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시행된 '여성우선주차장'에 관한 운전자들의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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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 주말, A씨는 집 근처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모르는 이로부터 약간의 수모를 당했다. 분홍색 주차구획에 차를 대고 있는데 옆 차에서 내리는 여성이 "아저씨 여기 여성 전용인 거 안 보여요?"라며 따지듯 말했던 것. A씨는 "남자도 댈 수 있는 곳이다"고 맞받아치긴 했지만, 왠지 범법자 취급받은 기분에 쇼핑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어서도 "전용이 아니라 우선이다"라고 제대로 항변하지 못한 것이 후회돼 깊이 잘 수 없었다고 한다.

A씨가 알고 있는 것처럼 분홍색 주차구획은 여성 '전용'이 아닌 여성 '우선'이다.

'여성우선주차구역(주차장)'은 '서울시 주차장 설치 및 관리조례' 25조 2항에 따른 것으로, 주차대수 30대 이상인 노상, 노외, 부설주차장 등은 전체 주차대수의 10%를 여성우선주차구역으로 확보하게끔 돼 있다.

이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여행(女幸_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2009년 도입됐다. 당시 서울시에서는 지하 주차장 등에서 여성을 상대로 하는 범죄가 잦고, 이에 공포심을 느끼는 여성 운전자들이 늘면서 이 같은 사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여성우선주차장은 단순히 색을 분홍색으로 칠하는 것만이 아닌 ▲CCTV 사각지대가 아닌 곳 ▲주차관리 부스와 인접 ▲일반 주차구획보다 넓은 규격 등 세부 사항에 맞춰 조성해야 한다.

서울시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여성우선주차구역'은 현재 전국의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해 도입, 시행하고 있어 사실상 전국단위 사업이 됐다.

그러나 많은 운전자는 시행 12년 차가 된 여성우선주차장이 과연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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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14년 차인 윰언니(43·여)는 여성우선주차장 사업에 관해 "남녀갈등을 조장하고 여성은 운전을 잘하지 못한다는 김여사 프레임을 더욱 견고하게만 할 뿐"이라며 "차라리 CCTV 대수를 늘리는 것이 낫다"는 입장이다.

같은 여성 운전자 조하니(23·운전경력 6개월) 씨도 윰언니 씨와 비슷한 생각이다.

조 씨는 "운전한 지 얼마 안 돼 주차하는데 아직 자신이 없기는 하지만, 여성우선주차구획에 반드시 차를 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핑크로 여성우선주차구획을 그려놓은 것은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과 같이 성 관념을 고정하는 것 같아 시대정신에 뒤떨어지는 행정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여성우선주차장은 단순히 여성 운전자들의 '주차 편의'를 위해 고안된 것만은 아니다.

서울시에서 여성우선주차장 사업을 시행하기 전, 한 모녀가 쇼핑몰 지하 주차장에서 범죄자가 휘두른 칼에 잔인하게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로도 주차장에서 여성을 노린 범죄들이 보도됐다. 이에 서울시는 서둘러 조례를 손질하는 등 여성 운전자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실제 조례에 명시된 'CCTV 사각지대가 아닌 곳', '주차관리 부스와 인접'과 같은 내용은 여성우선주차장 사업이 여성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을 우선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성우선주차장에 대한 운전자들의 시선은 마냥 곱지만은 않다.

남성 운전자 중에는 "여성 운전자에게 왜 특권을 주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말은 주로 '여성우선주차장'을 '여성 전용'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비롯된다.

여성우선주차장은 남성도 이용할 수 있다. 남자가 주차했다고 벌금처분이 내려지거나 과태료 딱지가 날아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카시트에서 아이를 내리거나 유모차 등을 꺼내기에 적합한 공간 규모를 고려한 것인 만큼 아이를 주로 양육하는 여성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지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러한 점을 인지하지 못한 운전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여성우선주차장이 일반 주차구획보다 넓고, 특별한 제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여성우선주차구획만을 이용하는 남성 운전자들도 있다.

