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고용 구조의 시대, 기본소득은 필요해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굶을 걱정이 없다면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 (사진=픽사베이) © 팝콘뉴스


(팝콘뉴스=김재용 기자)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공식적으로 선출됐다. 이재명 후보는 성남 시장 시절부터 기본소득 논의를 이슈화시키면서 정치적 지지를 확대했다. 이재명 후보에겐 기본소득이 똑똑한 효자 정책인 셈이다. 정치적으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냐 안 하느냐는 논외로 하자. 하지만 기본소득 논의는 우리가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 논의가 전적으로 이재명 후보만의 메타포는 아니기에 기본소득 정책을 지지한다고 해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으로 보지 말아 주기를 바란다. 정치적으로 누구 편이냐를 떠나서 기본소득 논의는 진지하게 고민해 볼 사안이기 때문이다.

2009년, 런던의 한 자선단체가 파격적인 실험을 했다. 골칫덩이였던 런던 노숙인 중 13명에게 약 450만 원을 어떤 조건도 그냥 줬다. 사람들은 노숙인들이 그 돈으로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하면서 없애버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1년이 지났을 무렵 그들 중 9명은 지붕이 있는 주거지를 마련했고, 2명은 아파트 입주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노숙인들은 돈만 주어지면 방탕하게 살 거로 생각했지만 그것은 너무 적은 금액일 경우에 그렇고, 희망을 품을 만한 금액이 되면 미래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2016년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으로 월 2500스위스프랑(한화 약 300만 원)을 주는 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비록 부결되긴 했지만, 이는 금액에 대한 이견이 있었던 것이지 기본소득 그 자체를 거부하는 반대는 아니었다. 스위스 기본소득 활동가 체 바그너는 "찬성 투표자 가운데는 83%가 기본소득을 앞으로 계속 논의하는 데 동의한다고 했다. 이번 투표는 더 깊은 논의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했다. 이처럼 서구 선진국에서는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견해도 많다. 단기적인 경기 활성화에 좋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안 좋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논리도 성립된다.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 사회는(건강하고 균형적인 성공은 아니라는 관점도 있지만) 그 성공의 가장 중요한 원인을 한국인의 근면 성실함과 치열한 경쟁주의로 여기는 성향이 강하다. 실상 한국 산업화 성공의 원인은 미국에서 배워온 효율적인 관료제도와 공산주의 확산의 예방 차원에서 이루어진 미국, 일본의 한국 경제 부흥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등 복합적인 요인에 있지만(1) 무엇보다 한국인의 근면 성실함과 치열한 경쟁주의가 성공의 결정적인 원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은 노력 없이 공짜로 주어지는 재화를 취득하는 것을 죄악시한다. 하지만 이 또한 이중적인데, 그러면서도 막상 복권은 긁어대고, 부동산 투자에 목숨 걸고, 부모의 재력을 선망하는 심리가 서구 선진국 사회보다 강하다. 기본소득 같은 공적 복지는 반대하면서도 막상 사적으로 획득하는 불로소득에는 꽤 관대하다. 여전히 빈곤한 공적 인식의 부재 때문에 이러한 자기 분열적인 인식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에 관해서는 그렇게 단선적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한국 산업화도 돈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갈수록 왜곡되고 불균형한 구조로 변질되어가는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지속 가능한 대안의 하나로 주목받아야 한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청년층 취업준비생이 85만 9000명 정도 된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도 155만 명 정도다. 실업의 가장 큰 원인은 청년들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극히 적다는 것이다. 이건 한국의 비정상적인 경제구조에 큰 원인이 있다. 소수의 대기업이 경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다수의 중소기업이 고용의 95%를 책임지고 있는 극히 비대칭적인 구조에서 청년실업 155만 명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여전히 정부의 지원은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결국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지는 것이다. 독일이나 일본처럼 직원 수 1000명 이상을 지닌 견실한 중견기업이 많아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근로환경과 임금 격차가 줄어야 청년실업이 중소기업으로 흡수되면서 평균적인 서민의 소득도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중소기업의 환경이 열악하고 희망도 불투명한 구조에서는 청년실업률 해소가 쉽지 않다.

