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이동 수요 줄면서 사실상 수입 없어... 지원도 비껴나

▲ 2월 24일 오전 서울시 송파구 탄천주차장에 먼지 쌓인 버스들이 줄지어 정차해 있다.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2019년도에 새 버스를 구입했다. 정신없이, 신나게 일했다. 하루 여덟 시간에서, 길게는 스무 시간까지. 움직이면 돈이 되던 때였다. 3년이면 할부금도 다 갚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다. 지난해는 1,000만 원을 채 벌지 못했다."

전세버스를 모는 황모 씨(50세)는 담담하지만 힘없는 목소리로 지금 상황을 말했다.

코로나19 발생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아직까지 우리 사회 곳곳은 길어지는 코로나19 사태로 곳곳에서 신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나 하늘길이 막히며 해외여행은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와 코로나19 확산 방지로 국내여행마저 개점휴업 상태를 면치 못하면서, 전세버스 업계는 더욱 극심한 부침에 시달리고 있다.

단체 여행 수요가 크게 줄었고, 수학여행 등 학교행사 수요도 사라지면서 기대를 걸 수 있는 노선이 사실상 사라진 까닭이다.

그나마 기대를 걸 수 있는 '고정' 노선인 통근 노선 역시 재택근무 등으로 수요가 줄면서 경쟁이 심해졌다.

또한, 전세버스 대부분이 차량 유지비와 구매비를 운전자 개인이 감당하는 '지입차'로 운영되는 만큼, 적지 않은 차주들이 무급에 차량 할부금이라는 '빚더미'에 올라앉아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모았던 돈, 대출로 버텨"... 고용유지지원금도 '남의 나라 얘기'


황 씨는 지난주 주말 한 차례 울산에 다녀온 이후 이번주 내내 쉬고 있다.황 씨는 "출퇴근을 주로 하는 버스는 조금 움직이는데, 우리처럼 관광을 주로 하는 버스는 거의 못 움직인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렇다 보니 전세버스 기사들은 주에 한두 번 정도 운행을 나가면 다행으로 여길 정도이다. 가끔 관공서 직원들을 태우는 통근 노선을 운행하기도 하지만, 워낙 경쟁률이 높아 고정 수익으로 보기 어렵다.

황씨의 경우 월세 60만 원, 공과금 25만 원, 운전자 보험 등 보험료, 가족들의 통신료 등 한 달 생활비를 모두 합치면 고정 생활비로만 한 달에 적어도 150만 원이 나간다.

황 씨의 운행 한 건당 수입은 25만 원이 채 넘지 않는 상황. 일주일에 한 번 겨우 운행을 할까말까하는 상황이다 보니,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100만 원이 채 안된다. 저금이나 문화 생활 등 본인과 가족을 위해 돈을 쓰기는 커녕, 고정생활비도 낼 수 없는 형편이다.

코로나19로 생계를 위협받는 이들을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은 황 씨와 같은 전세버스 기사에게는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차량 번호판을 지자체에 먼저 반납하라는 조건 때문이었다.

회사에 소속돼 있지만 자신이 산 버스로 운행을 하는 황씨와 같은 지입차주는 기본급은 낮고, 운행마다 받는 인센티브가 주 수입원이다.

휴직을 전제로 기본급 일부만을 제공받는 고용유지지원금은 황 씨와 같은 이들에게는 애초 선택지가 아니었던 셈이다.

국내 전세버스는 대부분 지입차다. 불법이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치는 없으나, 업계는 전체의 약 60%가 지입버스일 것으로 가늠하고 있다.

지입차주의 경우, 차량 유지비는 오롯이 차주 몫이다.

황 씨는 2019년 기존 중고차에서 새 버스로 넘어가면서 약 7,000만 원을 초기 투자 비용으로 부담했다. 버스는 약 2억 원, 내부 인테리어에만 2,000만 원이 더 들었다.

버스 내 설치된 와이파이와 위성 텔레비전의 수신료도 황 씨 몫이다. 운행이 언제 잡힐 지 모르니 섣불리 해지할 수도 없다.

차량 할부금도 부담이다. 전세버스 업계의 침체로 3~6개월 가량은 원금을 제외한, 이자만 값을 수 있도록 대출은행에서 조처를 해주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안돼 없는 살림에 원금을 꼬박내고 있다.

모았던 돈이 떨어져 신용대출 등 빚을 통해 마련한 돈으로 하루하루 버텼지만, 코로나19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대출금마저 바닥나면서 황씨는 최근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여행업체나 유통업체 직원들도 월급을 받지 못한 채 집에 콧 처박혀 있는 신세이다 보니, 일할 곳을 찾기란 녹녹치 않다.

황 씨는 전세버스만 10년을 몰았다. 운전으로 밥벌이한 일을 다 헤아리면 22년 째다.

