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니어클럽 카페청춘드림 송애령 바리스타

▲ 파주시니어클럽 카페청춘드림 송애령 바리스타(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이준호 기자)* 굿업! 평생현역 코너는 인생의 후반전에서 새로운 일터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중장년을 만나러 갑니다. 굿업은 정말 대단하다는 Good Up과 좋은 직업(業)을 뜻합니다.

자녀를 출가시키고 난 후 텅 빈 집을 보면서 공허함에 빠져 버리는 증상을 '빈 둥지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파주에서 만난 송애령(72) 씨 역시 비슷한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집에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2010년의 어느 날, 운명처럼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집어 든 지역 신문의 한 페이지에 인쇄된 인터뷰 기사였다. 송 씨가 뚫어지게 바라본 인물의 손에는 그녀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어줄 그것이 쥐어져 있었다. 커피였다.

"워낙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와 관련된 일을 찾는 것은 제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일을 찾다가 커피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커피가 좋아서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것이죠. 딸아이도 집에서 콜드 브루 커피를 내려 마실 정도로 커피 사랑이 대단해서 저도 자연스럽게 좋아진 것 같아요."

▲ 고객이 주문한 음료를 만드는 송애령 씨. 송 씨는 "커피를 내리는 것은 음식을 요리하는 것과 같아서 만드는 사람의 실력이나 조리 과정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 된다"고 설명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그래서 송 씨가 찾은 곳은 파주시노인복지관. 마침 중장년 대상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진행한 후 카페에서 일할 기회를 준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파주시니어클럽의 시장형 일자리사업인 '카페청춘드림'의 모태가 된 사업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커피에 문외한이었던 고령자들이 모여 커피머신 사용법과 몇 가지 레시피를 배운다고 해서 커피숍 운영이 간단히 될 리가 없었다. 특히 커피를 제대로 비우고 싶었던 송 씨 입장에선 더욱더 답답했다.

"그래도 그곳에서 3년을 일했죠. 즐거운 추억도 많았지만 오래 일한다고 해서 커피를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학원을 등록했죠. 자격증도 취득했어요. 6개월 정도 전문 강사들에게 배우고 나니 커피라는 것이 좀 보이기 시작했어요. 단조로웠던 커피를 내리는 과정이 훨씬 더 심오하게 느껴지고 즐거워졌죠. 커피는 알면 알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사소하게 넘어가는 탬핑(커피를 추출하기 전 분쇄 커피를 틀에 넣고 누르는 과정)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까요. 덕분에 이제는 커피가 제대로 내려졌는지 아닌지 정도는 구분할 정도가 됐어요.(웃음)"

송애령 씨와 커피와의 인연은 또 다른 시간에, 다른 사람에게서 다가왔다. 이번엔 송 씨의 딸이었다.

"어느 날 딸아이가 '나 가게 계약했어'라고 폭탄선언을 했어요. 전부터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상의 없이 일을 저질러서 왔던 것이죠. 카페를 차려보려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것은 아니었는데, 졸지에 카페 사장이 됐죠(웃음). 그래도 임대료가 너무 올라 포기하고 나올 때까지 꼬박 3년을 아이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잘 지냈죠. 카페도 꽤 잘돼서 단골도 많았어요. 무엇보다 모녀가 남들은 쉽게 할 수 없는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든 것 같아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말이죠. 지금도 가끔 다시 카페를 차리자고 조르곤 해요."

▲ 송애령 씨는 "코로나로 많은 손님과 만나지 못하는 지금이 안타깝다"며 "많은 분께 커피를 내려드리고 싶다"고 희망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올해 1월 파주시니어클럽이 '카페청춘드림'의 근무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송 씨는 주저하지 않고 지원했다. 이제 주체는 파주시노인복지관에서 파주시니어클럽으로 바뀌어 있었고, 카페 위치도 달라져 있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커피를 내릴 수 있는 장소와 내 커피를 찾아주는 손님만 있어 주면 그만이었다.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소중했다고 송 씨는 이야기했다.

"지금 이 나이의 사람을 어디서 써주겠어요. 파주시니어클럽을 통해 제대로 교육도 받고, 커피를 만들 수 있도록 활동의 기회를 받는다는 것이 너무 고마운 일이죠. 나와서 일하는 것은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오히려 장사가 안돼 가만히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힘들죠. 이제는 카페를 찾아주는 분들이 많아지고, 매상이 늘면 그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어요."

송 씨는 혹시나 빈 둥지 증후군에 괴로워하고 있을 또래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라고 당부했다. 집에서 주저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머리와 몸을 써 움직이는 것이 인생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시간이라는 인생의 가루를 대충 쌓아 올리는 것보다, 탬핑이라는 약간의 수고를 더해 적당한 압력을 가하면 커피 내음 가득한 향기로운 인생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커피가 준 인생의 교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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