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생활자 운영 '가상 투자' 프로젝트 '니트 인베스트먼트' 데뷔전
'내 서사' 가진 이들

16일 서울시 강남구 마루360에서 진행된 2022 니트 컨퍼런스 현장에 포스터가 걸려있다
16일 서울시 강남구 마루360에서 진행된 2022 니트 컨퍼런스 현장에 '다정함이 우리를 지켜줄 거야'라고 적힌 행사 포스터가 걸려있다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 “방구석에서 노는 행위를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면, 고맙지 않겠어요?”(류잼 니트 인베스트먼트 참가자)

무업인 ‘소속’ 만들기 프로젝트 니트생활자의 ‘내 일’ 지원사업 니트 인베스트먼트의 성과 공유회가 서울시 강남구 마루360에서 16~17일 양일간 열렸다.

‘가상 투자회사’를 표방하는 니트 인베스트먼트의 투자를 받은 니트 중 이날 ‘데뷔전’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약 60여 명. 책을 쓰고, 문화 활동을 기획하고, 자격증을 따는 12주간의  활동이 함께 소개됐다.

쓰고 기획하고 공부하는 동안 이들은 왜 실업급여도, 예술 활동 지원금도, 인큐베이팅도 아닌 ‘가상 투자’를 선택했을까. 16일 행사장에서 그 이유를 들어봤다.

 

■ “다정함이 우리를 지켜줄거야”

니트 인베스트먼트는 사회에서 ‘니트(무업 상태 또는 무업 상태의 사람)’로 명명되지만, 실은 ‘취업이 아닌 일 경로’를 고민하는 무업 청년의 ‘고민하는 시간’에 투자하는 프로젝트다. 선정 기준은 ‘내 일을 일단 시도하겠다’는 결심, 결과물의 ‘사업성’은 논외다.

올해 진행한 2기 기준, 활동기간은 12주로, 1인당 20만 원, 재투자의 경우 40만 원이 지급됐다. 전신인 ‘니트컴퍼니’ 사업에 참여한 청년 60여 명이 사업의 문을 두드렸다.

자신을 ‘낭만주의 예술가’라고 소개한 닉네임 ‘보라’는 특정한 계기로 무업과 은둔 기간이 겹쳤을 때 니트컴퍼니를 만난 사례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가상 회사’와 ‘가상 투자’를 통해 ‘보라’는 ‘내 일’하는 삶으로 복귀했다.

‘보라’는 “교육받지도, 취업하지도 않은 상태였고, 커뮤니티 활동은 단절돼 있었다”며 “’보라’라는 이름 뒤에서 ‘어떤 일이 있었지’라는 시선 없이 활동할 수 있었다. ‘원래 모습’을 찾을 수 있게 해준 곳”이라고 니트컴퍼니를 소개했다.

16일 첫 번째 강연 '경험을 엮은 시간'에서 니트 인베스트먼트 참여 청년들이 무대에 올라 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류잼', '보라', 차종관 활동가, '처음처럼' ©팝콘뉴스
16일 첫 번째 강연 '경험을 엮은 시간'에서 니트 인베스트먼트 참여 청년들이 무대에 올라 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류잼', '보라', 차종관 활동가, '처음처럼' ©팝콘뉴스

대학 내 언론자유 활동가 차종관 씨는 가상 투자를 통해 ‘내 일’에 확신을 얻은 사례다.

차 씨는 7년여 활동했지만, 최근까지 자신을 ‘자발적 무업인’으로 정의했다. 성과가 있었지만, 수입은 없었던 까닭이다. 무력감과 번아웃이 찾아왔다.

번아웃 상태의 차 씨가 투자 기간 국회토론회를 열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고, 교육부에서 방침 마련 약속을 얻고, 의원실을 통해서는 정책 발의를 하는 “하나도 안 쉬운” 과정을 버틴 데는 ‘소통’이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차 씨는 “(니트 인베스트먼트가) 투자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일종의 공동체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내가 뒤처진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며 “그간의 활동을 성찰해 보면서, (지금과 같은 방식이) 정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소감을 밝혔다. 

‘니트’가 아니라 ‘미디어 액티비스트’라는 새 직명을 소개하기도 했다.

닉네임 ‘류잼’은 가상 투자 기간 ‘동네처럼 산책’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모르는 동네를 아는 동네처럼 함께 걷는 것이 골자다. 기존에는 프리랜서 대중음악 저널리스트 등으로 활동했다.

류잼은 “나는 ‘왜(무업 기간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는데 설명하기에는 사회적 가치와 다르거나 쪽팔릴 수 있지 않나. (가상 투자는) 그걸 지원해주고, ‘잘할 수 있다’고 해주는 일이었다. 거기서 새로운 가치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행사장 진열대에 이들의 작업물, 소개글, 온라인 포트폴리오로 연결할 수 있는 큐알 코드가 인쇄된 유인물 등이 놓여 있다 ©팝콘뉴스
행사장 진열대에 이들의 작업물, 소개글, 온라인 포트폴리오로 연결할 수 있는 큐알 코드가 인쇄된 유인물 등이 놓여 있다 ©팝콘뉴스

 

■ ‘내 서사’라는 힘

좀 더 단단해진 이들의 ‘다음 미션’은 또 ‘내 일’이다.

차 씨는 최근 15명의 필진으로 이뤄진 책 출판 프로젝트에 저자로 함께하고 있다. 정책 활동을 통해 1년 내에는 대학 언론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것 같아 은퇴 후를 또 그려볼 계획이다.

‘보라’는 가상 투자를 계기로 버킷리스트를 꾸준히 이루는 삶을 살 작정이다.

‘류잼’은 ‘음악 말고 여행으로 먹고사는 일’을 상상해보는 중이다.

차 씨는 “7년간 활동하지 않았다면, (학과의) 취업루트를 그대로 탔을 것 같다. 정말 무엇을 추구하려고 했는지, 뭘 했는지 ‘서사’가 안 생겼겠다”며 “20대 사회변화를 위해 ‘전력투구’했다는 내 ‘서사’가 하나 있다는 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게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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