코로나19는 22년간 운전대를 잡은 황씨가 당장 오늘 하루를 걱정하게 만들 정도로 인정사정 없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기 위한 정부의 울타리 역시 황씨에게는 너무나 높다.

황 씨는 "우리(전세버스 기사들)가 지금 사무직 정규직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잖나"라며 "갖고 있는 경차로 쿠팡 플렉스(쿠팡의 실시간 배송물품-배송기사 연결 서비스)라도 나서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더라. 여기(전세버스 업계)도 그렇고, 다 어려워지니까 그리로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경쟁이 치열해서 하루 한두 건 쯤 겨우 배달할 수 있더라"라고 말했다.

▲ 이날 탄천주차장에서는 셀프세차에 나선 버스 기사를 만날 수 있었다. 기사는 버스 청소를 위해 차고지에 나왔다고 했다. 다른 일정은 없었다. 2021.02.24 © 팝콘뉴스


"차량 팔려고 해도 사려는 사람 없어"


이직을 위해 대형 트레일러 시험장으로 이동하던 전세버스 기사 윤모 씨(50대 후반)는 또다른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재 전세버스는 당국의 차령제도에 따라 9년에서 최장 11년까지 운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부 관공서 등에서 5년 이상 운행 차량의 진입을 막고 있어, 사실상 5년에 한 번 차량을 교체해야한다는 설명이다.

윤 씨는 "회사 통근이 아니면, 주말 관공서 통근 정도가 그나마 들어오는 일정인데, 관공서는 5년령 이상 차량은 막는다"며 "현재 버스 브랜드가 현대·기아 정도만 남아 차량 중고가가 1년에 2,000만 원씩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중고차를 팔고 다시 짧은 연식의 차량을 구매하는 일에 대한 부담을 짚었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중고차 물량이 쏟아지면서, 그나마 팔리지도 않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회사 통근 노선을 점한 차주들은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이전보다 차고지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손가락만 빨며 발만 동동구르고 있다.

통근 노선이 있는 전세버스를 운행하는 기사 홍모 씨(64세)는 자신은 사정이 나은 편이라면서 또다른 통근버스를 가리켰다.

홍 씨는 "우리 회사는 출퇴근 운행을 모두 한다. 덕분에 90% 정도의 차량은 여전히 운행된다. 하지만, 저기 버스들 중에 출근만 담당하는 버스는 아침 일정 끝나면 거의 차고지에 있다"며 "(차고지 이용 차량 중)60% 정도는 종일 (아무 운행 없이) 서 있다. 40% 정도만 움직이는 수준"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홍 씨 역시 지난해 3월부터 10% 줄어든 기본급을 받는 등 타격을 입고 있다.

최근 홍 씨는 평일이면 출근일정이 끝나는 오전 10시부터 퇴근일정이 시작되는 오후 4시까지, 6시간을 차고지에서 보낸다.

주말에도 일정이 없다.코로나19 전이었다면 학교행사나 산악회 등 일정으로 평일과 주말이 모두 바빴다.홍 씨는 "(다른 일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나이가 있어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24일 오전 서울시 송파구 탄천주차장에 앞 번호판이 없는 전세버스들이 줄지어 있다. 번호판을 지자체에 반납하면 보험료와 세금이 발생하지 않아 적지 않은 차주와 전세버스 기업이 이같은 방법을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하고 있다. ©팝콘뉴스

최근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전세버스연대지부는 이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단체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재난지원금 지급이 골자다.

전세버스 기사는 정부 재난지원금이 특정 직업군으로 지원폭을 좁힌 이후, 지난 세 차례 해당 업종에 포함된 적이 없다.

창원시, 양평군, 김천시 등 일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50~10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으나, 해당하지 않는 지자체 소속 버스 기사들은 여전히 지원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전세버스연대는 지난 1월 26일 기자회견과 2월 18일 서울시 상경 차량행진을 통해 "(법인 및 개인)택시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재난지원금이 전세버스 노동자들에게 지급되지 않는 것은 일관성도, 기준도, 형평성도 없다"며 4차 재난지원금의 범위를 전세버스 기사까지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만, 이들이 '법제 바깥'에서 노동해온 시기가 긴 탓에 소득 수준과 상실 정도를 따지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로 인해 지금 당장 정부가 지원을 결정해도 자칫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버스기사 황 씨는 "그냥, 국가가 백신을 빨리 잘 풀어서 국내 여행 수요가 안정화만 되면 좋겠다"며 말했다.

다른 기사들 역시 "어떻게 해서든 코로나19가 빨리 끝나기만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는 언제쯤이면 끝날까?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다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울타리가 높아 차별받는다는 '억울함'보다는 "그냥 버티는 수밖에..."라며 절박한 목소리를 내는 전세버스 기사들에게 과연 "사람이 먼저다"라고 외쳐왔던 문재인 정부는 언제쯤이면 그 답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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