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와 습도를 고려해 깨의 고소함을 가득 담은 한 방울, '성경기름집'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 성경기름집 권성훈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누군가 말한다. 서양에 트러플 오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참기름, 들기름이 있다고. 아무리 귀한 식재료가 있다 해도 그 향과 맛을 살려내는 것은 그 진득한 한 방울이 아닐까. 그러니 직접 만든 음식에 화룡점정을 차지하는 한 방울은 제대로 된 '참'기름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한 방울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깨를 볶고, 짜서 기름이 나오길 기다려야 한다. 성경기름집에서는 오늘 온도와 습도를 고려해 한 방울의 기름에 깨의 고소함이 응축되도록 최선을 다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방앗간 일을 천직으로 알고, 그 옛날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기계를 다루며 기름을 짜오던 권성훈 대표는 이제 성능이 훨씬 좋아진 기계를 쓰면서도 기계를 전부 믿지 않는다. 손님의 취향에 맞는 기름 한 병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기계의 힘과는 별도로 몇십 년간 이어온 감각과 몇십 년 동안 변함없었던 정성이 필요하다.


천직으로 다가왔던 방앗간 일


권성훈 대표는 고등학생 때부터 방앗간 일이 재미있었다. 친구 아버님 방앗간에서 아르바이트하던 권성훈 대표는 다른 사람들이 방앗간 일이 고되다는 말을 실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4시면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 그의 마음에 들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유달리 일찍 일어나곤 했던 그에게 방앗간 일은 천직처럼 느껴졌다.

1988년부터 서울에서 몇 년, 모란시장에서 몇 년간 방앗간 일을 배워 드디어 성경기름집이라는 이름으로 기름집을 차렸을 때는 그의 누나와 매형의 이름으로 사업자를 냈다. 아직 총각인 자신보다는 매형의 이름으로 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짜 노하우는 권성훈 대표에게 있었다.

"기름 짜는 일을 하나의 산업이라고 본다면, 이 나름대로 산업의 역사가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초창기,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때의 방앗간 일부터 차근차근 배워온 셈이죠."

지금보다는 시설이 훨씬 낙후되었던 과거 방앗간에서 전통적으로 기름을 짜는 방식은 두 번 압착하는 방식이었다. 기계가 큰 힘을 가해서 깨를 짜야 하는데, 파손될 위험이 있어 큰 힘을 가할 수 없으니 그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기계가 시원치 않으니 한 번 짜서 나오는 기름의 양으로는 턱도 없었다. 그래서 첫 번째 기름을 짜고 난 뒤에는 다시 깨를 볶아서 또 한 번 기름을 짜곤 했다. 두 번, 안 나오면 세 번까지 짜서 기름을 썼다. 뿐만 아니라 깨를 보자기에 싸서 짜고, 달라붙은 보자기를 떼는 일도 번거롭기만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기계가 굉장히 좋아졌다고 말하는 권성훈 대표는 다른 방앗간 대표보다 나이는 젊어도 그 노하우만은 어느 방앗간에 비해도 적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곳에서 가져오는 깨를 쓰더라도 그냥 기계에 의존하면 맛이 다 달라져요. 왜냐하면, 그날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서도 그 맛이 변하니까요."

이러니 기름집을 찾아오는 단골들은 총각이었던 그에게 중매에 나서겠다는 말도 자주 하곤 했다. 건실하게 자기 사업을 키워나가는 그를 보며 미래를 봤기 때문이다. 단골들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멀리서도 성경기름집을 찾아 기름을 짜러 오는 이들은 점차 늘어났다.

▲ (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방앗간이라면 해야 할 매운 숙명


권성훈 대표의 새벽 알람은 항상 3시 50분에 맞춰져 있었다. 새벽에 납품할 기름과 깨, 고춧가루 등을 싣고 배달했고, 낮에는 기름집에서 기름을 짜곤 했다. 종일 이곳에 있으니 옷은 온통 기름 냄새에 절어있기 마련이고, 식사 때마저 가게를 못 비워 이곳에서 식사해야 할 때도 많다. 그런데 이곳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못마땅해하던 손님도 있었다. 그래서 한바탕 싸우고 났는데, 그 뒤에도 그 손님은 이곳을 찾았다. 그만큼 성경기름집에서 난 기름이 맛이 좋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특별히 광고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몰렸고, 매형이 귀향하고 난 뒤에도 그는 이 기름집을 지켜나갔다.

