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푸근하면서도 균형 잡힌 두부의 탄생지, '엘림식품'

▲ '엘림식품' 박종명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두부는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되는 식품이라고 배웠어요. 간도 적당해야 하고, 콩을 불리고, 응고된 두부를 고르게 깨는 정도도 참 중요하거든요. 잘 못 깨면 단단함도 달라지고, 맛도 달라지니까요. 모든 과정 하나하나에 중도를 지켜야만 좋은 두부가 만들어집니다."

두부를 잘 만드는 노하우를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중도를 지켜야 한다'는 철학적이고도 심오한 답이 돌아왔다. 두부야말로 중도가 무너지면 맛도, 모양도 무너지는 식품이다. 너무 흔해 보여서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잘 만든 두부 한 모는 흔치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반대로 공장에서 나온 두부는 균형이 잡혀있기는 하지만, 따뜻하고 푸근한 맛이 없다. 아직 젊지만 학생 때부터 꾸준히 두부 만드는 일을 도와온 박종명 대표는 따뜻하고 푸근하면서도 균형 잡힌 두부를 만들어낸다. 아니, 박종명 대표 스스로가 마치 잘 만들어진 두부와도 같았다. 손님들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자신만의 철학이 단단하게 들어차 있는 한 모의 두부처럼 그는 오늘도 중도를 지키며 한 모의 두부를 만든다.

▲ 작업 중인 박종명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탄력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두부를 위한 노하우를 쌓다


1997년 1대 박례옥 대표가 배우자인 최창덕 대표와 함께 엘림식품을 자리 잡았을 당시만 해도 길 하나에 두부가게 세 곳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만큼 두부에 대한 수요도, 공급도 많았던 시기였다. 그중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부가게는 엘림식품이 유일하다. 수많은 공장에서 두부가 만들어지고, 포장되어 판매되지만, 직접 만든 두부로 경쟁할 수 있었던 비결은 오랫동안 지켜온 원칙 몇 가지 덕분이다.

우선은 친척에게서 직접 공급받은 국산 콩을 사용하되, 수확한 지 1년 내의 해콩 중에서도 질 좋은 콩을 고르고 골라 국산 두부를 만든다. 게다가 여기에 최상급 간수와 소금을 공수받아 사용한다. 두부는 단 세 가지 재료만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세 가지 재료만은 가장 좋은 재료로 쓰겠다는 엘림식품의 다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두부를 만드는 기술력만큼 중요한 것이 청결이다. 청결은 손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임은 물론, 맛 차이로도 이어진다.

"매일매일 청소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대청소해서 두부를 만드는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있어요. 매번 그렇게 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게으르면 두부 맛이 떨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재료와 환경으로 밑바탕을 갖추고, 기술력과 정성이 더해져야 엘림식품의 두부가 만들어진다. 탄력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쉽게 부서지지 않는 두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콩을 갈기 위해서는 콩을 불려야 한다. 하지만 콩을 너무 오래 불리면 수용성 단백질인 콩의 영양분은 물론 콩 특유의 고소한 맛이 달아난다. 그렇다고 너무 짧은 시간 콩을 불린다면, 콩의 비린 맛이 올라오기 때문에 적절한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여기서 두부가게 마다 가진 노하우가 발휘된다. 그날그날 기온과 습도에 따라 적절한 시간이 달라지는데, 그 편차도 적지 않다. 가장 짧게 불리는 여름날은 세네 시간이면 적당하고, 가장 오래 불리는 겨울날에는 12시간 넘게 불려야 한다.

이렇게 콩을 불린 뒤에는 불린 물을 제거하고, 다시 한번 콩을 씻어준 뒤, 맷돌에 갈아야 한다. 콩을 간 결과물이 바로 콩비지로, 콩비지에는 콩껍질과 콩즙이 포함된 상태다. 이때 여과기에 콩비지를 넣으면, 콩껍질과 콩즙이 분리되고, 이 콩즙을 100도에 끓인 다음에 받아내고 간수와 소금을 섞어 5~6분간 굳히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몽글몽글하게 콩즙이 뭉치기 시작하는데, 이 상태의 두부가 순두부다. 이 순두부를 틀에 부어 압력을 가해주면 모두부가 된다. 이때 역시도 압력이 적당해야 한다.

