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 슴슴한 초계탕이 탄생한 곳, '초리골초계탕'

▲ '초리골초계탕' 김용호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항상 손님들에게 보이는 친절뿐만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친절을 베풀라고 하셨어요. 맛으로 친절을 보여주면 된다고요. 물론 주문받을 때 친절하게 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음식을 만들 때 친절이 우러나오지 않으면 음식하는 사람으로서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거라고요."

시원 슴슴한 초계탕 국물에 기름기 하나 없이 담백한 맛이 우러나는 것은, 손님이 오자마자 기본 반찬으로 방금 부친 따뜻한 메밀전이 나오는 이유는 '친절' 덕분이었다. 김용호 대표는 자신이 가게를 이끌게 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이 아버지가 손님에게 친절을 베푸는 방식이었음을. 그리고 이것이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을 이제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렇기에 오늘도 김용호 대표는 아버지 김성수 대표가 메밀전을 부쳤던 가게 입구 그 자리에서 메밀전을 부치며 손님에게 인사를 건넨다.

▲ 담백한 닭고기와 육수(사진=초리골초계탕) © 팝콘뉴스


초계탕 원조집만의 기본기, 담백하고 비리지 않은 닭고기와 육수


말 그대로 초리골초계탕은 가업(家業)이었다. 아버지가 초리골초계탕 간판을 걸고 초계탕을 만들어온 지 42년, 어머니가 주방을 지켜온 지 30년, 그리고 현재의 김용호 대표가 일한 지 20년이 됐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친가 할아버지 역시 이북에서 냉면집을 했다. 그래서인지 어떤 음식점보다도 이북음식에 대한 노하우가 있었다. 현재 초리골초계탕의 대표메뉴인 초계탕 역시 이북음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북에서는 소고기보다 꿩이나 닭을 넣은 냉면을 먹곤 했다. 남쪽에서는 닭을 차갑게 먹으면 비린내가 난다는 생각이 있어 초계탕을 낯설어했다. 게다가 초계탕의 이름처럼 식초와 겨자를 넣어 먹는 음식이기에 대중적으로 맛있는 음식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때 초리골초계탕 1대 김성수 대표가 기존 초계탕에 맛을 가미해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들어냈고, 요즘 생각하는 초계탕이 만들어졌다. 이후 여기저기서 초계탕이라는 음식을 판매하기 시작했지만, 원조였던 초리골초계탕을 쫓아올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초리골초계탕에서는 닭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 되어 맛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물론 식초와 겨자의 비율이나 다른 양념들의 어우러진 맛도 필요하죠. 그런데 사실 가장 중요한 건 닭 비린내를 잡고, 질기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름을 제거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나도록 해야 하죠."

늘 레시피대로 정량을 덜어 음식을 만들어도, 육수 상태, 닭 상태에 따라 육수가 덜 우러나오거나 고기가 질길 때도 있는데, 이를 알아채고 같은 맛을 내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노하우다.

▲ 메밀전을 부치는 김용호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대표가 된 이제야 이해하게 된 메밀전의 의미


초리골초계탕을 물려받은 2대 김용호 대표는 중학교 때부터 초리골초계탕에서 일을 해왔다. '일하지 않는 자, 밥숟가락 들지 말라'가 가훈이었기에, 김용호 대표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신발 정리, 접시 닦기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닭 삶기, 반죽하기 등 주방 일도 척척 해냈다.

그는 어렸을 때만 해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일해야만 했던 상황이 싫고, 귀찮기만 했다. 하지만 작년 초,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암 선고를 받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가게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아버지께서 작년 1월에 폐암 4기를 선고받으신 거죠. 4개월 정도 남았다는 말에 가족들 모두 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제가 가게를 이어받기를 원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갑작스럽게 제가 하던 일을 접고, 가게로 들어오게 되었죠."

하지만 김용호 대표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자신이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판에 자신이 아무리 잘해도 본전이라는 부담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는 그 부담감을 노력으로 바꾸기로 했다.

