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취재] "보호도 자유도 필요한데요?"...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의 증명

오는 12월 '시즌 1' 마무리..."탈가정 청소년이 집 꾸릴 수 있다는 가능성 보였던 곳"

권현정 기자 | 기사입력 2021/05/25 [09:00]

[가치취재] "보호도 자유도 필요한데요?"...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의 증명

오는 12월 '시즌 1' 마무리..."탈가정 청소년이 집 꾸릴 수 있다는 가능성 보였던 곳"

권현정 기자 | 입력 : 2021/05/25 [09:00]

▲ 지난 20일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 엑시트 사무실을 찾아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의 활동가 '한낱'과 앨리스 '얌'을 만났다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2018년 기준 여성가족부 추산 연간 탈가정(가출) 청소년 수는 약 27만 명이었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공식적인' 선택지는 대개 원가정 복귀와 쉼터 입소, 혹은 경제적 자립 세 갈래다. 하지만, 통계상 전체 중 일부만이 해당 선택지를 취한다.

 

지난 2017년 박경미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청소년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은 2만 9256명으로, 이 중 55.9%는 스스로 쉼터를 떠났다. 전체 퇴소자 중 가정 및 학교에 복귀하는 등 진로추적이 가능한 경우는 41.1%에 그쳤다.

 

원가정으로 복귀는 보호자의 학대가, 쉼터로의 입소는 지나치게 엄격한 규칙이 장벽이라고 당사자가 외치고 있는 만큼, 그 사이를 메꿀 수 있는 선택지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여전히 다수 시설이 '탈가정 청소년이 함께 꾸리는 거주공간'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변화는 더디다.

 

20일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움직이는청소년센터 엑시트(EXIT) 사무실에서 만난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의 활동가 '한낱'과 입주민(앨리스) '얌'은 이 같은 편견어린 시선에 대항하는 '증거'가 '이상한나라'라고 소개했다.

 

규칙 대신 '약속'이, 강제 대신 '상호합의'가, 통제 대신 '가족회의'가 있는 자립팸에서 청소년들이 '여전히 잘' 살고 있지 않냐는 설명이다.

 


규칙 말고 약속


 

얌 씨가 이상한나라에 입국(입주)한 것은 다른 거주지에서 들려온 '입소문' 때문이었다. 외박과 외출에 제한이 없다는 소식이 풍문처럼 들렸다.

 

얌 "선택지가 별로 없었어요. 쉼터 또는 길 위에서 생활하거나 친구 집에서 얹혀살거나 여기. 선택지가 세 가지 정도였죠. 당시는 미성년자라 집도, 알바도 부모 동의 없이는 구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엑시트를 아는 언니들이 '좋더라', '괜찮더라' 그래서 '아, 쉼터보다 조금 더 좋은 곳인가 보다' 그랬죠."

 

소문처럼 이상한나라에 따로 규칙은 없었다. 잘 때 시끄럽게 하지 않기, 본인 음식은 본인이 치우기 등 간단한 '약속'만 서로 합의하에 정했다.

 

상주하는 활동가도 없었다. '선생님'은 더더욱 없었다. 한 주에 두 번 이상한나라에서 숙직하는 활동가들은 청소년 입주자들과 합의해 존대할지, 어떤 호칭이 편한지를 묻고 정했다.

 

쉼터에서는 제한됐던 늦잠, 휴대폰 사용, 외출도 모두 자유로웠다. 

 

대신 '갈등'이 시작됐다.

 

"청소 관련 가족회의를 진짜 많이 했어요. 부엌 식탁에 먹은 걸 안 치워놓는다든지, 설거지를 안 한다든지, 그래서 냄비가 없다든지 하면 정말 화가 나거든요.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나가 있을 때도 있었고. '너 이거 싫어'라는 말을 잘 못 하는 편인데, 얘기할 건 해야하니까 가족회의를 계속했죠."

 

부딪치고 고민해야 할 사안은 점점 많아졌다. 일 년에 한두 번 여행 일정을 짜 여행에 나섰고, 엑시트와 연대한 활동을 꾸리는 것 역시 앨리스들의 몫이었다.

 

▲ 사무실 책상 한 편에 엑시트의 운영보고서와 자립팸 이상한나라를 소개하는 책자가 쌓여있다  © 팝콘뉴스

 

"작년에 제주국가폭력 기행이라는 주제로 제주에 갔었어요. 제주 4·3 사건, 강정마을 등을 다뤘는데, 제주도 바다가 따뜻해서 좋았어요. 활동 자체도 잘 모르는 걸 배우는 거라 재미있었고요."

 

지난 4월 16일 세월호 7주기에는 엑시트와 자립팸이 함께하는 ‘416기억과행동실천단’을 통해 추모 메시지를 작성하고, 애도의 묵념을 진행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엑시트 신입자원활동가를 교육하는 강사로도 나섰다. 엑시트는 1년에 한 번 정기교육에 청소년이 직접 강의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한낱 "앨리스들과 최대한 많은 활동을 하고 싶어요. 삶은 여러 가지 활동으로 채워지는 걸 텐데, 탈가정 청소년들은 살면서 여러 기회가 박탈당하는 경험을 많이 해왔으니까요. 활동의 내용도 청소년이 만들고, 하고 싶은 청소년이 참여하는 활동으로요."

