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합격해야 안정적인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 한국 사회의 능력주의
하지만 불공정한 능력주의는 은폐된 세습체제일 뿐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재용 기자)대선을 앞두고 공정과 평등에 관한 화두가 관심을 끌고 있다. 하버드대학 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의 베스트셀러인 '공정하다는 착각' 등이 다시 주목을 받기도 한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는 다소 특별한 능력주의가 있는데, 바로 시험 능력주의이다. 시험 능력주의가 정말 공정하고 만능인 것일까?

한국인은 시험 능력주의에 대해 과도하게 신봉하는 성향이 있다. 아마 혈연주의, 연고주의에 묶여 불공정한 과거 시험이 지배했던 전근대 시대를 우리 손으로 혁파하지 못한 피해의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과거제도를 통한 입신양명을 최고의 성공으로 여겼던 봉건시대 이래 유교적 능력주의 이념의 영향일 수도 있다. 한국인의 능력주의는 더 정확히 말하면 '시험 능력주의'다. 모든 것은 시험으로 통한다. 어떤 분야든 지필고사 형태의 시험에 합격해야지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을 '인정'받는다.

시험에 합격해야지만 정규직?

예전에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해서 보안 검색요원, 셔틀버스 기사, 청소부 등의 직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인천공항의 정규직 직원들이 크게 반발했다. 공정하고 평등하지 않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에 편승해 다수의 여론도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시험도 치르지 않고 얼마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했다는 이유로 좋은 직장에 정규직으로 허락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십수 년을 고용 불안정과 저임금 속에서 일해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겠다는 것, 그것도 기존의 정규직을 밀어내는 방식이 아님에도 반대하는 것이 합당한 것일까? 모든 일에는 숙련이라는 것이 있다. 빵 만드는 사람은 오랫동안 빵을 만들어 온 숙련공이 장인이 되는 것이지 책 들고 시험공부 몇 년 해서 '빵 고시'에 합격했다고 빵 만드는 장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 일에 오랫동안 종사해 온 (고생한) 사람이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일 것이고, 또한 그만큼 고생한 사람들이니 해당 일을 통해서 안정적인 삶을 누릴 자격을 부여받아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그들이 정규직이 되는 게 맞지 않을까?

교육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 교육공무직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교육공무직을 신설해서 국내 초·중등학교에서 일하는 많은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화하자는 것이 이 법안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법안이 발의되자마자 소위 진보단체인 전교조와 보수단체인 교총 모두 나서서 크게 반발했고 곧 이 법안은 취소됐다. 인간의 보편적 평등을 추구한다는 진보단체마저 불평등한 시험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것이다. 왜 꼭 시험에 통과하고 자격증을 취득해야지만 정규직이 되어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이상한 능력주의 신화를 한국인은 신봉할까? 정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훌륭한 교사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볼 수는 없다. 교사로서 인품과 학생들과의 소통 능력, 지도력 등은 자격증의 소유 여부와는 무관하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학생들과 교감해가면서 교사의 능력을 신장시킨 사람들이 진정한 교사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교사 임용 시험이나 학력, 학벌 등에 집착하는 교사일수록 엘리트 의식에 빠져 학생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면서 훌륭한 교사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의심하지 못하고 그냥 받아들여 익숙해진 '능력주의'

오랫동안 한국인의 왜곡된 능력주의 신화를 연구해 온 양산대학교 자유전공학부의 장은주 교수는 "우리 청년 세대 일반의 왜곡된 공정성에 대한 집착은 이 세대가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혀 온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라는 정의 패러다임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메리토크라시는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1958년에 발표한 '능력주의의 발흥'이라는 공상 사회학 소설에서 처음 사용되면서 일반화됐다. 그동안 인류사회는 부와 권력 등의 사회적 재화를 타고난 혈통이나 신분 같은 세습적 지위로 물려받았다. 근대적 혁명 이후 이런 봉건적 특권이나 차별을 거부하고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재화를 분배해야 정당한 보상이라는 원칙이 정해졌다. 이 법칙은 일견 자본주의적 근대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을 근대화 이후 한국인은 기회균등의 신념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이런 기회균등에는 함정이 있다.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것인데 이러한 '형식적 기회균등'의 원칙이 '실질적인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경쟁의 출발 선상에서 타고난 능력과 조건의 차이를 결정지을 수 있는 교육이나 상속, 가정환경 같은 사회적 배경의 차이도 공정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전제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난 경쟁의 결과 역시 불공정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에서는 미국에서 상위권 대학에 갈수록 상류층 출신의 학생들이 늘어난다는 통계를 공개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 여러 가지로 좋은 교육 여건을 제공해주는 가정환경에 태어난 사람이 시험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획득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논리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사회적 성공에는 타고난 재능이라는 '자연의 선물'과 경제적 부를 갖춘 부모라는 '사회적 배경'의 역할이 크다. 굴지의 재벌 가문에서 외동으로 태어나거나, 알코올중독의 가난한 아버지가 자녀를 학대하는 가정에서 태어냐느냐 하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성공에는 이런 운이 많이 작용한다. 따라서 능력주의 원리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게 사회적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입장을 실질적 능력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실질적 능력주의는 시험 능력주의의 비판적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정의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장은주 교수의 말대로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평등하다고 여기는 능력주의는 많은 부분에서 결국 은폐된 세습체제"일 뿐이다. 시험 능력주의는 승자독식을 정당화하는 폭력적인 이데올로기다. 이 이념은 대중으로 하여금, 경쟁에서 이긴 주류 계층에게는 특권과 보상을 안겨주고, 패자에게는 최소한의 인간적 삶의 기회도 제공해주기를 거부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체제를 공정하다고 여기게 만든다. 기계적으로 소수의 합격자만을 선발하는 지필 시험에서 합격하지 못했다고 해서 불안정하고 차별당하는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사회가 과연 민주주의적 정의와 가치를 실현한다고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정권을 맞이하기에 앞서 진정한 민주적 시민성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참고자료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함규진 (옮긴이), 와이즈베리, 2020

『능력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장은주, 철학과 현실 Vol.128 No.- [2021]

『한국 능력주의 인식과 특징』, 박권일, 시민과 세계, Vol.- No.38 [2021]

『왜 부모를 잘 둔 것도 능력이 되었나? ‘능력주의 커뮤니케이션’의 심리적 기제』, 강준만, 사회과학연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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