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독일에서의 육아일기<2>

나는 왜 한국으로 돌아왔을까?

박영진 연구원 | 입력 : 2018/06/12 [10:01]

▲ 독일정치경제연구소 박영진 교육정책담당연구원



(팝콘뉴스=독일정치경제연구소 박영진 교육정책담당연구원) 나는 8년간 독일에서 20대를 보내고 현재는 30대 중반의 주부이다. 

 

아이들을 독일에서 모두 낳았고, 기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많은 엄마들이 묻는다. 

 

도대체 왜 그 좋은 곳에서 이곳으로 왔냐고.

 

이에 대한 대답을 나는 어찌해야 몰라 한동안 고민을 해왔다.

 

나에게는 너무나 분명한 이유가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나를 꼭 이해해줬으면 하는 분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하는 생각에 고민은 조금 길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매년 점점 심해 가는 아이의 피부질환을 보면서 나는 왜 한국으로 돌아왔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되었다.

 


나는 왜 한국으로 돌아왔을까?


 

나의 둘째 아가는 조금은 예민한 피부를 가진 꼬마이다.

 

독일에서도 가끔씩 일어나는 발진에 화들짝 놀라 병원으로 아기를 안고 데리고 간 게 몇 번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첫째 아이의 경우 전혀 피부질환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한 번도 걱정을 한 부분이 없었다.

 

다만 아토피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터라 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위해 많은 분들께 문의를 드렸다.

 

그러던 중 한글학교 교장 선생님이셨던 언니께서 나에게 올리브유를 권하셨다.

 

나는 몸에 바르기 위한 올리브유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식용 올리브유, 그것이었다.

 

나는 언니에게 들은 올리브유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소아과 선생님도, 아이를 돌봐주시는 모든 분들께서 올리브유에 대해 너무나 긍정적으로 반응을 하셨기에 올리브유를 보디 오일 겸 크림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프라이부르크에서 조한혜정 교수님과 그 일행분, 한 한의사님과 함께하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뵙게 되었고, 우리는 선생님과 그 일행분을 초대했다.

 

우리 집에 오신 교수님과 한의사님은 아이를 씻기고 올리브유를 바르는 나의 모습에 조금 놀라신 모습이었다.

 

한의사님께서 예전에 우리나라도 아이들에게 참기름을 사용했다는 기록을 보신 적이 있다며 너무 신기하다고 말씀하셨다. 

 

어찌 보면 조금은 당황스러운 선택인 올리브유를 나와 아이에게 사용하던 나는 당연히 둘째를 가지면서 올리브유에 믿음은 더해 갔고, 나 역시 올리브유를 몸에 바르는데 사용하기에 만족을 느끼고 사용하던 중이었다. 

 

둘째 아이는 소위 말하는 예민성 피부라 최근 병원에서 들은 소식은 알레르기가 생겼다고 한다.

 

독일에서 처음 발진되었을 때 아이의 피부 상태를 보신 소아과 선생님은 환경에 적응하는 중이니 언제나 걱정하지 말라며 수유 중일 때 나에게 발진 부위에 모유를 발라 주라 하셨다. 

 

그리고 '헤바메'의 도움을 받으라 하셨다. 

 

'헤바메'는 산후 도우미라 보면 되는데, 보험사에서 모든 비용을 지원해 주기 때문에 우리는 경제적인 부담 없이 '헤바메'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헤바메'는 둘째를 보자 예민한 아가라며, 자주 씻기지 말고 옷을 자주 갈아입히지 말라 하셨다. 

 

그 이유는 아이 스스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피부막을 형성하는데, 이를 씻으면 피부막이 제거되면서 또다시 피부막을 형성하기 위해 피부가 지칠 수 있고 건조해지는 원인이 될 수 있다며 조금은 건조한 아이에게 씻는 것과 옷을 자주 갈아입는 것이 도리어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올리브유 사용을 적극 권유했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으나 귀국한 후 상황은 정말 달라졌다. 

 

매년 발진 부위가 넓어지다 못해 아이가 가려움을 참기가 너무 힘들다며 울며 잠을 못 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를 엎어서 며칠을 재우다 잠을 너무 못 자는 아이가 걱정되어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게 되었고 주변 분들의 조언을 듣기 시작했다. 

 

어느 분께서 나에게 왜 치료를 회피하느냐 물으셨다. 

