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띠앗' 첫 번째 종결식에 함께했습니다

▲ 지난 20일 아동청소년 지원센터 띠앗의 종결식이 진행된 홍대입구역 인근 한 카페 테이블 위에 청소년들이 이날 만든 마리모 어항이 음료와 함께 올라와 있다.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번화가아기자기한 카페 한 곳에 직접 꾸민 반려식물 '마리모' 어항과 자기 얼굴의 캐리커처를 품에 안고 여성 청소년 네 명이 카페로 들어섰다. 저마다 테이블 앞에 둔 음료, 각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바쁜 눈, 문득 오가는 대화 등, 평범한 모임 같지만, 사실 이들은 지금 '졸업식'에 참여하는 중이다.

지난 19, 20일 이틀간, 아동·청소년 지원센터 띠앗은 올해부터 내년 초 만 24세를 맞아 지원이 종결되는 지원 아동·청소년 4명과 함께 지원 종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9년 띠앗과 인연을 이어온 청소년들은 이날 그간의 경험을 정리하며 인사 나눴다. 이들은 "눈물이 날 것 같다"며 아쉬운 마음을 전하면서도 "자격증을 따겠다", "카페를 차리겠다" 등 앞으로의 계획을 전할 때는 목소리가 곧았다.

지난 20일 띠앗의 첫 번째 '졸업식' 현장에 함께했다.

■ 가져야 하는 소소한 행복

띠앗은 인지능력에 제한이 있는 성매매 피해 청소년의 회복을 지원하는 거점 기관이다.센터는 2020년 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에 따라 작년 개소했지만, 많은 지원 청소년들이 띠앗의 전신인 '청소년성장캠프'부터 짧게는 1년, 길게는 9년간 인연을 이어왔다.

지원 종결 청소년 아영(가명) 씨는 "만 15세부터 9년 정도 (띠앗과 함께했다)"며 "다양하게 직업훈련도 해봤고, 모임도 해봤다. 인상 깊은 경험은 수영장 놀러 갔던 것. 가장 많이 기억난다"라고 말했다.

센터는 직업 활동이 가능한 아동·청소년의 경우 지원 아동이 희망하는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장애인고용공단과 연계하거나 자체적으로 이웃을 섭외하기도 한다.자격증 취득 과정을 지원하는 것도 센터의 역할이다.

다만, '회복'의 과정에서 가장 유효한 것은 '관계'라는 부연이다.

청소년 연지(가명) 씨는 센터와 함께 진로 결정, 자격증 취득, 첫 취업의 시기를 거쳤다. 박주현 띠앗 팀장은 "(연지 씨가 띠앗과) 인연이 깊다. 메이크업 수업 돕는다고 (선생님들이) 모델도 하고, 시험 보기 전에는 (선생님 손에) 네일도 했었다"며 연지 씨와의 기억을 들려주었다.

연지 씨는"센터에서 부를 때마다 갔다. 나에게 도움 되는 건 (직업훈련 등) 지원이었고, 사람하고 있는 건 '힐링'이었다"며 "(센터와의 작별이) 꼭 가족하고 헤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날 종결식에서 이들이 음료를 마시는 것도 미뤄두고 진지하게 적어낸 '만족도 평가서'에서도 "내 마음에 계속 담아둘게요", "위로도 주고 힘도 줘요" 등 센터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정은영 띠앗 상담사는 "친구들이 사람 간에 상호작용한 경험이 적다. 관계 맺는 경험에 노출시키는 것, 때로는 언니처럼, 친구처럼, 소소하게 (이들이) 가져야 하는 행복을 쌓아주는 것이 센터의 역할"이라며 "1년이라는 짧은 과정에서도 (아이들의) 태도가 '아무것도 하기 싫다'에서 '일하고 싶다'로 변하는 부분들을 보면 (보람 있다)"라고 말했다.