"물론 지금 같이 계셨으면 많은 힘이 됐겠죠. 그리고 조금 더 체계적으로 대가 이어졌다면 좋았을 텐데 조금 급하게 진행되면서 아쉬움은 있어요.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이 가게를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에요."

단골손님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1대 김성수 대표는 늘 초리골초계탕 입구 앞에서 철판에 메밀전을 부치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2대 김용호 대표가 늘 그 자리에서 메밀전을 부치곤 한다. 처음 김용호 대표가 가게를 물려받았을 때만 해도 없앨 계획이었던 철판이다.

"옛날에 아버지에게 들은 바로는 냉면집 입구에는 무조건 전을 부치는 전판이 있었대요. 아마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시각적, 후각적, 청각적 자극을 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사실 이것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있어요. 늘 여기서 기름 냄새, 가스 냄새 맡으시면서 전을 부치셨으니까요. 그래서 없애고 싶었는데, 어느새 이 전판이 저희 가게의 시그니처가 되어 있더라고요. 10년 전에 한 번 오셨던 손님이 전화하셔서 '입구에서 전 부치는 가게 맞죠?'라고 물으실 때도 많아요."

이렇게 고객들에게 전판의 존재가 뚜렷하게 각인되어있다는 점 이외에 전판을 없애지 않은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1대 김성수 대표는 늘 메밀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메밀전은 추가로 금액을 받는 반찬이 아닌 기본 반찬 중 하나다. 그러나 손님이 요청하는 경우, 계속 나간다. 단골들은 돈 받고 팔라고 이야기해주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어렸을 때, 제 가게가 아니었을 때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였어요. 그런데 이 자리에서 메밀전을 부쳐보니 알겠더라고요. 한 장이라도 더 주고, 메밀전 맛있었다는 말 한마디를 듣는 것만으로도 여기서 고생할만한 가치가 있어요."

누군가가 들어오면 갓 부쳐진 메밀전이 나간다는 것, 그리고 원할 때마다 따끈한 메밀전이 나간다는 것은 손님에 대한 배려였다.

▲ 초리골초계탕 전경(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가족 대신, 고향 대신 찾는 초계탕


초리골초계탕이 가장 붐비는 날은 명절 다음 날이다. 이북 음식을 파는 음식점인 데다가 파주에 위치했기에 실향민 단골들이 와서 고향 음식을 먹으며 가족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벌써 이곳을 오래 다니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고, 아직도 정정하게 몇 십여 년간 이곳을 찾는 단골도 있다.

단골들은 1대 김성수 대표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이곳에서 갓 난 아이였던 김용호 대표가 어느새 아버지 대신 대표로서 가게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자기 일처럼 뿌듯해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 장난감을 쥐여주던 아이가 어느새 이렇게 자랐냐는 놀람과 함께 이야기를 건넨다.

그렇게 인사를 나눈 뒤 자리에 앉으면, 늘 봐오던 익숙한 직원이 단골을 맞이한다. "왜 오늘은 동생분이랑은 안 오셨어?"라고 단골에게 물으면, 단골은 "동생 집 나갔어"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워낙 직원들도 오래 일을 하셔서 손님들과도 친하시죠. 좋아하시는 반찬이 있으면 미리 많이 가져다주시기도 하고, 취향에 맞춰 오이는 빼 드리고, 얼음을 덜 넣거나 많이 넣어드리기도 하고요."

시시콜콜 주문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통하는 이들이 있기에 단골들 역시 이곳에서 고향의 따뜻함과 다정함을 느낀다. 어쩌면 살아생전 영원히 가지 못할 고향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린 곳마저 따뜻하지 않고, 다정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혹여 변해버려 못 올 곳이 되었다면 어쨌을까. 단골손님들은 초리골초계탕의 슴슴한 국물을 맛보며, 따끈한 메밀전을 우물거리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고향 대신 이곳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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