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 그대로도 괜찮아요"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인가구를 대상으로 '주말 여가 활동을 보내는 법'을 물었을 때 10명 중 8명은 '넷플릭스 등 영상 콘텐츠를 본다'고 응답했다. '휴식한다'는 응답은 73.8%, 인터넷 서핑을 한다는 응답은 27.6%였다. 취미나 자기 개발은 20.8%, 사회활동은 9.7%에 그쳤다. 혼자 살고, 혼자 쉬고, 혼자 노는 셈이다.

당장이 아니라도, 언젠가 생각해볼 수 있는 '선택지'를 쟁여두는 것은 나쁘지 않겠다. 청년공간에서 운영하는 '혼자 말고 같이'하는 프로그램을 격주로 소개한다.

▲ 지난 26일 오전 서울시 용산구 용산가족공원에서 변화의 월담 주최 두 번째 '생존을 위한 놀-이' 프로그램 '머글 퀴디치'가 진행됐다. 사진은 본격적인 '놀-이'를 시작하기에 앞서 결의를 다지고 있는 다섯 개의 '그리핀도르' 막대 © 팝콘뉴스

강아지 '송이'의 환영 인사는 격렬했다. 갈색빛 잔디밭을 성큼성큼 달려와서 펄쩍펄쩍 튀어 올랐다. 프로그램을 주최한 변화의월담(이하 월담) 세 사람이 송이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온 덕에 송이와의 통성명이 가장 빨랐다.

월담의 세 사람, '리조', '수민', '윤일'은 이날 초록색과 회색이 번갈아 들어간 줄무늬 머플러를 목에 둘렀다. '리조'는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긴 후드 점퍼도 챙겨 입었다. 슬리데린(소설 '해리포터'에서 주인공 3인방이 다니는 학교 호그와트의 기숙사 중 하나) 복장이었다. "어젯밤 당근마켓에서 급하게 산 것"이라고 '리조'가 부연했다. 잔디밭 양쪽에 설치된 골대는 철물점이며 마트에 들러 조립하고 자르고 붙여 손수 만든 것이라고 했다.

과연, 이토록 다단한 과정을 거쳐야만 '머글(소설 '해리포터'에서 마법을 쓸 수 없는 인간을 이르는 말)' 바깥으로 나설 수 있는 것일까. 이토록 아무 준비 없이 여기에 와서, 오늘 정말 빗자루를 '타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26일 오전 변화의월담의 2월 '생존을 위한 놀-이(이하 '놀-이')'가 용산가족공원에서 진행됐다. 2월의 주제는 '머글 퀴디치'. 월담 구성원인 세 명 외 여덟 명이 참가자로 모였다. 기자도 이날 프로그램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가했다. 격렬했던 그날의 '놀이' 현장을 담아왔다.

■ 놀 수 있는 몸

'머글 퀴디치'는 소설 '해리포터' 속 게임 '퀴디치'를 '머글' 버전으로 재해석한 스포츠다. 원작 규칙을 바탕으로, 럭비, 피구, 핸드볼 등을 섞었다.

물론, 가장 특징적인 지점은 게임이 '빗자루' 위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정확히는 빗자루를 다리 사이에 '끼고' 이뤄진다. 참가자는 빗자루 혹은 비슷한 모양의 긴 막대를 다리 사이에 끼운 채 달리고 공을 던진다. 정말 날지는 않지만, 떨어지면 나는 '사고'는 (놀이 안에서) '진짜'다.

그러므로 긴 준비운동이 필요하겠다. 우선, 우리의 자고 있는 몸을 '깨워'보기로 했다.

첫 번째는 캐치볼. 손에 들어오는 공에서 들어오지 않는 공으로, 말랑한 공에서 단단한 공으로, 두 손에서 한 손으로, 멈춰서서 시작해서 이동하면서, 손과 발이 '턱턱' 공에, 땅에 점차 대찬 소리를 내며 부닥쳤다.

