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향동종합사회복지관 도시락 배달 봉사 체험기

▲ 23일 고양시 향동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자원봉사자 이정아 씨가 도시락 뚜껑을 닫고 있다 ©팝콘뉴스

(팝콘뉴스=권현정 기자) "이번 주말에는 영하 14도까지 기온이 내려간대요. 경사졌는데, 괜히 나왔다가 그러실까 봐 그러지."

최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23일, 만만치 않은 날씨에도 자원봉사자 이정아 씨(51)가 점심 도시락과 함께 건네는 인사는 꼬박 힘찼다. 문 건너에서 돌아오는 대답에 힘이 붙으면, 다시 더 힘이 붙은 안부 질문이 건너갔다.

연말을 맞아, 고양시향동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점심 도시락 배달 봉사활동 현장을 찾았다. 밥으로 안부를 묻는 일을 반나절 함께했다.

■ 밥을 짓다

이날 오전 찾은 향동복지관 1층의 '꽃마을 식당' 안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후드티 위로 복지관에서 내어 준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위생모를 챙겨 쓰니 되려 훈기가 돌았다.

첫 임무는 소쿠리 하나 가득 채운 소시지를 손질하기. 이날 준비해야 하는 도시락은 76인분 치라고 했다. 칼질에는 소질이 없던 기자는 몇 번 버벅거렸는데, 건너 주방 직원분이 칼을 제대로 잡는 법부터 일러주었다. "또 써먹는 일이 있을 것"이라면서.

향동복지관의 도시락은 김치를 포함해 네 가지 반찬, 국과 밥이 한 묶음이다. 이날은 소시지볶음에 오이무침, 버섯볶음, 김치, 수제비가 준비됐다.

재료 준비를 마치니 한 시간여가 흘렀는데, 자원봉사자가 투입되는 것은 이때부터라고 했다. 주방에 미리 내려와 있던 사회복지사 세 분이 문 쪽으로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이날의 자원봉사자는 두 분이었다. 김용겸 씨(73)와 이정아 씨. 각각 올해 4월부터, 이달부터 주에 한 번 혹은 두 번씩 아침마다 복지관을 찾고 있다고 했다.

▲ 복지관 식당 배식대 앞에서 자원봉사자와 사회복지사가 반찬을 도시락에 담고 있다 ©팝콘뉴스

오래 합 맞춘 이들의 작업은 일사불란했다. 두 솥에 가득 담긴 수제비를 76개의 국 용기에 '남지 않게' 담는 작업이 기자의 것이었는데, 기자가 더듬거리며 국의 양을 맞추는 동안, 76개의 도시락 용기가 빠르게 한쪽에 쌓였다. 네 명이 반찬 하나씩을 '제 자리'처럼 맡았고 한 명이 도시락 뚜껑을 닫아 쌓이면 테이블로 옮겼다.

삼십 분여 이어진 배식에 "힘들지 않으시냐"고 말을 묻자 김 씨에게서 너털웃음과 함께 "말 그대로 자원봉사 아니겠어요?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니까 힘들 것도 없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76번째 도시락과 함께 모든 반찬통이깨끗하게 비워지자 도시락은 다시 몇 덩이로 나뉘었다.

찾아오는 주민의 몫, 단지 내 영구임대주택에 배달해야 하는 몫, 화전동에 배달하는 몫. 기자는 개중 화전동 몫으로 주어진 일곱 개의 도시락을 들고 자원봉사자 이 씨와 정희원 사회복지사와 함께 복지관을 나섰다.

■ 밥을 전하다

▲ 화전동 계단을 오르는 이정아 씨. 성큼성큼 걷는 이 씨의 걸음을 열심히 쫓아 걸었다 ©팝콘뉴스

차로 15분여 달려 도착한 화전동은 좁고 경사진 골목이 많은 동네였다. 큰 차로 들어가면 차 머리를 돌리기 어려워 후진으로 빠져나와야 하는 길목이 많았다. 이 씨의 경차가 정 복지사와 기자가 탄 차에 앞장을 섰다.

복지관 차를 타고 찾은 첫 번째 집은 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이 씨는 문을 두드리고 큰 소리로 "점심 두고 갈게요"하고 기척을 했다. 문 너머에서 대답이 건너왔다. 원래는 얼굴을 보고 전달해야 하지만, 코로나19로 상황이 여의찮아졌다는 설명이다.