문제는 '이 엄청난 수의 실업자들을 과연 앞으로 어느 일자리가 흡수할 수 있을까?'이다. 갑자기 건실한 중견기업들이 막 만들어져서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청년 서민들이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일자리들은 대부분 배송이나 물류, 식당 서빙, 편의점 계산원 등의 단기 아르바이트식 뿐이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들이 이런 일자리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 당연히 만족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높은 학력만 취득하면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가? 한국 경제는 제조업이 끌고 나가는 구조기 때문에 다양한 서비스나 연구 업종의 일자리가 극히 부족하다. 한 해 몇만 명씩 쏟아지는 석박사 학위 소지자들을 수용할 일자리도 매우 부족하다(2). 지방 구석 어느 대학 연구소에서 250만 원짜리 월급을 주는 박사급 연구원 1명을 뽑는데 몇십 명씩 지원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전공 분야나 개인의 실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이런 현실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앞으로 기계화로 인해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다. 저명한 리더십 전문가인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의 경영학과 워렌 베니스 교수는 미래 사회를 이렇게 전망했다. "미래의 공장에는 개 한 마리와 직원 한 사람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개는 사람이 장비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필요하고, 사람은 개 먹이를 주기 위해 필요하다." 미래 사회는 기계화로 인해 더 이상 인력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15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산업용 로봇에 의해 일자리를 가장 많이 대체 당할 나라 1위로 한국을 지명했다(OECD 18개국 중에서).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높아서 경제가 더 생산적일수록 기계의 역할이 커지고 결과적으로 인력의 일자리는 더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일자리 부족은 사회의 근간을 흔든다. 외국의 할렘가나 가난한 이슬람 국가들을 여행해 보면 평일 낮에 길거리에서 어슬렁거리는 청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청년 실업자들이겠지만 이들이 돈벌이를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어떻게 돈을 벌까. 대부분 범죄단체와 연계해서 불법적인 돈벌이로 생계를 꾸려가는 경우가 많다. 마약매매, 인신매매, 사기, 심할 경우 테러 단체와의 연계 등등 말이다. 이슬람 사회에 극단적인 테러 단체들이 많은 이유가 뭔가. 먹고 살 일자리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3). 이처럼 청년 실업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범죄를 기웃거리게 된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지금 한국의 수많은 청년 실업자들은 대부분 부모의 등에 업혀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4). 청년들이 부모에게 업혀서 생활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참 암울한 일이지만, 그나마 업힐 수 있는 부모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은 청년들이 생계를 위해 불법적인 일, 나쁜 일을 해야 한다면 사회를 위해서도 개인을 위해서도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범죄예방과 범죄자들 관리, 교도소 운영 등에 엄청난 비용이 소비되는 것은 둘째치고, 범죄 피해의 엄청난 사회적, 개인적 비용, 사회적 윤리 의식의 파탄은 국가의 미래까지 암울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청년 실업자들이 생계를 위해 범죄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도 기본소득 논의는 꼭 필요하다. 기본소득이 완벽한 해결책은 될 수 없을지라도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된다면 범죄에 빠지는 것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지급 대상과 지급 방식, 금액 정도의 논의는 좀 더 상세한 논의가 필요하다.

​또 중요한 문제는 저질 일자리의 양산이다. 이건 청년 실업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구는 엄청나게 늘어났고, 이들을 흡수할 수 있는 일자리는 발생해야 한다. 예전처럼 경제가 막 성장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이라면야 일자리가 쑥쑥 발생할 수 있지만, 경제 성장이 안정된 저성장시대 경제 환경에서 생길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다. 결국 억지로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러자면 결코 바람직한 것만 발생할 수는 없다. 불법적이고, 환경 파괴적이고, 나쁜 짓을 해야 하는 일자리가 점점 늘어난다.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이런 일자리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저질 일자리 양산은 사회에 도움이 되기보다 폐해가 되기 때문에 없는 편이 사회에 더 이득이 된다. 사회적 피해 유발 비용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저질 일자리 예방 차원에서도 기본소득 논의는 실질적으로 고민해 문제다.


(1) 2010년 신라호텔에서 열린 국제컨퍼런스 대회에서 미국 존스홉킨스대 앤 크루거 교수는 시장 지향성, 적절한 정부개입, 그리고 행운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면서 정책입안자들의 신속하고 적절한 정책 도입과 실행을 한국 경제 성공 요인으로 분석했다.

(2) 2017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지역별 신규 석사학위 취득자의 특성 및 고용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내국인은 총 2만 6357명이다. 이들 중 81.9%는 취업을 했거나(51.5%) 실업 상태(30.4%)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진행한 유한구 선임연구위원은 "실업 상태인 30%는 거의 다 취업을 원하는 '취업준비생'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3) KOICA 연구원 이원은 『테러리즘과 국제개발협력: ‘분쟁과 개발’의 맥락으로 본 테러리즘』이라는 논문에서 "최근의 테러리즘은 분쟁 지역에서 분쟁으로 삶의 터전이 파괴돼 당장의 생계는 물론 장래가 불투명한 젊은이들을 조직원으로 충원하고 있다(Sandler and Enders 2008)"고 했다. 빈곤과 불안한 삶의 기반을 지닌 청년들이 테러 조직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이다.

(4) 한국경제연구원은 2021년 6월에 발표한 '청년층 니트의 경제적 비용'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청년층(15∼29세) 가운데 '니트' 비중을 추정한 결과 2019년 기준 22.3%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니트에 따른 손실을 계량화해 사업주의 사회보장부담금 등을 포함한 연간 경제적 비용을 추산한 결과 니트의 연간 경제적 비용은 2010년도 33조 원에서 2019년에 61조 70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참고도서

『21세기 기본소득』, 필리프 판 파레이스, 홍기빈(옮긴이), 흐름출판, 2018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오준호, 개마고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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