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건물 옥상에 방치된 대형견 소식에 SNS 발칵...(사)행복이네 쉼터서 구조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개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가족'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려동물만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짝꿍)'라 고백하기도 합니다. 가족과 친구. 이 두 단어에는 아무래도 '사랑'과 '정'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 하나 책임지기 힘든 세상에 다른 생명을 위해 시간과 돈, 그리고 마음을 쓸 이유는 없으니까요.
[반짝 히어로]는 이처럼 사람과 동물 간의 특별한 사연들로 채워 나갑니다. 동물 관련 유의미한 일을 주로 다룰 예정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건들도 가급적 빠뜨리지 않고 기록할 것입니다.
더불어 사람과 동물의 '온전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 주변 숨은 영웅(히어로)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칼바람이 불던 1월 초, 제주의 한 높은 건물 옥상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인스타그램 유저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사진과 영상이 포커싱한 피사체는 가림막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웅크리고 있는 한 마리 개.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으로 추정되는 이 개는 오래도록 주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모습이었는데, 목줄 탓에 개에게 허락된 공간에는 빈 밥그릇 몇 개와 배설물만이 가득했다.
사진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한때 하얗고 탐스러웠을 개의 털은 윤기를 잃은 지 오래된 듯 보였으며, 제 색 대신 회색 털 옷을 입고 있었다. 엉덩이와 배, 등의 털은 근래 제주의 날씨를 짐작할 수 있게 했는데 축축하고 눅눅해 물기를 머금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옥상 바닥에 채 마르지 않은 눈과 비가 금세 증거가 됐다.
상가인지 주거용인지 건물의 용도에 관한 정보는 없었는데, 영상이 비추는 옥상 전경을 놓고 볼 때 건물은 제법 큰 규모임을 알 수 있다.
제주 시내 한복판에 있는 이 크고 높은 건물은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그러니까 사람이라는 동물에게는 자랑스럽거나 부러워할 대상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매서운 12월과 1월의 황소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만 했던 개에게는 아스팔트 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
면적이 조금만 작았으면, 건물의 높이가 조금만 낮았으면. 그랬다면 홀로 옥상에 방치됐던 이 개는 주변 건물을 구경하며 외로움을 달래기도 하고, 그러다 운 좋게 이웃 건물의 창문으로 누군가와 눈을 마주쳐 하루라도 빨리 구조되지는 않았을까.
그러기에 건물은 너무나 높고, 또 넓었다. 그래서 개는 어쩌다 바람에 날려 허공을 비행하는 바싹 마른 나뭇잎을 향해 웡웡 소리 내 짖거나 떨어지는 빗방울을 쫓아 가볍게 점프하는 일을 낙으로 삼으며 지루한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제주 시내 건물 옥상에 방치됐던 개의 이름은 '밀크'.
이 개의 처지를 접하고 2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처음 외부에 알린 A씨는 "수소문 끝에 견주를 만났으나 '왜 남의 개에게 참견하느냐'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며 "누구도 이 개를 돌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고 도움을 호소했다.
이 글은 삽시간에 리그램 됐다. 동물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한바탕 '난리'가 났다. 견주의 무책임과 뻔뻔함에 분노하고, 방치견 밀크의 상태를 안타까워하는 댓글이 리그램된 게시물마다 가득 쌓였다. 제주도 동물권 단체 등의 계정에는 개 밀크를 구조해 달라는 요청이 도달되기도 했다고.
한 인스타그램 유저는 "추운데 개집도 없고 온몸으로 칼바람을 맞으며 세상 풍경 하나 볼 것도 없이 외롭게…. 나라면 벌써 미쳐 죽었을 것 같다"라며 A씨와 마찬가지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밀크의 사연이 알려진 지 이틀째. 마침내 모두가 기다리던 반가운 소식이 육지까지 전해졌다.
지난 4일 제주도에서 유기동물 쉼터를 운영하는 동물권 단체 (사)행복이네 쉼터 소장 B씨가 직접 견주를 만나 포기각서를 받고 밀크를 옥상에서 구조했다는 것.
구조 당시 영상에는 처음 보는 행복이네 쉼터 소장에게 꼬리를 흔들며 좋아하는 밀크의 모습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 그리고 낱장의 사진들은 연출도 연기도 불가능한 밀크의 웃는 얼굴을 담고 있다.
풀 한 포기 없는 옥상에 자신을 두고 떠난 주인의 등을 보고 있어야만 했던 하얀 개 밀크는 추위와 배고픔에 떨면서도 이렇게 사람만을 기다린 것이다.
현재 밀크는 갑옷 같던 털들을 어렵사리 벗어 던지고 아픈 몸을 치료받고 있다. 아랫배와 생식기 주변이 심하게 부어 그렇게나 좋아하는 사람 손길을 거부하고 있다.
행복이네 쉼터 소장은 밀크를 구조한 날 "제주는 오늘 온종일 새벽부터 비가 왔습니다. 아이(밀크)를 그대로 뒀더라면….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미용하는데 갑옷을 벗기는 것 같았습니다", "솔직히 (추가)검사하는 게 두렵습니다. 더한 병이 있을 것 같아서요"라는 글을 써 쉼터 계정에 올렸다.
밀크의 사정을 안타까워하고 구조를 바랐던 많은 반려인들이 십시일반 치료비를 후원하고 있으며, 행복이네 쉼터 소장의 용기에 진정으로 박수 보내고 있다.
이번 밀크 사건과 같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네이버 밴드 등에는 동물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게시물이 여러 가지 형태로 등장한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추위에 떠는 동물들과 모습과 얼어버린 사료와 물 등 안타까운 사진들이 캣맘들을 통해 많이 공유된다.
누군가 내다 버린 동물과 학대, 방치한 끝에 희생된 동물들과 반대로 그들을 어렵게 구조하고 수습하는 이들의 사연도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제주에서 병원에 입원한 주인을 기다리다 배가 곯아 죽은 개 한 마리 사진이 또 한 번 반려인들 가슴에 멍을 새겼다. 줄에 묶인 개는 스스로 먹이를 찾아 나설 수도 없는 탓에 내리는 눈을 온몸으로 맞으며 생을 마감했다. 주인은 이웃에 개의 끼니를 부탁했다고 변명했지만, 옥상 방치견 밀크처럼 누구도 그 개를 돌보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배곯거나, 병들었거나, 죽음을 앞둔 생명을 마주했을 때 측은지심을 갖는 것은 인간이 가진 '본성' 때문이다.
눈 내리는 날 반팔을 입고 맨발로 거리를 헤매는 어린아이를 보고 "춥겠다"는 생각을 해야 정상인 사람이다. 피 흘리며 쓰러진 동물을 보면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인간이지, 웃으며 사진 찍을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다.
밀크가 추운 옥상에 자신을 버린 주인을 원망하지 않고 견뎌낸 것처럼 우리도 사람이 가진 측은지심을 지킬 수 있기를.
* 독자 여러분 주변에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면 주저 말고 아래 이메일로 제보해 주세요. 동물의 개인기나 생김 등에 대해서는 제보받지 않습니다. 박윤미 기자 yoom173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