정 복지사는 "주 1회 정도 아웃리치(찾아가는 활동)를 하고 있다. 소식지 전달해 드리면서 복지관이 여기 있고, 궁금하신 점 있으면 와달라고 알리는 활동"이라며 "원래 만나고 찾아오시고 해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원 제한도 있다 보니 어렵다"고 아쉬운 마음을 표했다.

하지만,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해도 마음은 전달되는 모습이었다. 집 앞에는 "선생님, 날씨도 추운데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쪽지가 적힌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 씨와 정 사회복지사는 의자 위로 도시락을 올렸다.

문을 열고 도시락을 받아 든 A씨(70대)는 "날씨가 추운데 어쩌냐"는 인사로 봉사자와 사회복지사를 맞았다. 배달 봉사는 거동에 어려움이 있는 수급자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데, A씨는"주말에는 더 춥다더라"는 안부 인사가 오가는 동안 반가운 얼굴로 문 앞을 서서 지켰다.

이날 식당에서 도시락을 배식하는 봉사를 진행한 김 씨는 "그런 얼굴들이 봉사를 계속하게 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10년 전에 퇴직 후 봉사를 포함한 사회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김 씨는 "오래 하다 보니 (도시락 받으러 방문하는 주민분들) 이름을 안다. 인사하면서 이름 불러드리고, 친절하게 대하면 또 좋아하신다"며 "누굴 도와줘야겠다는 것보다는 자기만족이다. 봉사했다는 뿌듯함과 떳떳함이 있다"고 봉사의 보람을 전했다.

■ 밥을 나누다

화전동에서는 온기가 또 다른 온기로 이어지는 모습도 만날 수 있었다.

화전동 한편에 자리 잡은 카페 '오늘같은날엔' 정문에는 '우리동네 나눔가게'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복지관으로 전달할 모금함을 설치하는 등 나눔활동에 나선 매장에 복지관에서 선물한 이름이다. 모두 스물다섯 곳의 카페, 편의점, 약국 등이 '나눔가게' 현판을 달고 있다.

한 정비소 앞은 간혹 좁은 골목에서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할 때 복지관 배달 차량이 잠시 머무는 곳이 된다. 정 복지사는 "예전에 복지관에서 도움을 받으시던 분의 집 근처라, 사정을 알아 배려해주신다"고 설명했다.

도시락을 배달받은 화전동 주민 B씨는 '빌 공(空)'자를 쓴다는 4살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동생도, 친구도 마땅히 없는 동네에서 "나처럼 마음을 비우고 살라"고 이름 지은 강아지와 의지해 산다면서도, B씨는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B씨는 "겨울철 걱정되는 건 건강이다. 병원 생활을 아무래도 많이 하니까. 가족이 없다는 것도 그렇고"라면서도 "그래도 주위에 아는 어르신들이, 한참 더 산 80대 넘은 분들인데, 동네 오래 살다 보니 (서로 들여다)보고 그런다. 그런 걸 위안 삼아서 산다"고 웃음 지었다.

▲ 비대면으로 도시락을 배달받는 주민의 집 앞 의자에 '감사하다'는 인사가 적힌 쪽지가 붙어있다 © 팝콘뉴스

11시쯤 시작한 배달은 12시가 다 되어서야 마무리됐다. 돌아오는 길, 이정아 씨는 봉사의 보람이 있는데, 항상 하는 사람만 하다 보니 일손이 부족하다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향동복지관은 지난 11월 개관 1년 차를 맞았다. 도시락 포장 및 배달 봉사는 화요일 두 명, 수요일 한 명, 목요일 두 명이 함께한다. 월요일과 금요일은 소속 사회복지사가 도맡고 있다.

이 씨는 "어르신을 돕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복지사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내가 할 수 없지만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었다"고 봉사를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봉사가 첫 문턱을 넘기 참 힘든 일인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 '도움이 될까'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첫 문턱만 넘으면 어렵지 않은 일"이라며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는) 수많은 일에 '봉사'라는 이름이 붙는 것 같다. 뿌듯함과 보람이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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