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부터 열까지 반려견을 배려한 시설로 한가득

(팝콘뉴스=편슬기 기자)반려인구 1,500만 시대. 개와 고양이를 비롯해 페럿, 앵무새, 토끼, 뱀 등 다양한 반려동물이 그들의 단짝인 주인과 일생을 함께하는 삶이 평범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됐다.

편의점과 슈퍼에서 반려동물 물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고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살 수 없는 반려동물 관련 제품이 없을 정도로 이 사랑스러운 반려들은 인간의 삶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한국에서 정착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 가야만 하는 과정이 있었으니, 바로 '주거' 문제다.


주거 빈곤, 사람만? 반려동물도!


▲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위치한 견우일가 전경(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숨만 쉬고 20년 일하면 서울에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에 더 이상 웃어넘길 수 없을 정도로 2030세대들은 주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들의 경우 사정이 더 열악하다. 발품 팔아 괜찮은 집을 구했다 싶었더니,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단 말에 조건이 몇 개는 더 붙는다. 임대 계약이 끝나면 다른 거주지를 찾아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일상이 반복되던 나날들.

취업 준비생 유하랑(25세) 씨와 그의 반려견 나라(6세 추정)도 바로 얼마 전까진 서로가 함께 하는 삶을 위해 이와 같은 과정을 수차례 거쳐 왔다.

유하랑 씨는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고 하면 임대금이나 월세를 올려 받기 일쑤였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이해하지만 개털이 날려 장독대에 넣어둔 된장이나 고추장이 개털로 수북하다는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기 일쑤여서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 포털사이트의 반려동물 카테고리에서 반려견 주거 공동체 견우일가(犬友一家)의 모집 글을 운명처럼 접하게 됐다. 그렇게 연이 닿아 지난 1월부터 입주를 마치고 인간과 반려견과의 공생을 전적으로 지원하는 견우일가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위치한 '견우일가'는 서대문구청의 청년 주거 지원 정책에 따라 반려견과 함께 사는 청년들이 주거지를 구함에 있어 어려움이 없도록 '국내 최초' 맞춤형으로 공급된 임대주택이다.

▲ 1층에 위치한 목욕 및 건조 시설(사진=팝콘뉴스). ©팝콘뉴스

반려견(소형견, 2마리 이하)을 키우는 만 19세부터 37세 이하의 1인 청년 가구 중 무주택자 및 월평균 소득 70% 이하의 도시근로자를 대상으로 입주가 가능하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입주자 모집 및 선정이 진행됐고 3월까지 입주를 모두 마칠 예정이다.

입주자 대표로 선정된 하랑 씨는 "견우일가를 알게 된 건 천운이었다"며 "모든 입주자들이 개를 키우다 보니 소음에 대한 민원이 없다. 아예 개가 짖는 소리를 '소음'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어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청 조사에 의하면 개 짖는 소리로 인한 소음 피해와 민원은 1년에 4만여 건. 이마저도 2017년 기준으로 2021년인 지금은 더욱 늘어났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층간 소음으로 어느 때보다 민감한 사회인만큼 '소음'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건 이웃 간 마찰을 피할 수 있다는 셈. 반려인들에게 크나큰 메리트가 아닐 수 없다.

임대 기간은 2년 단위로 계약 갱신되며 최장 만 39세까지 거주 가능하다. 임대 가격은 주변 시세의 30%에서 50% 정도로 월세나 높은 보증금에 대한 부담을 낮췄다.


반려견 친화적으로 설계된 '견우일가'


▲ 기둥에 설치된 리드 후크(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견우일가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공동주택에 들어서는 입구부터 반려견 친화적으로 설계된 포인트가 한가득이다. 이날 취재에 동행한 서대문구청 사회복지과 김효선 주무관은 1층부터 시작해 5층까지 안내하며 견우일가 곳곳을 소개했다.

