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축소됐지만 제자리 지켜
쉼터와 쉼터 바깥 잇는 '접착제' 역할
"거리두기 없어진 만큼, 활동 본격화할 것"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아이들은 온 마을에서 자란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골목에서, 길거리에서 자란다. 코로나19로 집과 학교 사이의 공백을 채우는 또 다른 돌봄의 자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교와 집 바깥, 아이들을 돌보는 마을 곳곳의 모습을 연재 기사로 담는다.

▲ 지난 21일 망원유수지체육공원 입구 버스 정류소 인근에 청소년 아웃리치 부스가 펼쳐졌다. 용산일시쉼터 아웃리치는 매주 목요일 오후 네 시부터 여덟 시까지 이곳을 빠짐없이 찾는다. 사진은 용산일시쉼터 활동가와 자원활동가 © 팝콘뉴스

'쉼터'는 홈리스청소년들의 가장 후순위 선택지다.친구 집, PC방, 코인노래방, 24시간 카페 등에서 잠을 청하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야 쉼터를 찾는다. 필요한 것이 '잠과 밥'만은 아니라서다. 많은 청소년이 쉼터의 엄격한 규정을 몸에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

여성가족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청소년 쉼터 입소 청소년 중 절반(55.9%)은 스스로 쉼터를 떠났다. 취업·타 시설 연계 등으로 퇴소해 진로 추적이 가능한 경우는 전체 퇴소 청소년 중 41.1%에 그쳤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쉼터가 필요하다. 쉼터의 역할이 '잠자고 밥 먹을 장소'를 제공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 까닭이다. 쉼터에서 만난 '좋은 어른'과의 관계는 종종 퇴소해도, 독립해도 이어진다.

봄빛 완연한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망원유수지체육공원 앞에서 펼쳐진 서울시립용산일시청소년쉼터 누리(이하 용산일시쉼터)의 아웃리치(현장 지원) 부스를 찾았다.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 쉼터와 퇴소 청소년의 '접착제' 역할을 하는 이들과 함께했다.

■밥을 먹으러, 옷을 받으러, 때로는 '놀러' 옵니다

▲ 21일 아웃리치 부스 위에 지원물품이 올려져 있다(사진=용산일시쉼터) © 팝콘뉴스

마스크, 먹을거리, 마실 거리 등 생필품을 올려놓은 소담한 부스 뒤로 바람막이 패딩을 덧입고 선 활동가들이 꽤 거센 저녁 바람을 버티고 서 있었다.

부스가 문을 여는 것은 중·고등학생들이 하교하는 오후 4시경. 부스는 만 9세부터 24세 청소년이라면 누구든 이용할 수 있다. 이날 부스를 찾은 청소년은 대략 40~50명. 기자가 부스를 찾은 오후 6시경에는 대부분 간식이 동이 난다.

하지만, 물품이 대부분 동이 나고 해가 지고 난 다음에도 두어 명의 청소년이 부스를 찾았다.

느지막이 부스를 찾은 가정밖청소년 당사자 A씨(24)는 "아까 왔을 때는 물품이 많아 보였는데, 많이 빠졌다"고 말문을 트고서도 한참 자리를 지켰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이주연 용산일시쉼터 활동가에게는 먼 골목까지 달려 나가 격렬한 안부 인사를 나눴다.

A씨는 용산일시쉼터를 포함해 여러 일시, 단기 쉼터 등을 이용하다가 현재는 독립해 살고 있다.

"옷 빨고 밥 먹고 자고 나가고, 아프면 병원에 동행해주는" 쉼터 생활 중에 활동가와 "어쩌다 보니" 친해졌다는 A씨는 "나이 비슷한 애들과는 낯가림이 있는 편인데, 선생님들은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 전했다.

이주연 용산일시쉼터 활동가는 "쉼터를 이용하던 친구 중에 지금은 독립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의료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연락하더라.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들어주는 것 말고는 별로 없는데,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다 얘기해주더라. '안정을 얻나 보다', '아이의 삶에 가장 깊게 들어가는 일이구나' 싶어서 기억에 남는다"며"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지원은 음식, 의복 순인데, 이후에는 정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선생님과의 관계가 형성되면 독립하고도, 음식이 있더라도 정서적인 지지를 채우러 온다"고 말했다.

