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시니어클럽 꽈배기나라 근무자 오영옥 씨

▲ 은평시니어클럽 꽈배기나라 근무자 오영옥 씨.(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이준호 기자)* 굿업! 평생현역 코너는 인생의 후반전에서 새로운 일터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중장년을 만나러 갑니다. 굿업은 정말 대단하다는 Good Up과 좋은 직업(業)을 뜻합니다.

천직은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 준 직업이란 의미다. 그 천직을 잡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고, 자격을 갖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등 떠밀리듯 직업을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 어릴 적 부모의 권유로 운동선수가 평생의 직업이 되는 것이 흔한 사례라면, 어느 날 갑자기 운명처럼 만나는 사람도 있다. 빵 익는 냄새가 향기로웠던 꽈배기나라에서 만난 오영옥(68) 씨가 그랬다.

"처음엔 라면만 간단히 만들어 팔려고 했어요. 특별히 요리에 자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제는 천직이 된 음식을 만드는 일과 만난 것에 대해 오영옥 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남편 사업이 잘 안되면서 서울에서 시댁이 있는 전주로 내려가 살았죠. 어느 날 큰언니 집에 놀러 갔는데, 당시 건설 중이던 전북대학교병원 의대 학생들이 밥 먹을 곳이 없어 마당에 둘러앉아 허술하게 끼니를 때우는 것을 봤어요. 맘이 안타까워서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더라고요. 집에서 노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 작은 가게를 열어 라면이라도 끓여줘도 되겠다 싶어서 음식 장사를 시작하게 됐어요."

병원 앞 유일한 식당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당연히 승승장구했다. 교수부터 의대생, 교직원, 검진 장비를 설치하러 온 기술자하고도 식구처럼 지냈다. 라면만 내놓은 것이 미안할 때도 있었지만, 메뉴를 추가하거나 가게를 넓히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른 식당이라도 들어서면 경쟁이 어려우리라 생각했고, 평생 가져갈 직업이란 생각도 없었다.

▲ 은평시니어클럽 꽈배기나라 근무자 오영옥 씨.(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얼마 후 인근 고등학교에 수리 중인 체육관을 대신할 장소를 찾아 내려온 제일은행 여자 농구팀이 가게로 찾아왔어요. 한 달 동안 선수들이 밥을 먹어야 하는데, 라면만 먹일 순 없잖아요. 선수단 매니저가 자신이 식단도 짜고, 밥 짓는 것도 도울 테니 제발 식사 좀 만들어 달라 사정하더라고요. 그렇게 내몰리듯이 본격적인 식당 주인이 됐죠. 처음엔 간신히 백반 한 상 내놓기 바빴지만 말이죠(웃음)."

그러다 남편의 서울행에 맞춰 3년 만에 가게 문을 닫았다. 주변에 다양한 식당이 생기면서, 학생들 걱정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마음은 가벼웠다. 걱정 대신 경험과 자신감이 생겼다. 용기를 내 서울에서 식당을 시작했다. 병원 앞 작은 라면 가게에서의 생활이 없었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마침 친구의 가족이 일본에서 돈가스 기술을 배워와 식당을 하고 있었어요. 그곳에서 만드는 법을 익혀 종로에서 식당을 개업했어요. 그리곤 주변 회사에 구내식당이 생기기 전까지 10년 넘게 일했죠. 가게를 정리하고 나서는 공인중개사 자격을 따서 2년간 일하기도 했어요. 가게가 한가해지기 시작할 무렵 카운터에 앉아 교재를 들여다본 덕분이었죠."

▲ 오영옥 씨가 만들어진 꽈배기를 확인하고 있다. 오 씨는 "만드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꽈배기 모양이 다 다르다"며, "이쁘게 만드는 선배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고 설명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오 씨가 지금의 꽈배기나라와 만나게 된 것은 딸의 휴직으로 마지막 직업이었던 ‘육아’가 사라지게 되면서. 평생을 일하며 살았는데, 집에만 있는 것은 고욕이었다. 그러다 지인 소개로 은평시니어클럽을 알게 됐고, 담당자 추천으로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

"이제 벌써 3년이 됐어요. 돈가스로 다져진 기술이 많이 도움이 됐죠. 그래도 가끔 와서 기술 조언을 해주시는 교수님께 제빵에 대해 다시 배웠죠. 꽈배기나라는 은평시니어클럽에서 2013년에 시작해서 근무한 지 7년 넘은 선배님들도 계세요. 전 이곳에서 아직 막내급인걸요(웃음). 건강에 문제만 없으면 다들 그만두는 일 없어 열심히 일하세요."

꽈배기나라는 은평시니어클럽의 대표적 성공모델이다. 운영이 순항하면서 다음 해에는 2호점도 생겼다. 이런 성공의 비결에는 근무자들의 '자긍심'이 배경에 있다고 오 씨는 이야기한다.

"원칙대로라면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고, 재고가 남으면 폐기하면 그만이죠. 그런데 함께 일하는 근무자들은 그렇게 안 해요. 반죽을 숙성하고, 빵을 만드는데 2시간 정도 걸리는데, 늦게 시작하면 손님이 헛걸음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아침 8시 전에 출근해서 판매 준비를 시작해요. 매출이 높아진다고 월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내 가게라고 생각하니 판매가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죠. 그래서 재고가 남으면 한두 시간 가게에 더 남아있더라도 다 팔리는 것을 지켜보다 가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끼리 지키고 있는 룰이에요."

▲ 만들어진 꽈배기를 담고 있는 오영옥 씨. 오 씨는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시대로 접어든 만큼, 노인을 위한 질 좋은 일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꽈배기나라 역시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단체로 납품하던 주변 어린이집 등이 임시 폐쇄되고, 주변 상인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지면서 매출은 급감했다. 근무자들은 스스로 대책을 만들어 거꾸로 은평시니어클럽에 요구했다. 2인 1조였던 근무방식을 1인 근무로 변경해 각자의 근무시간을 줄였다. 고통을 분담하고 모두의 일자리를 유지한다는 의지였다. 그만큼 이들에게 꽈배기나라는 소중했다.

"꽈배기나라는 우리의 삶의 기반이니까요. 노후의 3대 불안이라는 돈, 건강, 외로움을 이 곳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어요. 누군가는 이런 일자리가 나라의 예산을 '공돈'처럼 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근무자들 생각은 달라요. 우리 손에 쥐어지는 돈은 판매로 인한 수익금에서 나온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그래서 책임감을 갖고 열심인가 봐요(웃음)."

저작권자 © 팝콘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