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경험을 도둑질하는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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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뉴스=박윤미 기자)* [고민의 발견]에서는 살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들 가운데,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부분을 다룹니다. 때로는 핫이슈를, 때로는 평범한 일상에서 소재를 채택합니다. 마지막 단락에는 고민과 닮은 책의 한 페이지를 소개합니다.

몇년 전 일이다.

병원에 도착해서야 예약 시간을 착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진료까지 1시간 가까이 텀이 생겨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나 고민하다 병원 근처 '아름다운 가게'에 갔다.

'아름다운 가게'는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새 물건이나 더는 쓸 일 없어진 중고물품을 기부하면 그것들을 저렴하게 판매해 수익을 만들어 도움이 필요한 곳에 쓴다는, 이른바 착한 가게다.

아름다운 가게는 외국의 벼룩시장 같았다. 흥미로웠다. 한때 '누군가의 물건'들이라 그랬을까, 타인의 취향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게 안은 나름 질서를 갖추고 있었다. 한쪽 벽에는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고, 다른 쪽에는 인테리어 소품이었을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열을 맞춰 진열돼 있었다. 이 가게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옷들인지 옷 판매대에 사람이 많았다.

윈도우쇼핑만으로도 에너지가 충만해질 무렵, 그릇 코너에서 독특한 찻주전자 하나를 발견했다. 도자기 재질의 찻주전자는 동글한 모양으로 귀여웠다. 뚜껑이 꽉 닫히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기는 했지만 조심해서 쓰면 되겠거니 싶어 더 따지지 않고 집어 들었다. 가격도 5500원. 모처럼 합리적인 소비를 한 기분이었다.

좋았던 기분은 곧 박살났다.

계산 중에 작은 사고가 일어났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뚜껑을 의식하지 못하고 바코드를 찍다가 그만 뚜껑이 땅에 떨어지며 깨진 것이다. 이 가게에 딱 하나뿐이던, 뚜껑이 디자인의 핵심이던, 계산이 끝나면 내 것이 될 찻주전자가 그렇게 눈앞에서 사라진 것이다.

도자기 깨지는 소리에 매장은 잠시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동시에 계산대를 바라봤다. 그때 아르바이트생과 같은 색깔 같은 모양의 앞치마를 맨 중년 여성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여성은 아르바이트생에게 "괜찮다"라는 말을 서너 차례 한 뒤 "저쪽으로 가 있으라"고 손짓했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내 예상대로 그 가게의 매니저인 그녀는, 처세에 능했다. 학생이 쭈뼛하며 자리를 떠나지 못하자 "다치지 않았으면 됐다"라고 안심시키며 사고(?)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끔 일부러 간식 심부름까지 시켰다.

매니저의 뒤처리(?)가 끝나는 동안 나는 꼼짝없이 계산대 앞에 서서 그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어른의 품위, 아름다운 그림으로 기억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 훈훈한 장면에서 나는 반칙을 발견했다.

어렸을 때 미술학원 선생님인 엄마가 도와준 미술 숙제로 상을 받은 친구가 갑자기 생각났다. 어린 나이지만, 그때 나는 친구보다 친구 엄마가 더 미웠다.

"더 계산할 것 없냐?"며 쳐다보는 매니저에게 나는 말했다.

"선생님,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살지 않습니까. 어른들도 그런데 하물며 어린 아르바이트생이 일하다 하는 실수는 이해 못 할 일이 아니죠. 그런데 선생님은 지금 아까 그 학생이 실수를 수습하고 그것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아주 귀한 기회를 빼앗으셨네요. 앞으로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아까 그 학생은 누군가의 뒤로 숨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손님인 제가, 당사자인 제가, 실수한 학생에게 '괜찮다, 다치지 않았냐'고 말할 수 있는 기회까지도 선생님이 가져가셨네요"라고.