▲ 종결프로그램 만족도 조사 표에 "즐거웠다", "내 마음에 계속 담을게요", "추천추천" 등 청소년들이 직접 쓴 소감이 적혀 있다 © 팝콘뉴스

■ 경계선이라는 경계

다만, 센터 안에서의 노력만으로는 회복에 한계가 있다.

띠앗이 지원하는 청소년들은 지적장애가 있는 청소년만은 아니다. 장애인으로 등록되지 않는 '경계선 지능' 여성 청소년 역시 띠앗의 지원 대상이다.

정은영 상담사는 "스무 살이 넘어가면 (성매매 피해뿐 아니라) 경제 피해가 더해 발생한다. 금융사기를 당하고, 사기회사의 바지사장이 돼 있는 식"이라며 "여기서 잘 해결하지 못하거나 주 보호자가 역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신용도 명의도 잃고 빚더미만 남는다. 성매매 산업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법 현장의 경계선 지능 청소년 및 성인에 관한 이해가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 상담사는 "사건 조사에 동석해보면, 경찰이 '폐쇄형 질문'을 던진다. '(개인정보) 불러준 게 네가 맞냐', '그럼 동의한 것 아니냐' 식이다"라며 "아동·청소년 수사지원팀 등은 성인지 감수성이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다. 다른 범죄에서도 (아이들을) 비슷한 선상에서 봐야 하는데, 아직은 먼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가 차근차근 이뤄져야 하는 시점이지만, 되려 청소년 성착취 범죄에 관한 관심이 N번방에 관한 관심과 함께 시들어가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전했다.

현재 '성착취 아동 청소년 지원 거점 기관'은 '센터'로 이름 부르기는 하지만, 실상 3년 단위 공모사업이다. 지원되는 인력 역시 기관당 3명에 그친다. 현재 경계선 지능 아동 청소년·성인에 대한 보호막이 마땅치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만 24세라는 나이 역시 제한적이라는 시선이다.

정 상담사는 "법이 N번방 이후에 생기면서, 이전에는 (인지 능력이 부족한 청소년이) 피해자로 다뤄지지 않다가, 이후로는 피해자로 다뤄지더라.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돈도 벌고 지원도 주겠다는 거냐'는 인식이 또 생겼더라"며 "또 얼마나 엄청난 사건이 있어야 (피해에) 주목하고, 법이 개정될까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고 싶어요"

▲ 지난 20일 홍대 인근에서 아동청소년 지원센터 띠앗의 첫 번째 지원 종결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사진은 이날 오전 진행된 마리모 어항 꾸미기(사진=띠앗) © 팝콘뉴스

아영 씨는 현재 음식점에서 서빙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돈을 모아 자기 카페를 차리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미술 전공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연지 씨는 네일 숍에서 일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눈을 반짝였다. "일은 좋아하는데, 성격상 숫기가 없고 무뚝뚝하다 보니 직업으로는 고민 중"이라면서도 "손님마다 성격이 다 다르다. 손님에 맞춰 대하고 있다"고 직업의 특성을 소개했다.

이들의 목표는 저마다 다르지만,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바람에는 입을 모았다.

아영 씨는 "센터에 온 전후 변화를 따진다면, 원래는 소심했지만, 조금 더 할 말은 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사람도 잘 쳐다보게 됐다"며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고 싶다. 엄청나게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바랐던 것을 이뤄내는 선배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연지 씨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후배들에게 (알게 된 것) 알려주고 체험하게 해주는, 선생님들 만나서 (내가) 받은 것들을 베풀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목표를 밝혔다.

센터 역시 이들이 좋은 선배로서, 생존자로서, 후배들을 다시 찾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정 상담사는 "선생님이 줄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비슷한 인지능력을 가진 '선배 언니'가 생존자로서 그 자리에 있어 줄 때 생기는 (감정적) 깊이는 다를 것"이라며 "어제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는 활동을 했다. 종결한 친구들이 삶에서 목표를 실천하고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릴 텐데, 이후 이들과 후배들이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라고 전했다. [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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