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은 착한 민주주의자?
고도의 지능과 권모술수를 지닌 독재자라는 평가도

▲ 에이브러햄 링컨(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재용 기자)국가 발전의 강한 동력을 얻으려면 구성원들의 강한 결속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시대와 나라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는데, 제국주의 시대 국가들은 국민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 식민지 민중의 열등감을 이용했다. 예를 들어 일제는 식민지 조선 민중에게 열등감을 주입하는 것으로 일본 국민은 1등 신민이라는 결속을 고취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한 후 경제 발전을 위해서 국민의 강한 결속력이 필요했는데 그때는 강력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사회의 군대화를 사용했다.

노예해방 선언문에 나타난 미국식 '편 가르기'

19세기 미국에서 피해자는 흑인이었다. 미국인 특히 가난한 미국 남부인들은 노예제를 삶의 위안으로 삼으며 결속을 다졌다. 1850년에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h Law Olmsted)라는 어느 미국 지식인은 "남부인들은 자신들보다 흑인이 열등하다는 인식을 배우며 자신들의 삶을 가치 있게 여겼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노예제 해방을 명분으로 발발한 남북전쟁은 1861년 4월 12일 피에르 보우리가드 장군이 이끄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남부 연합군 부대가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항구의 외딴 언덕에 있는 연방군 섬터 요새를 공격하면서 시작했다. 전쟁은 1861년 4월부터 1865년 4월까지 치러졌는데, 치열한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2년 후인 1863년 1월 1일,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 선언문을 발표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오신 해로부터 1863년째 해 1월 1일을 기하여 미연방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주와 특정 지역의 노예는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선언한다."

이 선언으로 전쟁의 성격이 바뀌게 된다. 그런데 이 선언은 좀 이상했다. 보통 당연히 미국 주의 모든 노예를 해방하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이 선언은 연방 통제하에 있는 지역은 제외된 것이다. 그러니까 연방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남부연합 지역의 노예만 해방하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미국식의 '내로남불, 편 가르기' 정책이었던 셈인데 이것을 우리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링컨이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링컨은 일종의 고도의 정치적 속임수를 쓴 것이다. 이에 대해서 당시 뉴욕 월드(New York World. 1863년 1월 7일 자)라는 신문에서는 이렇게 비판했다.

"대통령은 우리가 군사적으로 장악하고 노예들을 이용할 수 있는 지역에서는 선언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선언을 작성했다. 선언을 집행할 힘이 없는 지역만을 대상으로 해방선언을 한 것이다."

링컨의 이런 선언에 대해서 정치적 속임수라는 비난이 국제적으로도 쏟아졌다.

▲ 남북전쟁을 추모하는 미국인들(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우울증을 삶의 동력으로 삼은 링컨

후에 많은 역사학자는 링컨을 탁월한 지능을 지닌 권모술수의 대가라고 평가한다. 링컨 전문가인 데이비드 허버트 도널드(David Herbert Donald)는 '링컨(1995)'이라는 책에서 링컨을 차갑고 계산적이며 냉정한 이성을 갖춘 마키아벨리적 정치가로 평가한다. 링컨은 우리가 생각하는 착한 민주주의적 정치인이 아니라 배신자는 철저히 응징하고 목표를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 즉, 어느 정도 독재자였던 것이다. 독재자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우선 언론에 대한 탄압 정도를 보는데 전쟁 기간 내내 언론 검열과 탄압이 끊이지 않았다. 1861년부터 전쟁에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신문 100여 개의 우편배달이 거부됐다. 당시는 우편배달이 유일한 신문보급 수단이었으니 이는 실질적인 언론 폐간 조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두환 정권 시절에 언론 통폐합이 행해졌다고 두고두고 독재정권이라고 비난받는 일을 링컨이 한 것이다.

또한 링컨은 많은 정치범을 만들어냈다. 전쟁 기간 중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고 3만 8000명에 이르는 미국인이 투옥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후에 문학평론가인 에드먼드 윌슨(Edmund Wilson)은 링컨을 러시아의 레닌에 비유했다. 링컨이 어떠했든 국가의 결속과 제국의 탄생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다. 국가를 강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독재는 필요한 것일까? 역사적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뛰어난 지도자들의 공통된 특성으로 독재를 꼽으니 이 생각이 크게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독재를 카리스마라고 포장하기도 하니 독재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하는 점은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독재가 어쩔 수 없다면 그것은 반드시 '선한 독재'여야 할 것이다.

현대 역사 연구자들은 링컨이 우울증 환자였다는 주장도 한다. 링컨은 첫사랑 앤 러틀리지(Ann Rutledge 1813~1835)와 약혼했으나 결혼하던 해에 앤이 곧바로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누나를 잃은 상처가 있는 그에게 앤의 죽음까지 겹치자 병적인 우울증이 생겼다는 것이다. 링컨의 비극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네 아들 중 한 아들은 일찍 죽었고, 나중에는 두 아들이 병으로 죽었다. 이로 인해 부인 메리는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연구자들은 링컨의 우울증이 링컨을 위대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조슈아 울프 솅크(Joshua Wolf Shenk)는 '링컨의 우울증'이라는 책에서 "링컨이 열정을 가지고 정의를 무엇보다 우선시한 것은 링컨의 사고방식이 우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덧붙이자면, 남북전쟁 중 연방군은 약 232만 명으로 이중 36만 명이 사망했다. 남부군의 병력은 약 100만 명으로 이 중 26만 명 정도가 전사했다. 남북을 합쳐 총전사자는 62만 명으로 1차 세계대전에서는 약 11만 5000명이 전사했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약 31만 8000명이 전사했다. 미국 전쟁 역사상 가장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것이다. '이렇게 큰 피해를 양산하면서까지 꼭 전쟁을 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는 역사학자들도 많지만, 오늘날까지 많은 미국인은 통합적이고 집중화된 국가인 제국을 창설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불가피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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