"학생이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자원봉사자인 데다 너무 놀란 것 같아 진정시키기 위해 그랬다"는 매니저의 말이 채 끝나지 않은 내 말과 공중에서 부딪혔다.

그날 이후로도 병원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그곳에 들렀지만, 그날의 자원봉사자 학생도, 마음에 쏙 드는 찻주전자도 더는 만날 수 없었다.

아름다운 가게는 '나눔 그리고 선순환을 지향하는' 공익법인이다. 취지가 아름답다. 알아보니 전국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 대부분은 날짜를 기다릴 정도로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학생들은 이곳에서의 자원봉사를 통해 나눔과 기부를 대리 체험하고, 더불어 그것을 통한 물건과 사람의 가치를 배우게 될 것이다. 이제 16개월에 들어선 딸이 중·고등학생이 되어 자원봉사처를 찾을 때가 오면 추천해 주고 싶다.

얼마 전 줌(zoom)으로 하는 독서 모임에서는 대학생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대학교에는 초등학교 육성회나 운영위원회 같은 '어머니 모임'이 있다는데, 언젠가 들었던 기억은 있지만, 구체적인 사례로 들으니 매우 흥미로웠다. 엄마들이 대학생 자녀를 대신해 스터디, 동아리, 조별 과제 스케줄을 조율하고, 과제나 리포트를 위한 자료조사에 어떤 때는 시험공부를 대신(?)하기도 한다나. '위대한 모정'이 제목일 수도 있었던 이 그림은 한눈에 봐도 졸작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유명한 책 제목이 떠오른다. 베스트셀러였으면서도 '아프다'라는 말 때문에 책과 지은이는 '아프기 싫은 많은 청춘'에게 오래도록 놀림 받았다. 그들도 사실은 안다. 저자는 명사 '경험'을 대신해 '아프다'라는 형용사를 쓴 것일 뿐이라는 걸.

대학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다. 지역과 나이, 성별이 다른 친구들을 사귀고, 학생이지만 미성년이 아닌 자에게 허락된 경험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시절인 것은 분명하지만, 혼란과 실패, 시련과 좌절 같은 상처들도 도처에 널려있다. 이 귀한 시절을 누군가 대신 살아내는 것은 반칙이다.

16개월 아기가 또래보다 발육이 늦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뒤지고 의사에게 상담받아보기도 했다. 걷기 싫다며 주저앉는 아이를 일으켜 '걸어보라' 재촉한다. 어떤 날은 아이를 걷게 하려고 내가 더 많이 걷는다.

친정엄마에게서 나와 딸의 상황을 들었는지 친정 오빠가 웬일로 전화를 다 걸어왔다.

"동생, 자식 망칠 수 있는 아주 빠른 방법이 있는데 알려줄까?, 부모의 조급함이야."

아이를 대신해 걷고 달리고 싶은 마음, '맘 맘 맘마' 밖에 못 하는 아이의 언어를 남들에게 통역해 주고 싶은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나 역시 '엄마'라는 권위로 아이가 누릴 세상을 도둑질하고 있다.

선험자인 부모는, 그저 기다려 주면 되는 것이었다.

미국 사회는 특별한 경우였다. 미국인에게는 의지할 관행이 없었다. 자식들에게 본보기로 보여 주면서 따르게 할 '삶의 방식'이라는 게 없었던 것이다. 미국이 가지고 있던 유망한 장례성(즉, 미국의 힘)은 시민들이 전통이나 고정불변의 엄격한 사회 구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중략)

"미국인 부모는 자기 아이가 자기 곁을 떠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물리적으로 멀리 다른 도시 혹은 다른 주로 떠나리라는 것을 안다. 자기 곁을 떠나 다른 직업을 가질 것임을 안다. 자기와는 다른 소명을 받아서 다른 기술을 배울 것임을 안다. 또한 자기 곁을 사회적으로도 떠나서, 가능하다면 부모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것임을 안다."

-제니퍼 시니어, '부모로 산다는 것'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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