다음은, 쥐불놀이하듯 빙빙 돌아가는 공을 손으로 툭툭 쳐내기, 그다음은 빗자루 대용 막대를 손바닥에 올리고 균형 잡기, 그다음이 막대를 다리에 끼고 도망가고 쫓아가기.

다만, 중요한 것은 게임을 준비하는 일은 아니라고 월담은 부연했다. 공을 많이 잡는 것, 공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균형감각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알기', 내 몸이 어떤지 아는 것이 목표라고.

▲ 준비운동 중인 월담 '리조'(사진=변화의월담 제공) ©팝콘뉴스

아무튼 이쯤 몸을 푸니 이미 기자는 녹초가 된 상태였다. 땀을 바가지로 흘렸고, 한 번은 발을 헛디뎌 잔디밭 위로 엎어졌다. 그래도 의외로 민망하지 않았다. 다들 그랬으니까. "숨이 차지 않냐"고 공을 던져주는 파트너에게 물었을 때 "숨이 차다"는 답이 돌아왔을 때의 안도라니.

그래도 '머글'에서 한 단계는 넘어선 걸까 싶을 무렵, 본격적인 놀이가 시작됐다.

■ '어른' 바깥, '규칙' 바깥

이날 모인 이들은 월담까지 11명.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두 팀으로 나눠 게임을 진행하기로 했다.

게임은 이런 방식으로 이뤄진다. '추격꾼'이 쿼플(Quaffle, 득점용 공)을 품고 골대로 달리면(럭비), '몰이꾼'이 블러저(Bludger, 공격용 공)로 추격꾼을 공격한다(피구). '파수꾼'은 후프 모양의 골대 앞에서 손으로 골을 쳐낸다(핸드볼).

몰이꾼이 쿼플을 들고 있다가 블러저에 맞으면, 몰이꾼은 쿼플을 그 자리에 두고 골대로 달려가 손을 짚어야 게임에 다시 참여할 수 있다. 몰이꾼은 쿼플로 블러저를 쳐낼 수 있으며, 다리 아래로 맞은 공만 '아웃'으로 인정된다.

다만, 정해진 규칙은 여기에서 끝이다. 나머지는 현장에서 필요에 따라 더하거나 뺐다.

긴 준비운동을 하는 동안, "스킨십은 어디까지 허용되나요?", "쿼플 말고 막대기로 공을 쳐 내면요?", "팀별 블러저가 따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등의 질문과 논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놀이가 시작됐다. 아, 그 전에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더 소개해야 한다. 정식 퀴디치 경기에서는 한 팀당 한 젠더가 반수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 몰이꾼, 파수꾼 등 여러 역할이 있어 자신의 '몸'에 가장 잘 맞는 역할을 찾아내 수행하면 된다는 것.

그리고, 이날 월담의 머글 퀴디치는 젠더나 몸의 상태에 이어 '종'도 뛰어넘었다는 것.

▲ 월담 '수민'이 송이의 목줄에 '스니치'를 달고 있다. 작은 액세서리를 월담 팀이 직접 금칠을 했다(사진=변화의월담 제공) © 팝콘뉴스



이날 기자와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눈 강아지 '송이'는 이날 놀이의 엄연한 참가자(견)이었다. 머글 퀴디치에는 예의 역할 외에 빠르게 날아다니는 공 '골든 스니치'를 잡는 '수색꾼'이 있다. 이날 송이는 골든 '송'니치로 분해 수색꾼들의 진을 빼놓았다.

월담의 머글 퀴디치 규칙은 이랬다. 골든'송'니치가 가디언(월담 중 한 명)과 함께 신나게 산책을 나선다. 그러면 각 팀의 수색꾼이 출동, 송니치의 목줄 뒤에 잘 찢어지는 종이로 붙인 작은 금색 공을 먼저 떼어내면 된다. 3점짜리 고득점 골이었다.

그렇게 현장에서 절반이 채워진 게임은, 모두가 '노는 것처럼' 노는 터가 됐다. 달리고, 부닥치고, 소리치고, 웃고, 공을 던졌다. 승패를 굳이 이야기하자면, 1대 1 무승부였다. 세 번째 판은 할 수 없었다. 이미 모두가 충분히 달렸고, 널브러졌고, 더웠고, 웃었으니까.

