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델라웨어 지법에 특허 침해 공방... 미국·한국 정부, 관계 완성차 업계 촉각

▲ LG화학-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관련 소송이 결론 초읽기에 들어갔다 (사진=LG화학, SK이노베이션) ©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지난 2012년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은 '배터리 세라믹 코팅 분리막 특허(특허번호 775310)' 관련 소송을 2년에 걸쳐 진행했다. 양사는 LG화학의 특허 침해 소송, SK이노베이션의 특허무효 소송, LG화학의 무효 취소 소송 등을 주고 받다가, 2014년 협의를 통해 관련 소송을 갈무리했다.

당시 특허법원은 특허무효 소송을 긍정하며 SK이노베이션의 손을 들었으나 소송이 길어지며 양사 협의로 가닥이 잡힌 결과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특허 분쟁이 마무리 된 지 5년이 지난 2019년. 이번에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영업 비밀 침해 혐의로 소송전에 나섰다. 1차 소송전이 SK이노베이션의 공격으로 시작됐다면, 2차는 LG화학이 반격에 나선 것이다.


SK이노베이션-LG화학, 닮은 꼴 대응… "특허 침해 했다 vs 특허침해 소송 유효하지 않다"


이번 소송전은 지난 2019년 4월 LG화학이 ITC(미국 국제무역위원회)와 델라웨어주 연방 지방법원(아래 델라웨어 지법)에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LG화학은 보도자료를 통해, 2017년~2019년 사이 LG화학 전지사업본부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인력이 76명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해명과 함께 국내에서 LG화학을 '명예훼손'으로 제소하는 것으로 맞대응했다. 동시에 LG화학 및 LG전자를 ITC와 델라웨어 지법에 '특허 침해'로 제소했다.

당시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에 제기한 특허 침해 소송은 파우치 타입 배터리, 배터리 모듈, 배터리 팩 등과 관련한 특허 두 건(특허번호 10121994, 9698398)에 관해서다.

같은 해 9월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을 '특허 침해'로 제소했다. 리튬 이온 배터리, 배터리 모듈, 배터리 팩과 관련한 특허 다섯 건(특허번호 7638241, 7662517, 7709152, 7771877, 8012626)에 대해서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소송이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LG화학이 제시한 특허 침해 건 중 지난 2014년 다시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합의한 '분리막 특허’가 포함됐다는 이유에서다.

LG화학의 관련 국내 특허 775310호와 미국 특허 7662517호는 '패밀리 특허'로 묶인 대응 특허다.

▲ SK이노베이션이 공개한 2014년 LG화학과의 합의서(사진=SK이노베이션) © 팝콘뉴스

LG화학은 '당시 협의는 국내 안에서 효력을 가질 뿐 국외 대응 특허는 미포함'이라며 반박하는 동시에 SK이노베이션의 소송 내용 중 일부 역시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소유한 미국 내 특허번호 10121994(아래 994 특허)가 자사 ‘A7 배터리’에 적용돼 온 기존 기술과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이 994 특허를 출원한 2015년 이전인 2013년부터 LG화학이 A7 배터리를 크라이슬러 등에 납품했다는 것이 골자다.


증거인멸 공방까지


어느 쪽이 유효한 소송인가를 두고 일어난 설전은 증거인멸 공방으로 비화했다.

LG화학은 올해 8월 ITC에 SK이노베이션의 제재를 요청했다.

LG화학은 8월 ITC에 제출한 SK이노베이션 제제 요청 문서를 공개하면서,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컴퓨터의 '30일 자동 삭제 프로그램'을 줄곧 가동해 관련 파일을 훼손한 점, 또, ITC가 요청한 파일을 제출하지 않다가 휴지통에서 관련 문서가 발견된 점에 비춰 '증거인멸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 LG화학이 ITC에 제출한 법적 제재 요청서(사진=LG화학) © 팝콘뉴스

미 법원은 '디스커버리 제도(증거 개시)'를 두고 원고와 피고가 서로 요구하는 문서, 데이터를 전면 공개하도록 정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에 LG화학이 삭제됐다고 주장하는 자료는 임시 파일일뿐 원본은 모두 가지고 있으며, 휴지통에서 발견한 파일 역시 ITC 요청에 따른 포렌식 결과 관련 없는 자료라는 것이 드러났다며 반박에 나섰다.


LG화학이 승기 잡았지만… "합의 가능성 여전히 있어"


한편, 올해 2월 ITC는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조기 패소' 예비 결정을 내렸다. ITC가 조기 패소 결정을 최종 결정에서 물린 전례는 거의 없다. 업계에서는 이번 소송 역시 SK이노베이션의 패소로 결론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ITC가 주관하는 소송에서 패소 시 총관 금지, 압류 조치가 진행된다. 델라웨어 지법에서 패소 시 제조·판매 금지 및 손해배상 조치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양사는 아직 합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7월 자사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올 10월 ITC 최종판결이 나오기 전에 SK이노베이션과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 역시 입장문에서 "LG화학은 배터리 산업 생태계와 국가 경제 성장의 중요한 파트너라고 생각한다"며 합의를 요청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수백억 원 규모를, LG화학은 수조 원 대 배상금을 요구하면서 합의가 한 차례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소송에 각기 이해관계가 연결돼 있는 만큼, 양사, 특히 SK이노베이션은 합의에 계속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을 세우고 있다. 투자금은 조 단위,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자리는 2,000개 이상이다. SK이노베이션의 거래사인 폴크스바겐, 포드 등은 SK이노베이션에 유리한 의견서를 ITC에 전달했다. 이들 거래사는 이르면 내년부터 배터리 공급을 받기로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일자리와 크게 연관돼 있는 까닭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 정부도 관련 사안에 주목하고 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각기 현대·기아차 2차, 1차 배터리 공급사다. 현대·기아차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 기반 양산 전기차가 2021년부터 양산 예정된 상황이라 이번 소송에 따라 현대·기아차 수급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수소·전기차 등 친환경 모빌리티를 내세워 '그린뉴딜'을 추진 중인 한국정부에게도 이번 소송은 부담인 만큼, 양사가 다시 합의에 나설 가능성은 높은 편이라고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한편, 양사의 특허 소송에 대한 ITC의 최종판결은 다음 달에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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