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수단 없이 거래 불가능한 비대면 시대, 고령층 불편 커져

(팝콘뉴스=이준호 기자) * 낙낙은 즐겁다는 樂樂의 의미와 '넉넉하다'라는 뜻의 낙낙, 노후생활을 노크한다는 KNOCK KNOCK의 중의적인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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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스크린 장벽에 갇힌 중장년

한 노신사가 패스트푸드 매장의 키오스크(무인주문기) 화면 앞에 신용카드 한 장을 들고 서 있다. 주문이 서투른지 주변을 둘러보지만 도와주려고 선뜻 나서는 이는 없다. 결국 노신사 뒤의 대기 줄은 줄어들지 않고, 기다리는 이들의 눈총이 느껴지는지 어깨는 점점 움츠러든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됐다. 코로나19 시대로 접어들면서 비대면이라는 수식어는 상식이자 절대 선처럼 여겨지기 시작했고, 덕분에 키오스크와 앱(App), QR코드라는 어려운 단어들이 익숙한 것들을 밀어내고 주인행세를 한다.

전화로 짜장면을 주문하고, 현찰을 내고 잔돈을 거슬러 받으면서 소비의 기쁨을 누렸던 중장년의 소외감은 더욱 커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층의 디지털정보화 종합 수준은 일반 국민 수준을 100.0%로 가정했을 때 2016년 54.0%, 2017년 58.3%, 2018년 63.1%, 2019년 64.3%였다. 매년 꾸준히 상승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일반 국민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처음 키오스크와 앱을 활용한 구매가 시작됐을 때 고령자들은 조금 불편을 감수하기만 하면 됐었다. 키오스크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패스트푸드 대신 동네 식당에 가면 그만이었다. 충전 결제가 귀찮은 버스보다 조금만 걸으면 지하철역에는 공짜 열차가 기다리고 있었고, 여전히 택시는 손을 들어 세울 수 있었다. 바쁜 젊은이들이 디지털 이기(利器)를 통해 편리를 추구할 때 중장년에게는 시간이란 무기가 있었다. 줄을 서 조금 기다리고, 시간을 들여 직접 방문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방식의 공존쯤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다. 비대면을 이유로 서비스를 제한하는 분야가 늘면서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의 사회적 고립이 심각해졌다.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유명 놀이공원에 입장하려면 앱을 깔아 본인인증을 하고 방문 기록을 남겨야 한다. 인기가 많은 놀이기구를 타려면 앱을 통해 '스마트 줄 서기'를 해야 한다. 이 역시 비대면 시대의 선택이다. 앱 사용을 못하면 아예 이용이 불가능한 놀이기구도 존재한다.

택시도 달라졌다. 카카오택시 등 앱을 통한 호출 서비스가 늘면서 손님을 찾아다니는 '전통적인' 택시들이 줄었다. 알아서 불러주는 손님이 있으니 택시 입장에선 연료를 소비하며 찾아다닐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택시라도 편하게 잡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이달 개막한 프로야구도 마찬가지. 입장 기록을 남기고 암표 근절을 위해 모든 입장권은 온라인으로 예매되고 카드 결제만 허용된다. 그나마 입장 인원이 제한되고 있어 예매는 순식간에 동이 난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배려는 기대하지 못한다.

현금을 받지 않는 거래 형태의 확대는 더욱 심각하다. 이미 2018년 기준으로 '가계 지출 중 상품 및 서비스 구입'에 대한 현금결제 비중은 19.8%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대부분 현금이 아닌 신용카드나 모바일 결제를 통해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것들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나 저소득층이 곤란해지는 시대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이러한 계층 중 상당수는 모바일 결제의 기초가 되는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조차 없다.

실제로 KFC의 경우 이미 2018년 모든 매장의 키오스크 설치를 완료했고, 맥도날드의 경우 올해 2월 기준으로 전체 매장 중 약 70%에 키오스크를 운영 중이다. 스타벅스는 아예 현금을 받지 않는 매장 운영의 실험을 2018년부터 시작했다. 현금 결제를 원하는 고객에 대해서는 카드나 모바일 결제를 안내하고, 현금뿐이면 스타벅스 전용 기프트카드에 현금을 충전해 사용했다. 잔돈 역시 기프트카드에 남기는 방식이다.

우리보다 모바일 결제가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중국의 경우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나서 "어떤 개인·단위도 현금 결제를 거절해선 안 된다"고 나섰을 정도. 미국 등에서는 현금을 결제 수단으로 유지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까지 논의되고 있다. 누구보다 비대면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우리도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장년 입장에서 대처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고령층 대상의 디지털 교육을 진행하는 지자체가 늘었다.

강남구의 경우 디지털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상담소'를 운영 중이다.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 등의 디지털 기기 사용법 교육이 목적이다. 은평구와 양천구, 중랑구 등 각 구에서도 유사한 교육이 실시 중이다. 취약 정도가 더 심각한 농촌 지역 역시 문화회관 등을 통해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제 고령자들도 더는 세상의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현금 거래와 대면 주문의 종말은 정해진 미래다. 언제까지 자녀나 주변의 도움에 의지할 수는 없다. 좀 더 나은 앞으로를 위해 조금씩 조금씩 디지털과 공존하는 삶을 준비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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