 


여유를 선물하는 보호


  

안팎으로 부딪치면서 얌 씨는 "터질 뻔"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한 가족회의에도 변화는 더딜 때가 더 많았고, 청소 당번이 아닌 날에 청소해야 하는 날은 여전히 있었으며, 프로젝트는 어느 한 순간에 몰렸다. 

 

하지만 '갈등이 당연하다'는 마음과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마음 역시 생겼다. 

 

한낱 "활동하면서 힘든 순간이, 때때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 때거든요. 때로 '나는 앨리스의 감쓰(감정쓰레기통)가 아니'라고 항변하게 되는 순간도 생기고요. 그런데 활동가들을 생각해주는 앨리스가 등장하면, 그래서 '다른 사람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돼가고 있구나' 생각이 되면, 고맙거든요. 얌 님도 그런 앨리스였고, 위로가 고마웠던 순간이 많았죠"

 

어떤 '여유' 어떤 '든든함'이 그 아래 있었다는 부연이다.

 

이상한나라에 앨리스가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최장 2년 2개월이다. 이 기간 ▲ 피복비(계절마다 의상비) ▲기본 교통비 ▲블로그 및 인턴십 활동비 등 현금지급 사업도 동시에 실시한다.

 

특히, '기본소득'의 덕을 톡톡히 봤다. 이상한나라는 지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앨리스들에게 용처 제한이나 별도의 증빙 등을 요구하지 않고 월 30만 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탈가정으로 정부의 재난지원금 수령이 어려운 청소년들의 상황을 고려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역시나 증빙을 요구하지 않는 '긴급재난지원금'을 별도로 지급하는 사업 역시 진행했다.

  

"30만 원이라는 돈이 있으니까, 뭘 살 때 조금 덜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좀 더 '흔쾌히' 구매하게 됐어요. 빚도 많이 갚았고요. 기본 소득이 없었으면 갚기는커녕 늘었을 수도 있었겠죠."

 

이 같은 '여유'는 앞으로를 고민하는 힘으로 이어졌다.

 

현재 얌 씨는 대학교에서 세무 회계를 전공하고 있다. 대학교는 선택지 바깥이었지만, 활동가들이 '네가 원한다면 창구를 찾아보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얌 "숙직 날 밤이면 수학여행 온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느 날인가 제가 대학 진학을 제쳤다는 얘기를 한낱한테 한 것 같아요. 낮이었나."

 

한낱 "어떤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자원이 없어서 내려놓는 상황이 안타깝잖아요. '진학 생각이 없다면 안 하는 거지만 돈 때문이면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한 거죠. 대학진학과 관련해서 활동가 쏭쏭과 갈 대학정보도 찾고, 사업비로 원서비도 내고, 등록금이나 한국장학재단도 알아보고. 이런 '동행지원'이 자립팸의 핵심지원이에요. 중요한 건 붙어서 하되, 대신하진 않는 거."

 

최근에는 독립을 준비 중이다. 임대주택 제도를 통해 전세로 독립을 시작해볼 요량이다. 이것 역시 활동가들의 조력 덕에 찾은 '선택지'다.

 

▲ 엑시트 사무실 한 켠에 앨리스를 환영하는 사인, 청소년이 남긴 활동 감상문, 활동가들의 얼굴 그림, 편지 등이 붙어 있다     ©팝콘뉴스

 

다만, 이상한나라의 이같은 '실험'은 한동안 중지다. 오는 12월 이상한나라와 엑시트는 각각 8년, 10년의 서사를 일단락한다. 자금 부족 탓이다.

 

한낱 "안 그래도 이번 인터뷰가 '얌 출국 기념 인터뷰' 라고 우리끼리 얘기했었어요. 얌 님이 원래 10월 출국 예정이었는데, 조금 앞당겨진 거거든요. 다른 네 분 출국도 올해 다 같이 모여서 출국 시기를 정해서 '4월부터 하자' 하게 된거였고요. 시즌 2가 시작될 수가 있을지는 아직 모르죠. 그래도 우리끼리는 '시즌1 종료'라고 해요."

 

언제 '시즌 2'가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렵고, 일단 엑시트 사무실과 자립팸 공간이 일단 사라지는 만큼, 내년 12월에 자립팸이 어떤 공간으로 기억될지는 두 사람 모두 조금 머뭇거렸다.

 

다만, 지금 이상한나라가 어떤 공간이냐는 질문에는 두 사람 모두 즉각 대답했다.

 

한낱 "시설이 아닌 다른 다양한 주거 공간이 필요하고 가능하다는 걸 사람들이 진짜 안 믿어요. 탈가정 청소년에게 '비행 청소년' 혐의를 자꾸 덧씌우니까요. 보호하려거든 통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압도적이죠. 이상한나라는 '가능하다'는 걸 그냥 삶과 존재로 보여주는 곳이죠. 자신이 동거인을 선택해서 살 수 없는 등 여전히 한계는 많았지만, 그래도 버티고 같이 살고, 그렇게 증명해 온 공간이었죠."

  

얌 "자립팸을 만나고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하게 된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이 정도 살아서 다행이구나', '여기에 들어와서 다행이구나', '앨리스를 몰랐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생각 해요. 이상한 나라요? '집'이죠,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