▲ 머글 퀴디치 현장. 격렬했다 (사진=변화의월담 제공) ©팝콘뉴스

■ "이 몸 그대로, 우리 만나요"

이날 같이 잘 '논' 사람들은, 게임을 마치고 한참을 늘어져 있다가 귤도 까먹고, 물도 마시고,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둥글게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골든 송니치를 포함한) 서로의 빛나는 활약에 대해서, 놀이에 대해서, 노는 몸에 대해서.

월담의 '수민'은 "오랜만에 목이 다 쉬는 줄 알았다"며 "송이가 어딘가 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이전 프로그램에서도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그걸 다 허물고 놀 수 있어서 재밌었다. 땀도 엄청나게 났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반전에 파수꾼으로, 후반전에는 경기장에서 대활약을 펼친 '섬화' 역시 "해리포터를 안 봐서 걱정했는데, 오니까 너무 개운했다"며 "뛰는 데 너무 자신이 없어서 팀에 누가 될까 봐 키퍼(파수꾼)을 하겠다고 했는데, 키퍼에 잘 맞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첫 번째 '놀-이'에 이어 두 번째 참여라는 '건우'는 "지난달에 놀-이가 처음 시작되지 않았나. '건강해지자' 이런 게 아니라 '몸과 대화해보자'는 느낌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이름도 생존을 위한 '놀-이'고"라며 "앉아서 공부하고 쓰고 하다보니, 최근 '죽어가고 있다' 싶어서 몸을 깨우자는 생각으로 지난달 참여했는데, 그게 너무 좋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아이템이 퀴디치라서(참여하게 됐는데)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고 전했다.

월담은 앞으로도 '놀-이'를 통해 몸에 대해 알고 배우는 장을 만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단, '건강하자'는 목표와는 조금 다르다고 월담은 덧붙였다.

'윤일'은 "(놀-이는) '내 몸과 좀 더 좋은 관계를 맺자'는 취지다. ('건강'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숨이 찬데', '이겨내야 하는데' 하고 자책을 많이 하게 되는데, '지금으로도 괜찮다.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찾아보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리조'는 "'심폐지구력에 도움이 된다'처럼 (몸의 기능에 대해) '라벨' 붙이는 일이 어디까지 도움이 되는지 고민이 많다. 매번 (몸을 움직이면)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몸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향이면 좋지 않을까(한다). 용어는 (몸을)설명하고 싶을 때, 새롭게 만들어가면 어떨까"라며 "헬스 트레이닝 용어에서 벗어나서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몸의 기능, 기량을 찾아가는 장이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 놀이가 끝난 후 널브러져 있는 참가자들 © 팝콘뉴스

월담은 다음 달부터 '놀-이'를 한 번 더 개편할 예정이다.첫 번째와 두 번째 놀-이는 한 달에 한 번 진행했다면, 다음 달부터는 둘째 주에 한 번, 넷째 주에 한 번, 투 트랙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2주차는 좀더 몸 움직임 '가이드'가 많은 워크숍 방식의 '놀이 클리닉'을, 4주차에는 지금과 같은 '놀이 모임'을 진행한다.

3월 놀-이 주제는 미정이지만, 밑그림은 그려보고 있다.

'수민'은 "첫번째 놀-이 주제는 프리즈비 였다. 모임을 기획할때는 팀을 나눠서 경기하는 얼티밋 프리즈비를 마지막으로 할 계획이었는데, 현장에서 참여자가 '프리즈비 발야구'를 제안해 주셔서 신나게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그래서 앞으로 모임중 한번은 얼티밋 프리즈비를 주제로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인터뷰 말미, 월담을 찾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수민'은 고민을 오래 하다가 답을 내놨다.

"이 몸 그대로, 우리가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이날 골든'송'니치로 맹활약한 강아지 '송이'. 놀이가 모두 끝난 후 참가자들과 함께 휴식하고 있다 ©팝콘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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