필로티 구조로 지어진 견우일가는 1층부터 5층까지로 구성돼 있으며 총 12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6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에는 기둥마다 반려견의 하네스(반려견의 어깨와 가슴에 착용하는 줄)를 걸어둘 수 있는 리드 후크가 설치돼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반려견의 발을 씻길 수 있는 세족시설이 마련돼 있다. 또한 맞은편에는 애견 욕조(하이드로 바스)가 설치돼 있고 털을 말릴 수 있는 드라이기와 산책 후 수거한 반려견의 배변봉투를 처리할 수 있는 배변처리기도 설치돼 있다.

복도와 계단에 깔린 바닥재는 고무 재질의 타일을 사용해 반려견 대소변으로 인한 오염을 방지하고 소음감소와 함께 미끄럼 방지 효과까지 있어 오고가는 반려견들이 미끄러운 바닥으로 슬개골 탈골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 옥상에 펼쳐진 넓은 인공잔디 밭(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또한 건물 내 인조잔디를 한가득 깔아둔 휴식공간도 4층과 옥상에 조성돼 있다. 산책은 나가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을 때 반려견과 함께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서대문구청은 입주자들끼리의 원활한 공동체 생활을 위해 파라솔과 간이 테이블, 의자도 구비해둬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유하랑 씨는 "얼마 전 입주자들이 모두 모여 첫 회의를 가졌다. 관리인이 따로 없는 만큼 분리수거와 청소는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고 나중에 코로나가 괜찮아지면 휴게공간에서 다 같이 치맥(치킨+맥주)을 하기로 약속했는데 그날이 무척 기대된다"고 말했다.

집 내부도 반려견을 배려한 여러 시설이 돋보인다. 현관 앞 초인종을 누르면 반려견을 놀라게 할 수 있는 소리 대신 불빛이 번쩍거리며 방문객이 찾아왔음을 알려준다.

화장실의 경우 반려견이 마음껏 오고 갈 수 있는 펫도어를 하단에 별도로 설치했고 벽지는 소형견이 두 다리로 딛고 섰을 때 닿을 수 있는 부분을 몰딩을 이용해 상하로 나눴다.

▲ 화장실 문에 설치된 반려견 전용 펫도어(사진=팝콘뉴스). ©팝콘뉴스

김효선 주무관은 "반려견이 자칫 벽지를 긁어 손상시키거나, 마킹으로 오염될 수 있는 만일을 대비해 손쉬운 벽지 도배가 가능토록 일반 원룸과는 다르게 독특한 인테리어가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주인이 집을 비운 동안 실내 환기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 '열 회수 환기 장치'도 눈에 띈다. 실내 공기질 향상 및 곰팡이, 바이러스 등의 저감 효과와 불쾌한 냄새를 배출해 쾌적감을 높여준다. 실내외 모두 반려견을 위한 시설로 가득한 견우일가, 그야말로 이름값을 하는 셈이다.


“나라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 수 있었으면”


▲ 유하랑씨의 반려견 나라(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동물관련단체에서 근무해왔다는 유하랑 씨는 반려견 '나라'와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당시 안락사 1순위였던 나라를 구출해와 1년간의 임시보호를 결정하게 됐다.

유하랑 씨는 "임시보호라고는 하나 이미 입양을 결정한 상태에서 내가 이 아이와 얼마나 잘 지낼 수 있을지를 보기 위한 1년이었다.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의 나라는 처음 집에 왔을 때 구석에 숨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츰 서로가 익숙해지며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좁혀갔고 이제는 둘도 없는 사이가 됐다. 다만 하랑 씨가 걱정스러운 것은 밖에서 태어나 떠돌이 생활을 해왔던 나라가 ‘식탐’이 강해 아무 음식이나 먹으려 한다는 점이다.

나라에게 있어 바닥에 버려진 음식을 먹는 게 당연한 생활이었을 것이다. 함께 살면서 그런 행동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산책을 나가면 종종 완전히 다 고치지 못한 버릇이 튀어나올 때가 있어 마음이 아프다는 하랑 씨.

하랑 씨는 "이제부터는 견우일가에서 나라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나가려 한다. 나라가 잔병치레가 잦아 걱정이긴 하지만 올해부턴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같이 있어줬으면 한다"는 작은 소망을 내비치며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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