여기에 더해 성경기름집에서는 가까운 가게를 새로 얻어 고춧가루 방앗간을 함께 하고 있다. 원래는 기름집에 고추분쇄기도 두고 썼으나, 손님이 매워하는 모습에 아예 분쇄기를 분리하게 된 것이다.

"원래 방앗간은 당연히 고추가 따라가야지. 손님한테 미안해서 2년 전에 따로 분쇄기를 놨어요. 깨는 먼지를 먹어도 크게 괴롭지 않은데, 고추는 내가 해도 괴롭거든요. 손님은 내 돈 주고 와서 괜히 고생할 필요 없잖아요."

고춧가루 분쇄 시 권성훈 대표가 가장 주의하는 것이 이물질 혼입이다. 분쇄기가 쇠로 만들어져 있다 보니 고춧가루를 분쇄하는 과정에서 쇳가루가 나오는데, 이를 최대한 거르기 위해 단계마다 자석을 두고, 최대한 쇳가루 혼입을 줄인다.

▲ (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통깨로, 손님의 취향에 맞춰 짠 좋은 기름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름과 직접 기름집이나 방앗간에서 짠 기름은 어떤 점이 다를까. 어떤 이들은 유통과정이 생략되니 기름집이나 방앗간의 기름이 훨씬 맛있다고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대기업이 만드는 것이니 상품화된 기름이 더 건강하지 않겠냐고 묻는다.

권성훈 대표는 시중 기름과 방앗간 기름의 가장 큰 차이점은 통깨와 분깨라고 말한다.

"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기름은 거의 분깨를 사용해요. 즉 빻은 깨를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통깨와 분깨의 가격 차이가 상당하거든요. 한번 볶고, 빻은 깨는 이미 산화가 시작되어 유통되는데, 그나마 통깨에서 바로 기름을 내면 조금은 건강하게 먹을 수 있죠. 게다가 빻은 깨가 항상 저온으로 유통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소비자들이 이를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제품 뒷면 식품표시사항에 적혀 있으니까요. 예전처럼 국산이냐, 중국산이냐 보는 건 무의미해요. 이미 국산은 없고, 중국산도 드물어서 다른 국가에서 수입해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두 번째 차이점은 취향껏 깨를 볶는 정도와 기름의 농도를 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커피로 비유하자면, 원두를 직접 볶고, 갈아서 만든 커피와 분쇄된 원두를 내려서 만든 커피의 맛 차이와 비슷할 것이다. 커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직접 로스팅하는 카페를 찾아가 그 향과 맛을 충분히 느끼곤 한다. 커피만큼 기름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먼 거리를 이렇게 찾아와 성경기름집에서 기름을 사가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더 많은 이들이 좋은 기름을 맛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성경기름집은 온라인 판매를 준비 중이다. 상인회에서는 온라인으로 주변 지역에서 모란시장을 만날 수 있는 기초 단계를 구축해두었으나, 모란시장을 찾는 고객층 대부분이 주변이 아닌 외부 고객이기에 현재의 플랫폼과는 맞지 않아 현재 보류된 상태이다. 그래서 성경기름집 권성훈 대표는 협동조합의 형태로 온라인 판매에 나설 계획도 가지고 있다.

"저희 시장은 판매처에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기름이 좋아도 먼 거리 배송이 굉장히 힘들었기 때문에 먼 거리에도 상관없이 택배 거래를 할 방안을 고민 중이에요."

이어 아들 역시도 20대 초반의 나이지만, 함께 배달하러 다닐 만큼 아버지의 천직에 관심을 두고 있어 백 년을 이어갈 가게로 그 잠재력이 충분하다.

기름을 짜내는 방식에 있어서 과거 전통방법에서 현재의 기술력을 잘 버무렸던 성경기름집은 이제 미래의 판매방식까지 더해 모란시장보다 더 넓은 시장으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다.

키워드

#백년가게
저작권자 © 팝콘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