"저희가 두부를 손님들에게 드릴 때 제일 먼저 신경 쓰는 것이 탄력인데요. 두부를 너무 많이 누르면 딱딱해지고, 덜 누르면 무르거든요. 그래서 그 사이에서 적당히 탄력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정도를 지키려고 노력하죠."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모두 다른 두부 요리들이 나타난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이 두부에 대한 선호도도 달라진다. 부드러운 느낌의 콩비지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고, 단단해서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모두부를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 다양한 두부 상품(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마음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두부 제조 노하우를 물려받다


창업 당시부터 기반을 제대로 갖추기 시작한 엘림식품에서 고모와 고모부를 도와 방학이나 명절 때마다 일해 온 2대 박종명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두부를 만드는 과정이 좋았다.

"명절 때 두부가게에서는 워낙 일손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명절 때마다 와서 두부를 만들기도 했고, 방학 때도 틈틈이 고모와 고모부를 도와드리다 보니까 두부를 만드는 일이 제 적성에 잘 맞더라고요. 우선 저는 일찍 일어나서 일찍 잠자리에 드는 생활패턴이 좋았어요. 또 좋은 음식을 고객에게 전하는 즐거움도 컸고요."

작년 고모, 고모부가 갑작스럽게 두부 일을 못 하게 되었을 당시에 자녀 모두 다른 식품 사업을 이미 하고 있거나 허리가 좋지 않아 두부가게를 이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자신 있게 나선 것이 바로 박종명 대표였다. 엘림식품의 두부 노하우가 그대로 사장될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안타까워했던 사람, 엘림식품 두부의 진가를 가장 잘 알고 있던 그였기에 고모, 고모부도 그를 믿고 평생 가업이었던 엘림식품을 물려주었다.

이렇게 창업주에게 인정받은 젊은 두부 장인에게 있어서 두부를 만드는 일은 중도를 지키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기분이 좋을 때도, 안 좋을 때도 있지만, 마음가짐은 흐트러지지 않도록 노력해요. 두부는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되는 식품이라고 배웠어요. 간도 적당해야 하고, 콩을 불리고, 응고된 두부를 고르게 깨는 정도도 참 중요하거든요. 잘 못 깨면 단단함도 달라지고, 맛도 달라지니까요.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중도를 생각하게 되죠. 가끔이라도 맛이 달라졌다고 느껴지면 반성도 많이 하고요. 마음을 비우고 해야 하는 작업이니 일을 하면서 제 마음도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 엘림식품 전경(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맛있고 신선한 두부로 세대 간 유대감을 선물하다


워낙 기반을 잘 잡아 왔기에 작년 엘림식품의 대표가 갑작스럽게 바뀌었음에도 단골들은 친절하고, 인심 후한 엘림식품을 계속해서 자주 찾는다. 지금까지도 매일 엘림식품을 찾아와 순두부를 사 가시는 한 어르신도 그중 하나다. 다른 곳에서 수많은 두부를 먹어봤지만, 소화가 잘 안 되는데, 신기하게도 엘림식품의 순두부만은 속이 편안하다는 어르신은 아직도 엘림식품의 순두부만 고집한다.

"매일 오시는 그 손님을 보면 일하면서도 굉장히 보람을 느끼죠. 다른 곳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두부, 저희만이 만들 수 있는 두부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참 뿌듯해요. 더 좋은 재료를 쓰고, 더 깨끗하게 청소하면서 두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남녀노소 모두 호불호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건강식품인 두부는 유독 다양한 연령층에 사랑받는 식재료다. 그렇기에 박종명 대표는 두부를 '유대감'과도 같은 식품이라고 말한다.

"세대에 따라, 나이에 따라 좋아하는 식재료나 요리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 두부가 교집합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어르신들도 사 가셔서 손주들과 자주 드시곤 하거든요.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어르신들은 어르신들대로 각자의 스타일로 조리할 수도 있고, 요리하지 않고 두부만으로도 즐기실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박종명 대표는 앞으로 두부로 만든 유대감을 남녀노소 모두에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저희 두부가 맛있고, 신선하니까 저희 가게를 찾아주시는 분들 외에도 많은 분께 알리고 싶어요. 최근에 홈페이지도 만들었고, 구청에서 진행하는 배달서비스 앱에도 참여할 계획이에요. 인터넷상으로 택배 발송도 고려 중이고요."

할아버지 세대는 주택가를 건너 시장가에서 갓 나온 부드러운 두부를 봉지에 담아 사 오곤 했다. 하지만 손주 세대에서는 배달 앱을 통해, 홈페이지를 통해 먼 곳에서 온 맛있는 두부를 문 앞에서 쉽게 받아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듯,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엘림식품의 두부 역시도 앞으로 새로운 고객들을 맞이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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