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영화 '학교 가는 길', 평범한 일상을 위해 투쟁했던 나날

함께 만들어 가는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

편슬기 기자 | 기사입력 2021/05/04 [09:55]

[사람] 영화 '학교 가는 길', 평범한 일상을 위해 투쟁했던 나날

함께 만들어 가는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

편슬기 기자 | 입력 : 2021/05/04 [09:55]

▲ 김정인 감독(좌), 김남연 씨, 이은자 씨(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편슬기 기자) 코로나19로 무엇이든 비대면이 익숙해진 요즘, 그간 당연하게 여겨졌던 '평범한 일상'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일상으로 다가온다.

 

가족들과 함께 외식하고 친구들을 만나 술 한 잔 마시는 나날, 평일이면 알람에 맞춰 일어나 학교에 가고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던 지극히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립고 소중하다.

 

비장애인들에게 당연했던 일상이 당연하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다. 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매일 같이 왕복 세 시간을 고속도로에서 보냈어야만 했던 아이들.

 

특수학교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구와 구를 넘나들었던 발달장애인 학생들의 이야기다.

 


학교 가는 길, 사투를 통해 지켜야만 했던 '일상'


5월 5일 개봉을 앞둔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의 김정인 감독과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자 강서 특수학교 서진학교 설립의 지대한 공헌을 한 학부모 이은자, 정난모, 조부용, 김남연, 장민희 씨 중 이은자, 김남연 씨를 서울 모처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척에서 마주한 이은자, 김남연 씨는 영화에서 봤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인상으로 다가왔다. 머리를 삭발하고, 눈물을 흘리며 무릎 꿇으면서도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투사의 모습 이전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영화를 찍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던 김정인 감독의 모습을 회상하며 이은자 씨가 던진 첫 마디다.

 

"처음엔 영화가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만들어도 될까?"라는 의문점들은 학부모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김남연 씨는 "어디 학교나 그런 곳에 제출하는 건 줄 알았지 이렇게 개봉까지 하게 될 줄 몰랐죠"라며 새삼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뗐다.

 

영화를 찍고 싶다는 제안을 해온 김정인 감독 역시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학부모들을 앞에 두고 이 길의 끝에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항상 조바심을 두고 작업했었다는 김정인 감독.

 

평소 아이들의 교육에 관해 관심이 많았던 김정인 감독은 강서구 특수학교 건립을 둘러싼 토론회 소식을 접했다. 성사도 채 되지 못하고 무산된 1차 토론회에 대해 그는 어떻게 학교 가는 문제로 이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냐고 생각했다고 한다.

 

2차 토론회 소식에 무작정 카메라 한 대를 들고 나섰던 그는 당시 토론회 현장을 고성과 비난, 비아냥이 아무런 필터 없이 화살처럼 쏟아졌던 곳이라고 기억했다.

 

성인 남성도 다리가 풀릴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의 현장에서 이은자 씨를 비롯한 학부모들은 담대하고도 의연한 태도로 조목조목 자신들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그 모습에 이분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 영화 '학교 가는 길'의 시작이었다.

 


영화 촬영과 일상의 경계에서


▲ 영화 '학교 가는 길' 촬영 스틸컷(사진=영화사 진진).  © 팝콘뉴스

 

촬영은 마치 공기처럼, 곁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이은자 씨는 "감독님이 계시나? 촬영하고 있나? 싶을 만큼 편안한 분위기였다. 영화 촬영 현장이라고 의식하지 못할 정도였지만 문득 주변을 살피면 어딜 가나 항상 감독님이 우리 곁에 있었다. 감독님의 세심한 배려가 녹아든 촬영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1:1로 속내를 털어놓아야 했던 장면이나 자녀에게 촬영 일정에 대해 충분히 이해시켜 주지 못한 부분이 있어 애가 타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이은자 씨의 딸 안지현 씨와 상추밭에서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다.

 

이은자 씨는 "평소에 하던 일정대로라면 외할머니 집을 방문했어야 했는데 상추밭에 가서 지현이가 나름의 방법으로 불만을 표한 것"이라며 영화가 미처 다 담지 못한 뒷이야기에 대해 살짝 밝히기도 했다.

 

김남연 씨는 얼굴이 부어서 나왔다며 탄식했다. 동대문 집회에서 입은 부상을 치료하느라 촬영 내내 약을 먹었는데 그 약의 부작용 중 하나가 얼굴이 붓는 것이라 영상에서 얼굴이 크게 나오는 게 의외로 속이 상했더라는 것이다. 그의 솔직한 발언으로 인터뷰 현장에는 요란한 웃음 폭탄이 떨어졌다.

 

'학교 가는 길'을 촬영하면서 김정인 감독이 중요시한 것은 발달장애인 자녀와 등하교를 함께하고 일상생활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제작자의 입장에서 사적인 의견을 배제한, 최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자는 점이었다.

 

김정인 감독은 "물론 시작은 부모님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만들었다. 제작 기간 3년,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었지만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했다"고 밝혔다.

 

내레이션이 없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일반적으로 내레이션을 넣게 되면 편향된 의견이 나올 수 있어서 일부러 넣지 않았다.

 

김정인 감독은 "양 측의 이야기는 충분히 담았기 때문에 영상만 보고서 관객들이 제 생각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여백'을 남기기 위한 장치였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학교 가는 길'에는 부연 설명이 따라붙지 않는다.

 

프레임에 담긴 모든 컷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보여준다. 그를 어떻게 판단할지는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겨뒀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비장애인과 장애인 잇는 가교 되길


▲ 영화 '학교 가는 길' 포스터(사진=영화사 진진).  © 팝콘뉴스

김남연 씨는 "서진학교는 엄마들만의 힘으로 만들어진 학교가 아니다. 서울시와 국토부를 오며 가며 만났던 분들, 교육청을 점거했던 때 곁에서 크고 작은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 함께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옛 기억을 더듬어서 도움을 주셨던 분들을 영화 시사회에 초대했다는 그는 영화를 보고 서진학교 건립 당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게 되면서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학교 가는 길'이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잇는 가교가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은자 씨는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픈 일이 많았지만 큰 줄기로 보면 '해피엔딩'이 아니냐"며 미소 지었다.

 

이어 "비장애인, 장애인 학부모님을 가리지 않고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뭔가를 계속해나간다면 결국 아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인 감독은 "영화 개봉 소식이 알려지자 당시 특수학교 건립을 반대했던 비대위원장에게 편지가 왔다. 영상으로 당시 상황을 비추는 것에 저 역시 마음 한편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었다. 하지만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치부할 수는 없다"라고 천천히 입을 뗐다.

 

그는 "서진학교를 둘러싼 이야기는 단순히 특수학교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순점'을 다룬 영화다. 강서구 주민분들 또한 사회적 제도의 명백한 피해자이며 이 영화가 그분들을 망신 주려고 만든 영화가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싶다"는 의견을 전했다.

 

제작을 마친 김정인 감독은 잠시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다. 차기작에 대한 계획은 없지만 관련 다큐멘터리나 젊은 층이 접하기 좋은 웹툰 등의 형태로 작품이 나오지 않겠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영화 '학교 가는 길'은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만을 관객으로 한정하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와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제는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우리 모두가 알기에 '학교 가는 길'은 좀 더 묵직한 울림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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