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의 노후낙낙]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 '영정사진'의 변화

경직된 증명사진 옛말...함박웃음에 자유로운 모습 흔해져

이준호 기자 | 기사입력 2021/06/09 [15:53]

[이준호의 노후낙낙]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것인가, '영정사진'의 변화

경직된 증명사진 옛말...함박웃음에 자유로운 모습 흔해져

이준호 기자 | 입력 : 2021/06/09 [15:53]

▲ 빈소에 놓여진 유상철 전 감독 영정사진.(사진=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팝콘뉴스


(팝콘뉴스=이준호 기자) * [이준호의 노후낙낙]은 올바른 노후생활을 위한 시니어 문화를 진단합니다. 낙낙은 즐겁다는 樂樂의 의미와 '넉넉하다'는 뜻, 노후를 노크한다는 Knock Knock의 중의적인 표현입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영웅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췌장암 투병 끝에 지난 7일 오후 50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팬들의 마음을 더욱 울리게 한 것은 빈소에 마련된 영정사진이었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그의 사진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 영정사진 덕분에 팬들은 힘차고 밝은 그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게 됐다.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나를 알려주는 영정사진의 힘이다. 

 

영정사진의 역사를 찾자면 송나라 학자 주희가 가정 예절을 모아 엮은 책 '가례(家禮)'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은 조선시대 많은 학자에 의해 재해석됐지만, 장례와 제사에 관해 기술한 부분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영정(影幀)이다. 당시에는 장례 때 고인의 초상화를 그려 혼백의 뒤에 놓기도 하고 생전에 그려 놓은 초상화를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신주, 지방으로 대체되면서 영정의 사용은 축소됐다고 알려진다. 

 

이후 장례에서 고인의 초상이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시기에 이뤄진 일본 조선총독부의 '의례준칙' 발표와 연관이 있다. 1934년 일본 조선총독부는 의례준칙을 통해 우리의 유교 의례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이때 상례와 관련한 절차에서 지방과 사진을 병용하도록 적시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개항을 통해 사진 기술이 유입되면서 초상사진이 유행했고, 세이난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을 거치면서 파병 군인의 사진을 찍어 놓는 것이 영정사진의 기원이 됐다고 알려졌다. 장례식에 영정사진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00년 전후로 추정된다. 실제 1932년에 제작된 일본 최초의 장례업체 카탈로그를 보면 상품 목록에 사진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영정사진이 현재와 같이 대중적으로 장례에 사용된 것은 1970년 이후라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 영정사진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는 백범 김구의 영정사진이 유명하다. 주한미국공보원의 한국인 직원이 1945년 7월 5일 촬영한 장례식 영상 속에서 백범의 영정사진은 운구행렬과 효창공원까지 함께했다. 

 

국내에서 영정사진이 대중화된 것을 장례업계에선 1980년대라고 추측한다. 1982년 부산의 한 상조회사가 일본식 장례상품을 판매했는데, 이 과정에서 영정사진이 유입됐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정사진은 취업 등 다른 목적으로 촬영해 놓은 증명사진을 확대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 놓는다는 것은 죽음을 부르는 불길한 일 취급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영정사진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이제는 스스로 미리 사진을 준비하는 것이 흔한 일이 됐다. 지역 노인회관 등 관련 기관에서 사용할 때를 대비해 사진을 저장해 놓는 경우까지 생겼다. 

 

과거엔 '농활'이 봉사활동을 대표했다면 이제는 '장수사진' 혹은 '효도사진'으로 명칭을 바꾼 영정사진 촬영이 가장 흔한 봉사활동이 됐을 정도다. 마을 어른들을 한곳에 모아 한복이나 양복 등을 준비하고, 얼굴 화장 과정을 거친 후 사진을 촬영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증명사진 형태를 벗어나 고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기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쓰는 예도 늘었다. 앞서 언급한 유상철 감독도 그렇고, 올 초 고인이 된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영정사진도 밝은 미소를 띤 연설 사진이 쓰였다. 표정뿐만 아니라 고인을 설명하기 위해 영정사진 속 옷차림이나 촬영 장소도 자유로워졌다. 직업을 나타내는 제복을 입은 모습의 사진이 쓰이기도 하고, 업무 현장 등에서 촬영한 것이 사용되는 일도 있다. 

 

딥러닝 인공지능 기술을 결합한 디지털 사진이 발전하면서 영정사진에 활용하는 경우도 늘었다. 평상복 차림의 사진에서 얼굴만 따와 한복이나 양복 차림으로 변신시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 됐고, 작은 사진을 확대하면서 흐려진 얼굴을 딥페이크 기술로 복원하기도 한다. 또 흑백사진을 컬러로 바꿔주는 기술도 많이 쓰인다. 

 

영정사진을 취급하는 스튜디오의 한 전문가는 "과거와는 달리 영정사진을 찍는 분의 태도도 많이 달라져 치아가 보이게 웃거나 선글라스를 쓰기도 하고, 정면이 아닌 옆얼굴이 보이게 모습을 촬영하는 사람도 있다"며, “미리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최근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장소나 의상과 관계없이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만 있어도 훌륭한 영정사진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