이날 A씨 역시 이주연 활동가와 일상적인 고민을 나눴다. 지역자활센터와 연계해 직장을 다니고 있는 A씨의 올해 목표는'빚 갚기'와 '일 안 빠지기'. 오는 26일에는 반려동물 관리사 자격증 시험을 본다.

■오가며 들르다 '어쩌다 보니'

이날 만난 청소년들은 일상을 마치고 근처 아웃리치를 찾았다. '오가며' 들를 수 있도록 제시간 제자리에서 아웃리치 부스가 열리는 덕이다.

용산일시쉼터는 코로나19로 2020년 상반기 아웃리치 운영을 중단했다. 2020년 하반기부터는 무인 아웃리치를 운영해왔다.

현재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각각 광진구 건대입구역, 성동구 한양게임센터 앞, 마포구 망원유수지체육공원 앞, 관악구 봉림교에서 오후 4시 혹은 5시부터 8시까지 '유인' 부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다만, 쉼터는 '무인 아웃리치 부스'라도 공휴일이나 비나 눈이 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미리 고지한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청소년들을 만나왔다.

이주연 활동가는 "비대면 활동으로 아웃리치가 가능할지 의문도 많았는데, 적지만 꾸준히 (무인)아웃리치 부스를 이용하는 청소년들이 있더라. 그걸 보면서 적어도 이 아이들에게 '코로나지만, 우리가 항상 이 자리에 있다'는 메시지는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두 달째 마포구 부스 운영을 함께하고 있는 이민지 자원활동가는 "어린 친구들은 간식 받으러 오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게 역할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오히려 진지하게 다가가면 '어?'하면서 멀어지기도 하니까.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로 출발했다가 '나 가출 경험 있는데?' 얘기 꺼내는 친구도 있다"며 "작은 소개가 (청소년들에게) 영향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보람있다"고 말했다.

▲ 물품을 받은 청소년들이 '방명록' 격으로 남기는 설문지. '학교 다녀요?', '가출 중인가요?' 등을 묻는 설문지는 간식과 함께 대화의 '물꼬'를 트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 팝콘뉴스

■ 코로나19에도 쉼터 문 엽니다

다만, 코로나19로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 수는 늘었는데, 그간 장소 섭외가 어려운 탓에 활동이 축소된 것은 아쉽다고 활동가들은 입을 모았다.

이주연 활동가는 "PC방이나 코인노래방, 24시 카페 등이 거리두기 영업 제한으로 많이 문을 닫으면서 일시쉼터 이용하던 아이들이 단기나 중장기 쉼터로 많이 입소했다. 때문에 쉼터 이용자 수 자체는 큰 변화는 없는데, 아동학대로 오는 아이들이 많이 늘었다. 이렇게 입소한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며 "아이들이 (아웃리치에서) 이야기도 하고 쉬다 가면 좋겠는데, 쉴 공간이 협소하다. 눈에 띄어야 더 찾아오는 것도 있는데 (그게 안 되는 상황)"라고 전했다.

노천희 활동가 역시 "코로나 전에는 부스 캐노피를 펴고 테이블 여럿 놓고 보드게임 등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홍보식으로 하다 보니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 이주연 활동가(왼쪽)과 아웃리치 부스 이용 청소년이 망원유수지체육공원을 걷고 있다 © 팝콘뉴스

지난 18일부터 거리두기가 해제된 만큼, 쉼터는 아웃리치 활동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계획이다. 캐노피를 펼치고, 보드게임을 펼쳐서 '앉아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이동 쉼터'를 활동가들은 그려보고 있다.

이주연 활동가는 "도움이 필요하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청소년기관의 지원을 받지 않는 청소년들이 있다. 기관의 지원마저 멀어지면 이 친구들은 범죄로 유입될 위험이 크다. 쉼터 퇴소하더라도 자는 게 안 되는 거지 식사나 대화는 가능하니까 (찾아왔으면 좋겠고), 아웃리치는 늘 같은 시간과 장소에 부스를 운영하고 있으니 언제든 부담 없이 들러서 쉬고 가면 좋겠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덧붙였다.

"이제 구청문을 두드려볼 수 있게 됐으니까, 캐노피 펴고 게임도 하고, 더 길게 이야기도 하고, 청소년과 동적인 활동을 해볼 수 있도록 준비하려고 합니다. 거리두기도 없어졌겠다, 날도 좋아졌겠다, 대면 활동에서 아이들을 만날 일이 기대되네요." [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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