤조'라는 말에서 그 '곤조', 그러니까 '고집'은 자부심에서 나와야 해."

지금도 어디 가서 글씨 잘 쓴다는 말을 꽤 많이 듣는다는 문갑수 대표는 기술자의 고집을 지키기 위해 오랜 노력을 해왔다. 이렇게 일본어로 되어 있는 책을 모두 해석해서 읽고 배운 것은 물론, 모터를 수리하면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수리한 모터를 가져오면, 반드시 이를 확인해 기록에 남겼다. 자신이 수리한 모터와 무엇이 다른지, 그 다른 점이 다시 고장을 일으키는지도 확인해봤다. 그러면 그럴수록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커졌다.

▲ 모터 부품 (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시작한 모터가게


가난함 때문에 웬만한 이들은 공부를 끝마치기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문갑수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배움에 대한 열의는 강했지만, 생계에 대한 부담감도 적지 않았기에 그는 야간으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이런저런 일을 배워나갔다. 몸이 쉴 틈 없이 바쁘면서도 그는 머릿속으로 자신의 장래에 대한 고민을 지속했다.

"자동차 쪽으로 나갈까 생각해 보니 자본이 너무 많이 들고, 오토바이를 하자니 앞으로는 사양 산업이 될 것 같았어. 그러다 우연히 모터 쪽을 보게 됐는데, 하다 보니 큰돈을 벌지는 않아도 꾸준할 것 같고, 비교적 초기 자본이 덜 들겠더라고."

모터 수리를 자신의 평생 직업으로 정한 그는 조그만 가게에 들어가 모터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더 뛰어난 기술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모터의 성지라는 청계천, 을지로 가게로 들어가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일을 배워나갔고, 웬만한 모터는 혼자서도 수리할 수 있게 되면서 창업을 결심했다. 그리고는 파주 금촌으로 돌아왔다.

"고향이 금촌이니까 이왕이면 고향 근처에서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타지로 가봐야 아는 데도 없긴 했어. 또 한편으로 보니 공장 상대도 하고, 농촌 상대도 하니까 오히려 다른 데보다 낫겠다 싶었어."

그의 나이 20대 초반, 그는 '경기모터'라는 간판을 세우고 한 회사의 대표가 됐다. 젊다는 패기로 자신 있게 밀어붙였지만, 창업 당시만 해도 젊음은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다가왔다. 나이가 어리니 영업을 할 때면 '네까짓 게 배워봐야 얼마나 배웠겠냐'며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모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를 대표로 세우고는 실제로는 자신이 모든 일을 처리했다. 그렇게 젊고, 기술이 좋던 대표는 어느덧 65세가 되기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평생 직업을 이어오고 있다.

▲ 부품을 살피는 문갑수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높은 기술력과 꼼꼼한 실력으로 쌓아온 신뢰


오래전부터 문갑수 대표가 지켜온 원칙이 있다. '한 번 손님이 내 집에 왔으면 이제 단골이다'라는 생각이다. 스쳐 지나가는 손님마저도 앞으로의 평생 인연이라고 믿고, 성심성의껏 꼼꼼히 일을 봐줬다.

"별 건 아니야. 그저 볼트, 너트 조일 때 기름 한 방울이라도 더 칠해서 해준 거지. 그런데 사람이 그래. 자기가 필요 없는 건 관심 있게 안 봐도 필요한 건 유심히 보거든. 이런 모습도 유심히 본 사람들이 다시 나를 찾아."

물론 이뿐만이 아니었다. 무조건 저렴한 재료보다는 품질이 좋은 재료를 쓰고, 마무리에도 신경을 썼다. 코일을 감은 모양만 봐도 보통의 꼼꼼함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만큼 흠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러자 가까이 있는 공장에서, 정미소에서 그를 찾아오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때 그의 실력을 입증할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한 정미소 앞에 있던 변압기가 나간 뒤,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한 번 변압기가 나갔다. 그러자 한국전력에서는 정미소의 모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미소 모터가 변압기 사용용량보다 더 많이 전력을 썼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정미소 모터를 수리한 문갑수 대표는 자신 있게 배수진을 쳤다.

"만약에 내가 기술이 부족해서 변압기가 나갔다고 하면, 경기모터 간판 내리고 기술 다시 배우겠다고 했지. 그리고 변압기 손해배상도 하겠다고. 세 개가 나갔으니까 당시 500만 원 정도 되는 돈이었어. 지금으로 따지면 한 5000만 원 정도 될 거야."

그리고는 모터제조업체에 가서 모든 실험을 거쳐서 수리과정에서의 실수 여부를 확인해봤다. 공장장이 직접 안전테스트를 모두 거친 결과 이상이 없다는 확인서가 나왔다. 이후에는 '한전을 상대로 해서 이겼다', '한전보다 기술력이 좋다'는 소문이 이 금방은 물론, 먼 곳까지 퍼져나갔고, 파주, 고양 주변 정미소는 모두 문갑수 대표를 찾아와 수리를 맡겼다.

