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 청년공간에서 오는 29일까지 진행
내가 뭘 좋아하는지, 왜 사는지 묻는 일상적인 '진짜' 얘기 담아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와난 작가의 웹툰 '집이 없어'에서 자녀의 정상성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보호자 아래에서 자라난 유도 선수 '하라'는 친구의 끈질긴 지지로 겨우 부모의 그늘에서 비켜난 후 이렇게 소회를 밝힌다. "나는 개인의 끈기도 열정도 믿지 않아. 그런 것에 기대 모든 걸 혼자 감내하는 건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 뿐이야."

취미활동에 붙이기에는 조금 거창한 대사일 수 있겠지만, 그냥, 뭐든, 혼자 하지 말자는 얘기다. 혼자 말고 같이 할 수 있는 활동을 소개한다.

▲ 지난 24일 시흥시 청년공간 '청년협업마을'에서 '나만의 에세이 책 만들기'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 팝콘뉴스

"'쓸모없음'. 언제 이런 감정이 나에게 자리 잡았을까. 이날 나는 '나는 왜 쓸모있는 것인지'를 검색했다."

아침에 일어나고 씻고 출근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하루를 담은 글이 저자의 목소리를 타고 여섯 발짝 너비 작은 동아리실에 퍼졌다. 직장생활 2년 차, 약사 등 소개를 거쳐 '쓸모없어도 좋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짧은 글이 끝나자 네댓 명의 박수 소리가 조용히 번졌다. "약사에게도 약이 필요하겠다"는 감상이 돌아왔다.

지난 24일 '나만의 에세이 책 만들기' 활동을 진행 중인 경기 시흥시 청년협업마을을 찾아 '내 이야기'를 나누는 현장을 구경했다.

■ 나눌 만한 '지극히 개인적인 것'

'나만의 에세이 책 만들기'는 지난 17일부터 오는 29일까지 평일 저녁 4회차 진행하는 에세이 쓰기 모임으로, 지난 2020년도 진행한 '랜선책방'의 연장선에 있는 사업이다.

한 가지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전문 인터뷰어가 정리하는 '랜선책방'과 달리 자기 이야기를 직접 글로 정리하는 방식이라는 점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 각자의 '진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담고 나누고, '진짜'는 나눌 만한 것이라는 점을 알기.

이날 모임에서는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면서 '왜 사는지'를 고민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탐구하는 '일상'의 한 장면을 글감 삼은 글들이 공유됐다.

합평 시간은 '쓰는 기술'에 대한 평과 함께 '이야기'에 대한 감상과 대화로도 번졌다. 관계 맺기를 '우주와 만나기'로 표현한 문장에 관해 이야기하다가도 "나도 가족과 다시 관계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된다"는 고민이 달리고, "자기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 어려운데 용기 있다"는 격려가 이어졌다.

"일기만 써봐서, 프로그램 신청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는 황혜림 씨 역시 "감정을 나열만 할 줄 알았는데, 모임에 나와보니 (강사님이) 자연스럽게 와서 문맥을 잡아주셔서 도움이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을 점검해준다는 게 되게 좋더라"며 "'내가 나를 정리할 줄 아는구나' 싶어 나를 찾는다는 목표에 조금 다가간 느낌"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지난 랜선책방 사업에 참여했었고, 그때 기억이 좋아서 다시 참여했다"는 한세나 씨는 "선생님들이 너무 좋다. 서로 이야기 나누는 작업에서 비평할 필요도 있겠지만, 들어주고 얘기해주고 격려하더라"며 "사회생활에서 지친 정서가 보완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신재윤 시흥시청 주무관은 "2020년에 코로나 때문에 청년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수단이 한정적이었다. 그때 '정신건강' 얘기도 나올 때다. 나에 대해 이야기하면 청년들이 독자가 돼서 그 사람을 만나는 '사람책'이라는 툴로 온라인 모임을 가져보자 생각했던 게 시작"이라며 "('랜선책방'에서도 '에세이 모임'에서도) 중요한 건 '나의 글감'을 찾는 거였다. 글감이 엄청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가 더 '사람책'에 가깝지 않나"라고 말했다.

청년협업공간은 오는 29일 모임을 마치면, 4회차 수업에서 진행됐던 '창의적인 자기소개서', '자유로운 에세이 쓰기'를 통해 얻은 글을 모아 책으로 엮을 예정이다. 이날 강사로 참여한 시흥시 인문학 모임 '어쩌다 사춘기' 한옥구 모임장은 "집에서 써오는 과제는 이제까지 없었는데, 아마 이번 주말에는 집에서 써오는 과제가 나갈 예정"이라며 "모집 인원이 미달하기도 했고, 이탈하기도 하고, 건너뛰고 참여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아쉽기도 했지만, 자기 얘기를 재미있게 써주고 계셔서 결과물이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 집도 아니고 회사도 아닌

한편, 청년협업마을은 이밖에 창작이나 목공예 등 공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창업 기업 입주공간도 마련돼 있다. 밴드 연습실, 포토 스튜디오 등도 운영 중이다.

신재윤 주무관은 "집이나 직장이 아닌 공간, '내 작업실' 같은 공간이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부할 공간, 모임할 공간, 구상할 공간이 필요할 때 조금이라도 힘이 되는 공간이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혼자만의 작업실' 만은 아니라는 부연이다. 신 주무관은 "'관계맺음' 하기가 어려운 사회지 않나. 관심이 크지 않은 주제라도 프로그램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새로운 관계맺음을 경험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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