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난향동 사회적기업 '마을과고양이' 대표 박용희 씨

(팝콘뉴스=정찬혁 기자) * 개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가족'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려동물만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짝꿍)'라 고백하기도 합니다. 가족과 친구. 이 두 단어에는 아무래도 '사랑'과 '정'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 하나 책임지기 힘든 세상에 다른 생명을 위해 시간과 돈, 그리고 마음을 쓸 이유는 없으니까요.

[반짝 히어로]는 이처럼 사람과 동물 간의 특별한 사연들로 채워 나갑니다. 동물 관련 유의미한 일을 주로 다룰 예정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건들도 가급적 빠뜨리지 않고 기록할 것입니다.

더불어 사람과 동물의 '온전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 주변 숨은 영웅(히어로)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 마을과고양이 박용희 대표(왼쪽). 온라인 상에서는 '쿠키문용'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하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예비사회적기업 '마을과고양이' 대표 박용희 씨는 온종일 집에 틀어박혀 책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는 동네에서 '길고양이 밥 주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은둔자 집순이와 유명한 캣맘이라니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박용희 대표는 이 이율배반적인 자신의 정체(?)에 대해 "뭐에 홀려 그렇다"고 눙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바깥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고, 손에는 붓과 펜 대신 고양이 사료와 간식이 든 봉지가 자주 쥐어져 있다는 그.

이쯤 되니 궁금하다. 박용희 대표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박용희 대표는 그야말로 대표적인 고알못(고양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고알못 일 뿐 아니라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반대하는 1인이기도 했다. '어느 날 듣도 보도 못한 외계인들이 나타나 인간들 잡아다가 거세하면 기분이 어떻겠어?' 이런 마음이 길고양이들에게 이입돼 그들을 포획해 중성화 수술시킨다는 사람들을 속으로 욕하기도 했다.

그런 그의 눈에 길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하니 홍대 근처에 살다 난향동으로 이사한 뒤 생긴 변화였다. 첫 주자는 성큼 다가와 대뜸 친한 척하던 고양이. 자꾸만 눈에 띄기에 북어포를 건넸을 뿐인데, 그날 그렇게 박용희 대표는 길고양이들이 쳐 놓은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북어포를 낚아채 유유히 사라졌던 고양이는 다음 날 박용희 대표 앞에 또다시 나타났다. 그리고는 "어서 북어포 내놓으시지" 하는 뻔뻔한 얼굴로 그를 오도 가도 못 하게 막아섰다. 그렇게 세 번 네 번. 결국, 그녀는 난생처음 온라인 쇼핑몰에서 고양이 사료를 주문하게 됐다.

또 한 마리 고양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새끼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고양이는 어느새 배가 홀쭉해져 있었다. 그리곤 몇 달도 안 돼 또 배가 남산만 하게 부른 채 박용희 대표와 눈을 맞췄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자세히 관찰하니 고양이의 얼굴은 몹시 고단해 보였다. 새끼를 낳았을 텐데 어미 고양이 주변엔 한 마리 고양이도 없었다. 그때 용희 대표는 깨달았다.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은 결국 생명을 지키는 일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박용희 대표는 길고양이들 밥 주는 아줌마가 됐다.

▲ 관악구 난향동 동네 고양이.(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캣맘 활동을 하면서 박용희 대표는 고양이뿐 아니라 사람들과도 가까워졌다. 처음 고양이 밥 주는 일로 시비를 겪으면서 그는 좋은 인상을 위해 오래 고집했던 염색을 포기했고, 누굴 만나든 열심히 인사하는 버릇을 들였다. 헛수고가 아니었다. 마을은 그에게 그리고 길고양이들에게 관대해졌다. 집 앞에 자주 오는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싶다며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 그는 '사회적기업 마을과고양이' 대표가 됐다.

시간은 결코 그냥 흐르지 않았다. 같이 그림 그리던 후배들의 도움으로 길고양이 관련 콘텐츠들은 쌓였고, 동네 캣맘들은 뜻과 마음을 모아 쉼터를 열었다. 더 보석 같은 일은 주민들이 중성화 수술을 위한 고양이 포획을 이해하고, 그들이 돌아오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중성화 수술하고 오면 밤에 시끄럽게 안 떠든대."

시간은 관악구 난향동을 동물과 공존하는 동네로, 주민들 간에 길고양이 상식이 오고가는 곳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그 누구보다 고잘알(고양이를 잘 아는 사람)이 된 박용희 대표. 고양이 부자까지 됐다. 후배와 함께 사는 집에는 고양이 네 마리가,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들이 탄생하는 작업실(마을과고양이 사무실)에는 두 마리가 있다. 쉼터에는 여러 사연을 가진 아홉 마리 고양이가 평생 집사를 기다리고 있다.