공장에서도 그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10년 넘게 거래해오던 식품공장 공무과장이 그를 찾아왔다. 경기모터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모터를 수리하겠다는 업체가 있는데, 이 견적대로 해줄 수 있냐며 견적서를 갖고 온 상황이었다. 공무과장인 자신은 경기모터와 계속해서 하고 싶은데, 사무실에서 협상을 해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왔다는 변명과 함께였다.

그는 견적서를 살펴보고는 단호히 다른 업체와 거래하라고 말했다.

"물론 내가 이익을 정말 적게 남기면 맞춰주겠지. 그런데 이익이 안 나는 일인데, 내가 어떻게 재미있게 일을 하겠어. 소홀하게 되지. 게다가 재료도 기존처럼 좋은 재료 써주지 않게 될 거고."

그러면서 자신도 오래 거래한 공장이어서 단가를 올리지 않고, 맞춰줬으니, 만약 다음에 오게 되면 기존 수리비에 10%를 더 올리고, 현찰로 바로 받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반드시 6개월 안에 자신을 다시 찾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곁들였다.

그리고 그가 말한 6개월 정도가 지난 뒤, 밤늦은 시각 급하게 공장에서 그를 찾았다. 모터를 꼭 수리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는 기존에 말했던 조건을 이야기하며 흔쾌히 밤을 꼬박 넘기며 수리를 해줬고, 결국 모터를 제대로 고쳐 놨다. 결국 몇 푼 아끼려고 했던 수리비가 더 많이 나오게 된 셈이다.

"내가 그랬어. 모터 수리비가 더 들어간 것도 들어간 거지만, 공장에서 기계가 서 있던 시간을 계산해서 제조 원가를 계산해보라고. 게다가 식품 회사 같은 경우는 재료를 쌓아놓고, 물건이 제때 못 나가면 재료를 다 버려야 한다는 말이야. 그래서 깜짝 놀라서 날 찾아온 거였지. 지금? 농담이지만, 내가 고장 안 난 것도 고장 났다고 하면 믿을 정도일 걸."

▲ 경기모터 전경(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홍수도, 토지수용도 견딘 단단해진 모습으로


물론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 이렇게 좋은 일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개인의 힘으로는 예측할 수도, 피할 수 없는 일도 닥쳐왔다. 첫 번째는 자연재해로 찾아왔다. 비교적 낮은 지대였던 경기모터 주변은 홍수가 오자 가게 전체가 물에 잠겼다. 아직도 가게 벽에는 사람 키보다도 한참 높은 곳에 물에 잠겼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당시에 있던 부품들은 새 부품이든, 수리하던 부품이든 다 버렸어. 물이 찰 때는 한 번에 훅 들어와서 순식간에 차. 그런데 빠질 때는 서서히 빠져. 그럴 때 미세한 진흙 같은 게 기계 안으로 다 들어가니까 쓸 수가 없는 거지. 게다가 가게 청소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어."

이 일로 인해 그는 다시금 사업 전반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는 사무실이 따로 있고, 경리도 있었고. 직원도 대여섯씩 있었지. 기술자들을 쓰니 내가 일을 만들어주기 위해 무진장 돌아다녔어. 그러니까 힘들었지. 매출은 올라가지만 그만큼 직원들 월급 주고, 차 굴리느라 경비도 나가고 그랬었어. 그런데 물난리 나고는 생각을 바꿨어. 오는 손님한테나 잘 하자고."

이후 철길이 나면서 사무실 일부가 수용됐고, 지금은 아주 일부만 남아있는 상태다. 그런데 이 가게마저도 주변 지역 전체가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올해부터 철거가 시작될 예정이다. 그래서 그는 이 땅이 수용되면 다른 지역으로 가서 자식들을 위한 가게를 새로 열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자급력이 있다면 내가 물려주고 싶은데, 지금 이 상태로는 물려주고 싶지가 않아. 어차피 한 번 옮겨야 하는 거 그 이후를 보고 있지. 저리로 융자를 받아서 시설 확충을 해서 옮겨야지. 아들이 둘인데, 특히 작은놈이 손재주가 좋아. 또 내 자식이니까 집중적으로 가르치면 2년 정도면 마스터할 수 있을 거야. 게다가 내가 해왔던 거래처도 있으니까 어렵지 않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거고."

업력만 40년이 가까운 경기모터는 이제는 지금의 모습으로 만나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하우는 남기고, 가게는 더 현대화된 모습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수리해 온 모터들이 힘차게 돌아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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