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팥을 빻고 대추 물을 지어 만드는 떡, '궁중떡집'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 (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1대 현말녀 대표에 이어 2대 이재임 대표, 3대 이동진 실장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에서 딸로, 그리고 다시 조카로 이어지는 궁중떡집은 40여 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궁중의 음식도 이러했을까. '요즘 시대에 손으로 직접 빻아서 팥을 쓰는 곳이 어디 있겠냐'면서 유혹해도, '물을 섞거나 수입쌀, 하다못해 묵은쌀이라도 써야 단가가 맞는다'라면서 꼬여내도 궁중떡집은 손이 많이 가고, 비싼 원재료로 그 고집을 꺾지 않는다. 40여 년간 직접 떡을 만들고, 떡을 먹어온 스스로가 만족스럽지 않은 맛이라면, 아무리 고객이 눈치채지 못한다고 해도 고객에게 판매할 수 없다는 신념 덕분이었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성실하게 이어온 떡집


1대 현말녀 대표는 직장을 계속 다녀서는 살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가게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마침 떡집을 하고 있던 친척이 많았고, 현말녀 대표에게도 떡집을 권유해 40년 전, 궁중떡집이 시작됐다.

"아직도 저희 친척 중에서 떡집 하시는 분들이 매우 많아요. 저희 앞에 목욕탕이 있는데, 친척분들도 다 목욕탕을 하세요. 그 옆 정육점도 그분만 정육점을 하시는 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다 정육점을 하시더라고요. 친척 중에서 누군가 한 명이 가게를 열기 시작해서 그 가게가 잘 된다 싶으면 형제자매는 물론, 친척도 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게 돼요. 아무래도 정보 공유도 빠르고, 급할 때는 도움도 받을 수 있어서겠죠."

그렇게 궁중떡집은 자리를 잡았고, 여느 떡집이 그렇듯 떡집에 직원을 고용하는 대신 집안 식구 모두가 동원됐다. 2대 이재임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떡집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떡 만드는 일이 참 고된 일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저희 엄마라서 그런 게 아니라 떡집 일 자체가 남자도 하기 힘들 정도로 되게 고된 일이에요. 무거운 물건도 들어야 하고, 손도 많이 써야 하고요. 제조부터 판매까지 모든 일을 빠짐없이 해야 하다 보니 쉴 틈이 없죠. 그런데도 엄마는 늘 새벽 네다섯 시에 일어나서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일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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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돈을 쓰면, 돈값은 해야 한다


그런 어머니가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손님이 돈 쓰면, 적어도 돈값은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 말을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이재임 대표 역시 늘 '고객이 주는 만큼, 그 이상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이 마음으로 일을 돕다가 떡집이 천직이 되어 궁중떡집을 물려받게 됐다.

또 하나 궁중떡집에서 꼭 지켜온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떡에 쓰는 주재료인 쌀의 품질이다. 지금까지 궁중떡집에서 40여 년간 떡을 만들면서 단 한 번도 수입쌀, 묵은쌀을 써본 적이 없다. 주변에서는 '수입쌀도 좋고, 몇 년 지난 국산 쌀도 금방 도정하면 햅쌀과 큰 차이가 없다'라면서 '왜 바보처럼 이윤도 남기지 못 할 일을 하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떡의 99%가 쌀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그래서 나쁜 쌀을 쓰면 확 티가 나요. 저희도 흔들릴 때가 있었죠. 그래서 샘플로 조금만 떡을 해봤어요. 그나마 떡이 갓 나왔을 때는 차이가 안 나는데, 식으면 식감이며, 감칠맛이 확연히 달라요. 손님은 모르신다고 해도 저희가 그 차이를 아는데 다른 쌀을 쓸 수는 없더라고요."

이 쌀은 30년 이상 한 곳에서 공급받고 있다. 품질이 떨어지거나 햅쌀이 나오면 기존 쌀을 바꿔줄 정도로 믿음으로 거래하는 곳이기에 오래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쌀이 맛있다며 궁중떡집에서 쌀을 받아서 밥을 짓는 일도 있을 정도다.