 

독일과 이곳은 환경적으로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고, 한국은 환경적으로 더 열악하기에 부가적인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분명 아이가 호전될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치료 받을 것을 권유하셨다. 

 

분명 설득력 있는, 당시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말씀이었다. 

 

나는 서둘러 평소 주변 언니가 추천해 준 병원 의사를 찾았다. 

 

선생님께서 아이를 보시더니 알레르기라 말씀하셨다.  

 

내가 알레르기 검사에 대해 묻자, 혈액을 채취해 알레르기 검사를 한 경우 체내에 있는 경우와 다르게 반응하는 경우가 있기에 알레르기 검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대신 식단 일기를 쓰는 것을 권유하셨다.

 

그러시고는 아이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기에 우선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 하셨다. 

 

나는 약을 먹이자는 말씀에 선생님을 바라봤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 약은 나온 지 10년이 넘은 약이라며 믿을 수 있는 약이라는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내가 병원에 내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데 망설인 이유를 스스로 찾게 되었다.

 

신약에 대한 두려움 그것이었다.

 


엄마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


첫 임신 당시 독일은 신약에 대한 의견이 매우 분분했다. 

 

당장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예방접종에 대한 불신으로 아이들에게 전혀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분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분에게 백신에 대한 그분의 의견을 듣고서 한동안 매우 방황했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새로운 신약을 독일에 투입을 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의견은 매우 분분했다. 

 

당시 대학을 다니던 나는 학생들이 신약에 대해 맞아볼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 의견이 양분했다. 

 

예방접종을 통해 새로운 병에 대한 저항력을 갖자는 의견과 검증되지 않은 약을 내 몸에 투약하는 것이 정상인가에 대한 질문에 검증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가, 더불어 얼마 동안의 검증이 믿을 만한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러한 토론을 바라보며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의 책임감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이제 태어난 결정권이 없는 아기에게 나의 결정이 아이에게 평생의 짐이 될 수 있다는 무게감은 한동안 나를 짓눌렀다. 

 

그러다 한글학교 교장선생님과 슈트로마이어 소아과 선생님이 가장 나를 설득시킨 의견인 적어도 30년 이상 백신의 영향력에 대해 조사를 한 기본접종은 믿어도 된다는 말씀에 나는 아이에게 조금은 무게감을 덜고 예방접종을 하게 되었고, 독일의 기본접종에 있어서는 시간이 쌓인 자료의 결정체라는 것에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귀국하기 전 슈트로마이어 소아과 선생님은 나에게 신약의 위험성에 대해 꼭 고민할 것을 권유하셨다. 

 

아시아의 신약에 대한 시도가 조금은 위험스러워 보인다는 개인적인 의견이셨는데, 당시 매번 의견을 묻고 따르던 한글학교 교장이셨던 언니도 같은 의견이셨기에 나는 이분들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둘째 아가의 발진에 그분들의 의견을 또다시 묻고 의견을 나누며 조금씩 결론이 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아이의 발진과 가려움을 무즙과 올리브유로 이겨보고자 했던 나의 모습은 의학적 도움을 회피하는 한 엄마의 무모함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깐의 편안함으로 후일을 장담할 수 없는 신약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은 어쩌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사랑을 많이 표현하자.


아이의 발진이 진정된 후 지인들에게 나의 귀국 이유에 대해 조금은 설명할 수 있을 거 같다. 

 

유학 시절, 대학에서 백신에 대한 토론 말미에 백신을 대신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테마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그렇다면 면역력을 강화할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조금 웃기지만 공감이 가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 

 

사랑을 많이 주고받는 사람의 면역력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에 대한 한 연구소의 연구결과 발표로 이 의견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이로 인해 많은 농담이 나오기도 했지만 아이를 가진 엄마인 나로서는 많은 인상에 남았다.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사람들의 에너지는 남다르다는 것을 나는 유학생활 내내 느끼고 보아 왔기에 엄마 아빠의 유학을 이유로 두 사람의 품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이모, 삼촌, 작은아빠, 작은엄마 등 그들의 품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많이 사랑 받고, 많이 사랑 주는 성인이 되시길 바라고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아이들에게, 그리고 내 아이들의 주변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가족으로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성인으로서 오늘도 아이들에게 뜨겁게 사랑하고 표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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