박용희 대표는 대부분 캣맘·캣대디가 그러하듯 길에서 고양이를 배웠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최소한의 길 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들, 그리고 그들이 버려지는 이유까지.

길 위에서 그는 "내가 사는 동네 길고양이들만이라도 굶지 않게 해야겠다"는 다짐 비슷한 것도 하게 됐다.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위해 병원으로 이동할 때면 목표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도 하듯 옆자리 케이지 안에서 떨고 있는 고양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가족 만들 기회를 내가 없애버려 정말 미안해. 대신 약속할게. 너 평생 밥 굶지 않게 해줄게."

꾸준히 하는 것에는 힘이 생긴다는 말은 진리였다.

박용희 대표의 남다른 길고양이 사랑은 학교, 마트, 커뮤니티 그리고 나눔으로 확대됐다. 이름만 다를 뿐 이것들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길고양이 인식을 개선하는 것.

▲ 마을과고양이 쉼터에 있는 고양이들. 캣맘 네 명이 함께 돌보고 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실제로 '마을과고양이 학교'에서는 예술 활동을 기반으로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며 길고양이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을 병행한다. 동명의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는 직접 개발한 길고양이 급식소 및 길고양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캐릭터 상품들을 팔고, 수익은 다시 길고양이들에게 사용하고 있다. (아직 수익은 많지 않다. 거의 없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아픈 고양이들의 치료비와 쉼터 운영비, 개인에 대한 길고양이 급식소와 사료 지원 등에 드는 돈 대부분은 박용희 대표가 혼자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마을과고양이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길고양이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한 주민 네트워킹 및 인식개선 운동'은 여러 모습과 방법으로 마을로, 때론 마을 바깥까지 뻗어 나가고 있다.

박용희 대표는 말한다.

"어느 날 그림 그리는 후배 하나가 자기가 그린 두 손을 곱게 모은 고양이 그림 한 점을 선물했는데, 아무래도 그 그림에 무슨 주술 같은 게 걸려 있었던 것 같다. 가끔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길고양이들에게 마음을 쓰느냐고 묻는다. 이유는 없다. 그냥. 가족이니까. 가족이 아프면 치료해주는 건 당연하고 그들이 추위에 떨지 않고 배곯지 않게 하는 건 더욱 당연한 일이니까."

그는 또 말한다.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절대 동물을 버리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이 있지 않나. 맞다. 결국, 동물 좋아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에게서 동물들은 버림받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버려지는 이유는 고작 발정 그리고 털 때문이다."

박용희 대표는 길고양이들의 레이더망에 걸린 뒤로 매일 하루 24시간을 쪼개가며 살고 있다. 집과 작업실에 있는 아이들과 길 아이들(고양이) 밥 챙기는 일부터, 쉼터 고양이들의 입양처 알아보는 일, 수시로 들어오는 중·고등학생과 주민 대상 길고양이 인식개선 교육, 다쳤거나 아픈 길고양이 발견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달려가 구조해 병원 데려가는 일까지 모두 그의 손이 필요하다. (박용희 대표는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이들이 많은 덕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런 와중에 그는 회화과가 있는 사이버대학에서 공부까지 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이번이 마지막 학기라는 점.

이렇게 바쁜 일정 중에도 박용희 대표는 또 다른 일들을 꿈꾸고 있다. 동네 주민들이 그린 고양이 그림들로 전시회를 여는 일은 아무래도 가까운 시일 내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 마을과고양이 박용희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박용희 대표는 지난해 말 그 바쁜 틈에 길고양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책도 썼다. 삼색 고양이를 따라갔다가 발걸음을 멈춘 곳에서 우연히 만난 '몽실북스' 대표와 4년 넘게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여러 가지 일을 구상하다 태어난 책 '우리 동네 탐정단_고양이 납치사건'은 '몽실마고'(몽실북스, 마을과고양이를 합친 출판사명)의 첫 결실이다.

그는 책의 표지 날개에 이런 말을 썼다.

'우리가 사는 마을에는 길고양이들도 함께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은 고양이를 미워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길고양이는 처음부터 길고양이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버려서 길에서 살고있는 작은 생명들이 안전하게 잘 지낸다면 우리의 마을도, 우리의 마음도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 독자 여러분 주변에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면 주저 말고 아래 이메일로 제보해 주세요. 동물의 개인기나 생김 등에 대해서는 제보받지 않습니다. 박윤미 기자 yoom17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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