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없는 푸세식 화장실에 비닐하우스 간이 숙소... 시민사회 "사업장 이동 자유 있어야"

▲ 28일 SBS프리즘홀 앞에서 이주노동자 숙소 사진전이 열렸다. 사진전에는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샌드위치 패널로 세운 이주 노동자 숙소의 내외부가 담겼다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비닐하우스 안에 컨테이너 박스로 방을 냈다. 난방도 온수도 없다. 붉은 대야와 호스가 샤워시설 전부다.비가 오면 비가 새고 그대로 장판 아래 고인다. 주먹구구식으로 설치한 가스며 전기설비가 한쪽 벽면에 위험천만하게 엉겨 있다.

지난해 말 30대 여성 이주노동자 속행 씨가 일터에 달린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사건 이후, 정부에서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시민사회는 현장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 높인다.

이주 노동자 권익 관련 시민사회는 이달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이주노동자 숙소 사진전을 열고 열악한 이주노동자들의 실태를 고발하고 나섰다.

온라인에서는 홈페이지 '하우스이야기'를 통해 상시로, 오프라인에서는 지난 14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세 시간씩, 매번 다른 장소에서 한시로 사진들이 공개되고 있다.

28일 수요일 상암 SBS 프리즘타워 앞에서 열린 세 번째 이동식 사진전에 다녀왔다.


"한 달 25만 원 꼬박 공제"... 선택지는 '비닐하우스' 가건물뿐


지난 1월 고용노동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가 실시한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노동자 3,850명 중 69.6%는 '가설건축물'에서 생활한다. 가설건축물은 조립식 패널(34%), 컨테이너(25%), 비닐하우스 내 시설(10.6%) 순으로 많았다.

사진전에서 만난 숙소들은 대부분 큰 비닐 하우스 안에 컨테이너 박스나 샌드위치 패널 등을 채워 방을 나눈 모습이었다.

이러한 구조의 가건물은 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컨테이너 박스나 패널에 창문이 달려있더라도 겉면의 비닐하우스가 바람길을 막고 있는 까닭이다. 이에 따라 이주 노동자들은 한여름이면 40까지 치솟는 내부에서 찜통더위와 싸워가며 잠들어야 한다.

검은 천으로 비닐하우스 숙소 전체를 덮은 모습도 보인다. 차광막이다.

해가 들지 않고 환기가 어렵다 보니 장마철이면 숙소 전체에 습기가 찬다. 컨테이너 박스 안쪽으로 물이 맺히고 그대로 장판 바닥으로 떨어진다. 벽지는 곰팡이 투성이다.

▲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 숙소 내외부. 환기가 불가능해 여름이면 내부 온도가 40도까지 치솟는다 © 팝콘뉴스


화장실과 샤워실은 상황이 훨씬 열악하다. 잠금장치와 가림막이 없는 푸세식 화장실에 샤워실은 호스와 대야가 전부다. 온수는 나오지 않는다.

▲ 이주 노동자 숙소에 달린 화장실 ©팝콘뉴스

컨테이너 박스의 잠금장치가 고장 나더라도 '고쳐달라'는 요구는 퉁겨져 돌아온다. 특히, 여성 이주노동자에게 잠금장치 고장은 생존의 문제다.

이주민 방송의 2013년 실태조사 결과, 여성 이주노동자(203명) 가운데 10.7%는 성폭행 및 성희롱 피해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최근까지 안산의 한 농장주가 여성 이주 노동자를 상대로 상습 성폭행을 저지른 사건이 알려지는 등 피해는 지속하고 있다.

컨테이너 박스나 패널 없이 비닐하우스에 차려진 숙소도 전시됐다. 간이로 만든 마루에 장판을 깔고 단 아래 세탁기며 다른 설비가 널브러져 있는 모습으로, 침실 간 분리는 차치하고 생활공간 간 분리도 없는 모습이다.

▲ 부실한 숙소 잠금장치 ©팝콘뉴스

이주 노동자들이 이 같은 숙소에서 생활하면서 '월세' 조로 지출하는 돈은 한 달 15만 원~30만 원 안팎이다. 월세는 월급에서 공제된다.

현행 고용노동부의 '숙식비 징수지침'에 따르면, 서면 동의를 받은 사업주는 숙식을 제공하고 이주노동자 통상임금의 8~20%를 숙식비로 뗄 수 있다.

주거와 식사와 관련된 '질적' 기준은 없다.

▲ 이날 현장에서는 이주 노동자의 주거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역시 게시됐다. 화면에 나오는 여성 이주노동자는 "매달 30만 원씩 꼬박 공제되는데, 밥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푸세식 화장실을 1년에 한 번 비운다는 진술도 나왔다 © 팝콘뉴스


"문제 해결 위해선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돼야"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 대해 시민사회가 개선을 요구해온 데 따라, 정부는 지난 1월과 3월 고용허가 주거시설을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지난 1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개정안에 따르면, 사업주가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재고용, 신규, 사업장 변경 등을 위해 고용허가 신청 시 통과되지 않는다.

현재 일하는 사업장 숙소가 가건축물일 경우, 이주 노동자에게 추가적인 '사업장 이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내용 역시 포함됐다. 현재 이주 노동자는 최대 3번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농장주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가설건축물축조 신고필증'을 받고 정부가 현장 점검을 마치면 가설건축물이라도 이주노동자 숙소로 활용할 수 있어 사각지대는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노동부가 '허용'하는 숙소의 기준이 방의 '최소기준'을 충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1월 27일 발표한 외국인 기숙사시설표 서식 개정안에 따르면, 욕실에 대한 규정은 여전히 '화장실 및 샤워실 설치' 외 전무하다.

온수가 나오지 않아도, 변기 등 설비가 부족해도, 환기가 되지 않아도 설치가 돼 있다면 '허용'된다.

ILO(국제노동기구)는 근로자의 숙소에 관한 권고를 통해, 화장실에는 6명당 최소 변기 1개, 세면대 1개, 욕조 및 샤워기 1대를 설치해야 하며, 온수와 냉수가 적절히 보급돼야 하고, 환기가 원활해야 하며 침실과 별도의 공간에 구성해야 한다 등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 (사진=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팝콘뉴스

이에 노동계와 인권단체는 근본적인 대책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의 보장이라고 입 모은다.

현재 이주 노동자의 경우, '고용허가제'의 구속을 당한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이주 노동자가 필요하다고 노동부에 신청하면, 선정된 노동자가 특정 사업장 노동자로 등록되는 제도다.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은 현재 총 3회 허용된다. 허용사유도▲사용자가 정당한 사유로 근로계약기간 중 근로계약을 해지하려고 할 경우 ▲상해 등으로 해당 사업장 근무가 곤란할 경우(대통령령으로 정한 경우)로 제한된다.

휴업, 폐업, 현행을 위반한 기숙사 제공,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등의 경우에는 횟수와 상관없이 사업장을 이전할 수 있지만, 사업장 변경 신청 후 3개월 이내 근무처 변경허가를 받지 못하면 출국 조치 되는 등 신청 부담이 높다는 지적이다.

정진아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대리인단 변호사는 지난해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강제노동 피해 증언대회'를 통해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이란 현재의 근로관계를 해소하고 (그 다음) 다른 사용자와 다시 근로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주 노동자는 취업하지 못했을 때 강제퇴거의 대상이 된다. 노동자 개인에게 매우 큰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해당 사진전은 온라인 '하우스 이야기'를 통해 상시 전시된다. 오프라인 전시는 오는 5월 12일, 5월 26일 각각 동대문 DDP 서편 광장과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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