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괄 적용 반대. 검사 통한 선별적 제도 적용 필요해"


(팝콘뉴스=편슬기 기자) 고령 운전자들의 인지능력과 집중력 저하로 인한 교통사고가 나날이 증가하면서 고령 운전자들의 야간 및 고속도로 주행을 제한하는 '조건부 면허' 도입을 위한 연구가 시작된다.

경찰청은 7일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세부 도입방안 연구'를 위한 연구용역 공고를 내고 해당 연구를 진행할 연구진 모집에 나섰다.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는 고령자, 특정 질환 등에 의해 안전운전 능력이 떨어진 운전자에 한해 특정 조건에서만 운전을 허용하는 제도다.

경찰청은 연구용역 결과 평가체계 등 수립을 위해 2022년~2024년 연구 및 개발에 돌입하면 오는 2025년경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치사율 1.8배 높아


올해 초 삼성화재 부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경찰청 교통사고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9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3만 3239건으로 2015년보다 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고령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6% 감소했다.

아울러 비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100건 당 사망자 수, 치사율은 1.7명인데 반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치사율은 2.9명으로 약 80% 더 높았다.

고령자와 비고령자 운전면허 소지자 각 100만 명당 사망 및 중상자 수를 비교하면 고령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에서 63%나 더 높은 사망 및 중상자 수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반국도와 지방도, 군도 같은 차로 수가 적고 통행량이 적은 도로에서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망 및 중상이 97%~105% 더 많았고, 곡선부 내리막에서도 고령 운전자가 낸 사고의 사망 및 중상자가 114% 더 많았다.

고령 운전자 중 80~84세가 낸 사고의 사망 및 중상자가 65~79세, 85~59세 중 가장 많아 제일 위험한 연령대로 파악됐다.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 TASS 자료를 살펴보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및 부상자 수는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인다.

사망자 수는 3781명(2018년)에서 3349명(2019년), 2020년에는 3081명으로 줄어들었다. 부상자 수는 2018년 32만 3037명에서 2019년 34만 1712명으로 감소했고 2020년에는 30만 6194명으로 감소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는 전체 파이에서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 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는 반면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율 증가와 치사율이 홀로 증가하고 있는 점을 미뤄볼 때 해외 각국이 운영 중인 '조건부 운전면허' 또는 '한정 운전면허'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 도입에 대한 여론도 우호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자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2184명 중 1635명(74.9%)이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해외 고령 운전자 관련 제도 현황은?


가까운 나라 일본 역시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나날이 증가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까지도 도로 역주행 사고를 비롯,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하는 바람에 벌어지는 교통사고 등 고령화로 인한 인지능력 저하로 운전 조작 실수를 일으키는 고령 운전자에 대한 사고 방지법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고령 운전자 사고 방지를 위해 ▲면허 자진 반납 권유 ▲자동 브레이크 설치 보조금 지원 ▲75세 운전자 대상 운전능력 시험 실시 등을 마련 중이다. 또한 차량에 고령 운전자를 뜻하는 스티커를 붙이도록 권고하고 있다.

2019년 면허를 자진 반납한 운전자는 60만 1022명으로 당시 고령 운전자가 일으킨 도쿄 이케부쿠로 교통사고로 사망한 모자 사건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중 75세 이상이 58.2%에 달했다.

하지만 2020년 면허를 반납한 운전자는 전년 대비 4만 8641명 감소한 55만 2381명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은 코로나19로 인해 면허 반납 절차를 밟는 고령자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부 차원에서 고령 운전자 사고 방지를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있으나 문제는 일본이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가 2020년 발표한 교통안전백서에 따르면 2019년 면허 소시자 중 70살 이상 고령 운전자가 1195만 명으로 전체의 14.5%를 차지했다.

특히 대중들이 자주 이용하는 택시 기사의 고령화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후생노동성의 2019년 임금구성기본통계조사에 따르면 남성 택시 운전자의 36.7%가 65세 이상 고령자였다.

이 중 70세 이상도 14.4%라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일본 정부의 적절한 대안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한편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독일 등에서는 이미 조건부 운전면허제가 시행되고 있다. 미국은 의료평가나 기능 수행평가를 통해 조건부 면허를 발급해 야간 운전 금지 및 고속도로 운전 제한 등의 조처를 하고 있다.


고령 운전자, "연령대에 대한 일률적 운전 제한은 반대"


제도의 대상이 되는 고령 운전자들은 교통사고 위험에 따른 운전 제한 제도 도입 취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일률적 운전 제한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대한노인회 경남 지부 관계자는 "요즘 나이 65~70세는 젊은 축에 속한다. 운전에 어려움이 없는 나이이므로 만 65세 이상부터 야간 및 고속도로 주행을 일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대신 운전 제한을 두는 연령대를 더 높이고 교통안전공단이나 의료 기관 등에서 운전에 필요한 인지 능력 검사 등을 받고 운전에 어려움이 없다고 판단된 이들의 경우 운전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노인 단체 관계자는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고령 운전자의 숫자 역시 급속도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다만 모든 노인의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이므로 검사 등을 통한 '선별적 제도 적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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