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메시지보다 이모티콘이 더 편한 요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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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뉴스=박윤미 기자)* [고민의 발견]에서는 살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부분을 다룹니다. 때로는 핫이슈를, 때로는 평범한 일상에서 소재를 채택합니다. 마지막 단락에는 고민과 닮은 책의 한 페이지를 소개합니다.

얼마 전 중학교 1학년생 딸을 둔 친구에게서 '웃픈'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친구의 하소연(?) 요지는 이렇다. 딸이 중학생이 되고 나서 점점 말대꾸가 늘고 사용하는 언어가 거칠어졌다는 것.

친구는 엄마밖에 모르던 순진하고 착했던 아이가 무슨 이유에선지 중학생이 되고부터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하면 기분 상한 표정을 지으며 방에 들어가 몇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는 방문이 살짝 열려 있기에 '얘가 뭘 하고 있나' 하고 살짝 들여다봤더니 온종일 스마트폰만 만지고 있더라는 것이다. '공부하거나 차라리 잠이라도 잤으면' 하는 자신의 기대가 빗나가자, 친구는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났고 그렇게 딸 아이 방을 노크도 없이 벌컥 열게 됐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하루면 끝났을 냉전은 그 사건으로 며칠 더 이어졌다고 한다.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냉전 중이긴 하지만 방학인데도 여행은커녕 시골 할머니 집에도 가지 못하는 딸이 안타까웠던 친구는 딸과 가까운 곳으로 1박 2일 휴가라도 다녀올 생각에 딸과의 화해를 시도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방법. 딸을 앞에 앉혀 두고 이야기하면 혹시나 잔소리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친구가 고민하며 선택한 것은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평소 '돈 안 되는 글은 잘 쓰지 않는다'는 말을 농담처럼 진심으로 해왔던 친구는 딸아이의 마음이 풀어지기를 바라며 진정성 있는 장문의 메시지를 쓰고 나름 교정 교열까지 마친 뒤 전송했다고 한다.

그러나 친구의 장문 카톡 아래 달린 것은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다니는 이모티콘 하나뿐이었다고. 자신의 진정성을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르긴 했지만, 더 이상의 냉전을 참을 수 없었던 친구는 "엄마한테 할 말이 물음표뿐이냐?"는 카톡을 전송했다고 한다. 엄마의 노력을 받아들인 것인지 딸도 이번에는 이모티콘 없이 텍스트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내용은 이랬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음. 세 줄로 요약 바람."

친구의 이야기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했다. 한 친구는 "엄마가 잘못했네", "까였네! 까였어"라는 이야기로 또 한 번 모두를 웃게 했다.

친구는 딸이 사춘기가 돼 반항이 심해진 데다 엄마인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보낸 장문의 글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 부분에서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어렵지도 않은 글인데 이해를 못 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의 딸은 사이좋은 부모 밑에서 가정교육 잘 받고 자란 아이다. 부모는 유능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친구의 딸은 인사성도 밝고 붙임성도 있어 어디에서든 사랑받는 아이다.

다른 친구가 "요즘 애들 다 그렇다"며 친구를 위로했지만, 친구의 걱정은 쉬 사그라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실제로 요즘 많은 청소년이 장문 읽기를 힘들어한다고 한다. 특별히 독서에 취미를 가진 경우가 아니고서는 종이에 적힌 글을 읽는 때라고는 고작해야 교과서와 문제집에 인쇄된 활자를 읽는 것이 전부인 게 요즘 아이들이다.

심지어 온라인 메신저 카카오톡이나 라인 같은 것으로 대화할 때도 텍스트보다는 이모티콘을 더 많이 쓴다. 정보를 검색할 때도 포털사이트가 아닌 동영상 사이트를 이용한다니, 도서관에서 논문을 찾아 정보를 얻어야 했던 시대의 기자 엄마와 글보다 이모티콘이 더 편한 중학생 딸 사이에 갭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임홍택 작가는 책 '90년생이 온다'를 통해 "2010년 이전에도 이모티콘이라는 단어는 존재했지만, 그때에는 기존의 문자 조합으로 이뤄진 문자 이모티콘을 뜻했다. (중략) 누가 어떤 이모티콘을 어떤 상황에서 사용했는지, 이와 더불어 어떤 신상 이모티콘을 소유했는지는 센스를 나타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또 "비선형적 읽기 시대에 긴 글을 내려가면서 읽어주는 참을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예를 들어, 이들은 긴 글을 읽는 데 투자할 시간에 여러 인터넷 기사와 그곳에서 파생된 링크를 넘나들면서 그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얻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투자 대비 회수'라는 경제학적인 선택의 관점에서 이들은 단일 글에 10분 이상 투자를 할 리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누구나 부모 또는 조부모 등 나이 많은 어른에게서 고리타분함과 답답함을 느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요즘 애들 건방지다'는 말을 어른들에게서 들어야 했던 것은 세대 간 충돌이 빚어낸 파편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가 딸의 도발(?)에 목덜미를 잡아야 했던 것 또한 그의 딸이 건방지거나 되바라져서가 아니라 자신과 다른 세대의 문화를 준비 없는 상태에서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처 피하지 못한 훅 한대로 치명상을 입기도 하는 것처럼.

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나이대별로 카테고리를 나눠 운영한다. 사회에서는 생산활동을 하는 연령대가 중심인 반면, 온라인에서는 새로운 문화와 시스템을 받아들이는데 거부감이 적은 10~20대가 중심이 된다.

요새 10~20대들은 긴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글보다 그림이나 사진을 더 선호한다. 그래서 텍스트 없이도 이해 가능한 '짤', '이모티콘' 같은 것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들의 카테고리에 들어가 몇 개 글만 클릭해 보면 그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가물에 콩 나듯 게시된 긴 글에는 '스압주의(스크롤 압박 주의)' 같은 경고가 제목 앞이나 뒤에 따라붙어 있다. 그러니 이런 시대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진정성이 담긴 편지 또한 어쩌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구시대 문화일 수 있다. 친구가 간과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아무리 사과 메시지에 진심을 담았다고 한들 수신인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설득력 없는 제스처일 뿐이다.

친구는 그날 딸에게 귀여운 이모티콘으로 말을 걸었다. 토끼가 귀를 움직이면서 무언가를 궁금해하는 동작을 취하는 이모티콘이 둘의 카카오톡 화면에 첫 주자로 등판했다. 바로 딸에게서 '어디냐'를 묻는 모양의 이모티콘이 도착했다. 친구는 '이모들이랑 밥 먹는다'는 텍스트 아래에 당근을 똑똑 끊어먹는 토끼 이모티콘, 그리고 우리가 먹은 음식 사진을 전송했다. 그들 모녀의 대화는 딸이 빨리 오라고 손을 흔드는 이모티콘 그리고 친구의 하트로 마무리됐다.

어릴 때부터 인터넷이 주는 풍요를 누리고 이후 24시간 온라인에 연결되어 있는 앱 네이티브들에게는 어느 때보다 유연한 사고방식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조용하고 집중적인 기존의 선형적 사고는 구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온라인상으로 제공되는 축약된 정보를 빠르게 흡수하고, 필요한 때 바로 찾는 비선형적인 사고방식이 중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의 시기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임홍택 '90년대 생이 온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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