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취미, '드로잉'

▲ 드로잉 클래스(사진=손현정 작가) © 팝콘뉴스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당연히 하고 싶은 일이며 누구에게나 당연히 필요한 일이겠죠. 하지만 취미를 묻는 말에 잠시 고민하게 된다면, 현재 내 삶에서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미일 겁니다. 만약 시간이 넉넉한데도 떠오르는 취미 하나 없다면, 새로운 취미에 맛들일 기회가 아닐까요?

마음 가는 대로 제멋대로 흘러간 선이더라도 내 마음에 들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처음 그 시작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본 경험은 아주 오래전 기억일 테니. 그럴 때면 재능이 없다고, 예쁘지 않다며 밀어두는 대신, 내 개성이 들어간 특별한 드로잉이라고 생각해 보자.


평범한 소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드로잉의 마법


"저는 그림을 못 그려요"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드로잉을 추천한다. 여기서 '못' 그린다는 표현은 "내가 '남보다' 예쁘게 그리지 못했어요"라는 표현이니까. 그렇다면 자기 자신조차도, 또 누구에게도 점수로 매겨지거나 평가를 당하지 않는 그림을 그리면 '잘' 그릴 수 있을 테니까.

네 살 아이에게 그림 그리는 행위는 한없이 즐겁다. 네 살 아이의 그림에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우리는 평가 받기 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림이 무서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네 살 아이처럼 내 마음 가는 대로, 제멋대로 그려보자. 그림을 그리면서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내 주변에 있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부터 그려봐도 좋다. 일상적으로 자주 봐서 그 모양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적당한 피사체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내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그 물건의 또 다른 모습이 보일 것이다.

▲ 연필로 그린 드로잉 작품들(사진=손현정 작가) © 팝콘뉴스


연필을 그리기 시작했다면, 육각기둥으로 잘 깎여진 연필 기둥이 가장 눈에 띌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막대 맨 끝에 닳기 시작하면서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난 부분이 보일 것이고, 이미 여러 번 쓰면서 뭉툭해진 연필심이지만 내가 쓰는 방향에 따라 한쪽으로 예리한 날을 가졌다는 것을, 지우개와 연필 기둥을 연결하는 알루미늄 이음새에 약간은 찌그러진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잘 쓰지 않았음에도 지우개 어느 한쪽은 거뭇거뭇하게 연필 자국이 묻어 있고, 힘주어 문지르다가 갈라진 부분이 있다는 것도.

이렇게 보니 이전까지 내가 알던 연필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렇게 연필을 촘촘히 뜯어보고, 내가 연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제 앞으로 이 연필을 볼 때 이전처럼 '연필'로만 볼 수 있을까. 앞으로는 '나의 흔적이 온몸 가득 새겨진 연필'로 보이지 않을까.

망원동 작업실 '손'을 운영하는 손현정 작가는 이 작업을 이렇게 표현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 일상적인 소재들을 가볍게 그려보는 것이 좋아요. 평범한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그 소재를 특별하게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갖는 건 참 의미 있는 일이죠."

▲ 다양한 드로잉 작품들(사진=손현정 작가) © 팝콘뉴스


종이와 필기구만으로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


드로잉에 필요한 것은 종이와 필기구, 단 두 개뿐이다. 어딘가로 떠나 그곳을 그리고 싶다면 이 두 가지만 챙기면 된다. 그것도 어렵다면 드로잉이 가능한 디지털 기기 하나만 있어도 가능하다.

게다가 드로잉은 필요로 하는 시공간 제약도 거의 없다. 과거 미술 시간에 맞춰 완성해야만 하는 작품이 아니다. 10분 만에 끝내도 되고, 일주일이 걸려도 상관없다. 짧은 시간 안에 대략의 선만으로 소재를 표현해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고, 큰 노력을 들여 명암과 질감을 표현하는 것도 드로잉의 또 다른 재미로 다가온다. 드로잉에 이어 원하는 색으로 색칠까지 해본다면, 드로잉 그 이상의 결과물이 눈앞에 나타난다. 드로잉과 함께하고 싶은 시간이라면, 그 시간이 몇 시든, 얼마간의 여유가 있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간에 이어 공간도 마찬가지다. 손목을 움직일 만한 공간만 있어도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으니, 출퇴근 지하철에서도 가능하고, 마룻바닥에 누워서도 가능하다. 지하철 안에서 앞자리에서 졸고 있는 사람의 모습도 괜찮고, 특별한 사연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누군가의 가방을 그려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마룻바닥에 누워서는 어렸을 때 꿈꿔 오던 만화 캐릭터나 이리저리 낙서처럼 추상적인 무언가를 그려내도 누가 뭐랄 것이 없다.

이렇게 한 장, 두 장 작품이 쌓이기 시작하면, 작은 연습장 한 권, 휴대폰 속 그림 폴더 하나, 내 방 한쪽 벽이 언제든 갤러리가 되어줄 수 있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고, 혼자서 보다가 언제든 수정해도 상관없는 당신에게만 열려 있는 미술관이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드로잉 과정에서 꼭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해 방콕하는 이들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을 외롭지 않게, 알차게 보낼 수 있는 좋은 취미가 되어줄 것이다.

드로잉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잡생각 없이 오롯이 그림에만 몰두하게 된다. 가끔은 너무 많은 생각이 나에게 밀려 들어올 때, 주위를 환기할 필요가 있을 때 드로잉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 SNS를 통해서 그동안 누군가에게 보이는 삶에만 치중했었다면, 드로잉은 내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한 도구로도 적합하다.

▲ 시니어 드로잉 클래스(사진=손현정 작가) © 팝콘뉴스


손 운동으로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뇌 자극하기


어르신들이나 아이들에게 드로잉이 특히 필요한 이유는 손의 감각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손을 활발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뇌를 활성화시키는 것과 같다. 따라서 뇌의 활동성이 줄어드는 어르신과 뇌의 활동성이 늘어나야 할 아이들에게 그림그리기는 뇌를 마사지하는 것과 다름없다. 손현정 작가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드로잉 수업을 하면서 어르신들에게 드로잉 취미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몸소 느꼈다.

"어르신들에게 드로잉을 가르쳐 드렸을 때 사실 젊은 층이나 어린이와 다를 바 없어요. 다만 그동안 문화예술을 즐기고, 향유했던 경험치가 적으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은 정도죠. '나이 들어서 내가 뭘 이런 걸 시작하겠냐'며 부끄러워하시지만, 호기심은 있으시니까 격려가 많이 필요해요. 게다가 드로잉은 신체적으로 무리 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취미라서 어르신들께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손현정 작가가 가르친 제자들은 주로 일상을 소재로 한 그림일기를 그리곤 한다. 매일 한 장씩 좋은 그림을 보고 그려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상화로 남기기도 한다. 작은 꽃 그림, 손주 그림 등을 그리며 서툴러도 흥미롭게 주변을 기록하자, 어르신들의 일상은 화폭에 담겨 더욱 특별해질 수 있었다.

우리 주변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고 감동하는 것, 진정한 미적 감각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드로잉만큼 미적 감각을 키우기 좋은 취미도 없을 것이다. 드로잉과 함께 우리 주변에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세상을 그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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