운전 8년 차인 별사탕(34·여) 씨도 이번에 질문을 받기 전까지 여성우선주차장을 '여성 전용'으로 알고 있던 케이스다. 그는 "범죄예방이나 임신한 운전자를 배려해 여성전용주차장이 마련돼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성우선구역에 주차하는 남성을 보면 짜증이 날 때가 있었는데 그동안 착각하고 살았다니 민망하다"고 말했다.

꿀파는여인(47·여)은 올해로 운전 23년 차다. 그는 직업 특성상 트럭을 주로 몰고 다니는데 여성우선주차구획에 차를 댔다가 수모당하기를 여러 번이라고 한다.

꿀파는여인은 "한 번은 주차관리인이 주차하는데 와서 저기 다른 자리에 대라기에 이유도 묻지 않고 그렇게 했다. 아저씨가 뭘 잘 모르고 그런 것 같았는데 따지고 싸우고 싶지 않았다. 또 한 번은 트럭은 당연히 남자만 운전한다고 생각했는지 한 아줌마가 주차하는데 뭐라고 하더라. 내가 여자인 것을 확인하고는 민망했는지 휙 돌아서 가는데 불러도 뒤도 안 돌아 봤다. 그때 생각하면 부아가 치민다"라고 말했다.

'여성우선주차장'이 오히려 '여성을 범죄 타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몇 년 전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는 여성우선주차구역에서 여성 운전자를 상대로 한 강도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범인은 여성우선주차구역에 숨어 있다가 이러한 범행을 저질렀다며 경찰에 진술했다.

여성을 납치해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한 뒤 시신을 불태우기까지 한 살인마 김일곤도 마찬가지. 그는 대형마트 주차장 등지에서 주로 범행을 저질렀다.

경기도 안양의 한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에서도 여성 운전자 차량의 뒷좌석에 탑승해 피해자를 흉기로 위협한 사건이 있었다. 인천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한 남성이 여성이 차에 오르는 순간을 기다리다 뒷좌석을 열고 범행을 저지르는 중에 경찰에 검거된 사건이 그것이다.

경찰의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2만 936건의 범죄가 주차장에서 이뤄졌다. 이중 살인, 강도, 강간과 같은 강력범죄는 224건이나 된다.

이처럼 여성의 안전을 위한 여성우선주차장에서도 강력범죄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운전경력 15년 차인 소소맘(38·여)과 운전경력 11년 차 권민지(32·여) 씨는 여성우선주차장의 역할과 기능에 관해 국민이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소소맘은 "어두컴컴한 지하 주차장은 들어갈 때부터 겁이 난다"며 "여성우선주차장이 있는 곳은 그나마 안심이 되는데 작은 건물의 몇 칸 안 되는 주차장을 이용할 때는 어디선가 사람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닌지 주변을 살피게 된다"고 말했다.

권 씨 역시 여성우선주차장은 기능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로라도 유지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권 씨는 "CCTV가 비추는 곳인 만큼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범인을 금방 알 수 있어 여성 운전자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우선주차장에 대한 운전자들의 의견이 분분한데다 형평성을 들며 폐지를 주장하는 운전자들도 생겨나자 서울시에서는 지난 2019년 8월 도입한 '임산부전용주차장'을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시에 따르면 임산부전용주차장은 기존 여성우선주차장의 일부를 전환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임산부전용주차장은 태아를 품은 까닭에 배가 나온 운전자들의 편리한 승·하차를 위해 일반주차구획의 폭(2.5m)보다 80cm가량 넓은 3.3m 크기로 조성된다. 이 때문에 운전자가 임신 중인 사실을 알아볼 수 있는 스티커를 부착한 차량은 주차 가능하다. 물론 임신하지 않은 여성이나 일반 남성이 주차했다고 해서 이를 제재하거나 벌금 처분 내리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의 양심에 맡길 뿐이다.

여성우선주차장이 남녀 갈등을 조장할 수 있음을 강조했던 윰언니(42·여)는 "임산부 주차장에 대해서는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다만 남자 여자 누구나 느닷없는 범죄로부터 안전할 수 없기에 여성우선주차장보다는 지하 주차장의 밝기를 높이고 CCTV를 조금 더 설치하는 등 모든 운전자의 안전을 지키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를 이야기하는 것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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