쌀 외에도 떡에 들어가는 고명이나 재료는 직접 준비한다. 약식에 들어가는 물 역시 직접 떡집에서 대추 물을 끓여서 만든다. 캐러멜을 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과 향이 나기 때문이다. 시루떡 등에 들어가는 팥 역시도 마찬가지. 스팀기로 쪄서 기계로 빻으면 몸은 편하지만, 팥에서 거친 느낌이 난다. 그렇기에 궁중떡집에서는 팥을 삶은 뒤 절굿공이로 콩콩 찧어서 팥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면 팥에서 부드럽고, 깊은 맛이 나기 때문이다.

"미묘한 차이 때문에 더 힘들어도 딴짓을 못 하겠더라고요. 아마 가게 하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텐데 한 번 손이 가기 시작하면 끝없이 손이 가는 일이 많아지거든요. 그런데 이것도 익숙해지더라고요."

궁중떡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최근 선호도가 높아지고, 보관도 쉬운 찰떡 종류다. 말랑말랑하게 만들기 위해 물을 넣어 떡을 만드는 곳도 있지만, 궁중떡집에서는 차진 맛이 없어진다며 절대 물을 넣어 만들지 않는다.

깨 송편도 궁중떡집의 스테디셀러 중 하나다. 추석 한때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판매하는데, 송편 만들기 전에 직접 볶아놓은 고소한 깨를 넣으면, 사다 놓은 깨나 묵은 깨를 쓰는 것보다 훨씬 고소해 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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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이어진 떡집, 3대가 이어진 단골


처음 시집와 맞췄던 신행 떡, 아기를 낳은 뒤에 맞췄던 돌백일 떡, 단골 어머니의 자녀가 다시금 신행 떡을 맞추고, 돌백일 떡을 맞췄다. 그리고 그 자녀 역시 중고등학생이 되어 혼자 떡집을 찾아 간식으로 떡을 사 가곤 한다. 3대가 이어지는 것은 궁중떡집 뿐만이 아니라 단골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 외에도 떡을 해간 뒤에 잘 먹었다며 전화로 감사 인사를 전하거나 커피나 음료수, 과일을 사 와 인사를 건네는 고객도 많았다.

"돈만 보고는 떡집을 못 하거든요. 이렇게 고객님들의 반응에 보람을 느끼면서 일하다 보면 정말 ‘우리가 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었구나’ 싶어요."

궁중떡집은 멀리 미국까지 그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단골 할아버지는 LA에 사는 자녀에게 갈 때마다 꼭 궁중떡집에서 떡을 맞춰가곤 했다. 한번은 미국에 다녀온 할아버지가 '미국에 갔다가 재미있는 걸 봤다'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자녀 집에 갔는데, 그 옆집에서 궁중떡집 박스를 보게 됐다는 이야기였다. 우연히 같은 이름의 떡집인가 싶었지만, 상자 모양이 너무나도 낯익었고, 전화번호나 주소도 같았다. '타지에서 이렇게 궁중떡집을 만나니 반갑더라'라는 말에 이재임 대표 역시 감사하고,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많은 단골을 거느린 궁중떡집 역시 다른 떡집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춰야 할지, 전통을 고수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특히 온라인 판매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온라인 판매를 고민하고 있는데, 가장 큰 고민의 이유 중 하나가 떡은 당일 배송이 안 되면 그 맛이 안 난다는 점이에요. 다음날이나 다음다음 날 먹어도 당일처럼 맛있게 유지하려면 첨가제가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러면 맛이나 식감이 달라져서 고민이에요."

40년간 이어온 가게도, 수없이 많은 단골을 거느린 가게도 지금 가고 있는 길에 대해서는 늘 고민이 많다. 하지만 궁중떡집은 지금까지 해왔듯이 가기 쉬운 길이 아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찾아갈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백 년을 갈 가게로 선정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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