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구 한 바퀴를 돌았다

(팝콘뉴스=편슬기 기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오는 신체 일부 중 하나인 머리카락. 더운 여름이면 틀어 올려 묶고, 가을이면 기분 전환 삼아 염색도 하고 펌도 해본다.

머리카락은 본래 목적인 머리 보호를 넘어 개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탈모 환자들의 경우 일상생활에서 상당히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한 경우 자신감 저하나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항암 치료로 인한 부작용으로 탈모를 겪는 환자들도 적지 않은 상실감과 우울감을 갖는다. 특히 나이가 어린 환자일수록 외모에 민감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소아암 병동에서 환아들의 그늘을 보다


▲ 어머나 운동본부 김영배 이사장(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머리카락을 기부받아 가발을 만들고, 만들어진 가발을 환자들에게 무료로 기증하는 '어머나 운동본부'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김영배 이사장은 과거 소아암 병동을 방문해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아들을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진행한 봉사활동 얘기를 풀어놓았다.

"아무리 책을 읽어주고 춤을 추고 신기한 마술을 보여줘도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건 잠깐일 뿐, 금세 표정이 어두워지더라."

그 이유가 듬성듬성 빠져버린 머리카락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김영배 이사장은 그날로 가발을 만들어 기부하는 비영리단체를 조직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게 됐다.

초기부터 운영 실적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기부가 '현물'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당시였기에 '모발'을 기부한다는 개념이 사람들에게 적잖이 생소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어머나 운동본부 설립 초기였던 2008년에는 기부자들이 100명을 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선의가 하나둘 모여 가발이 만들어졌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며 머리카락 기부도 점차 늘어났다. 기부자들이 소중히 길러온 머리카락과 사연이 담긴 박스가 한 달에 5,000건가량 도착하고 있다.

기부도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회, 3회 지속하는 경우도 적잖이 있다. 보통 기부를 위한 머리카락 길이 25㎝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어림잡아 3년 동안 머리카락을 길러야 한다. 세 번 기부 하게 되면 10년 동안 어머나 운동본부에 기부해온 셈이 된다.


머리카락 한 다발에 사연 하나


▲ 모발 기부자들이 함께 보내온 사연(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도착하는 편지에 적힌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자녀의 배냇머리를 잘라 기부하는 부모부터 입대 전까지 머리를 길러 기부한 20대 청년, 투병 당시 어머나 운동본부에서 가발을 기증받았던 환자가 암을 완치하고 받은 은혜를 모발 기증으로 보답한 사연 등 전국 각지에서 기부자 수만큼의 사연이 도착한다.

아이가 고사리손으로 연필을 쥐고 썼음직 한 삐뚤빼뚤한 글씨가 가득한 편지, 색연필과 크레파스로 희망의 그림을 동봉한 편지,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반듯한 글씨로 써 내린 편지 등모두 고맙고 소중한 사연이다.

어머나 운동본부는 기부자들의 우편물을 차곡차곡 수집해 꾸준히 책으로 펴내는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기부의 손길은 국내뿐 아니라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도 이어진다. 환아들을 돕겠다는 마음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바다를 건너 이곳 대한민국에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접수처에 도착한 머리카락들은 가발 제작 기술을 가진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소아암 환자들이 사용할 가발로 탄생하게 된다.

기부된 머리카락이 온전히 가발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25㎝ 미만의 짧은 머리카락들을 걸러낸 후 살균 공정(산 처리)을 거친다. 그 후 한 가닥씩 일일이 심어 가발을 완성한다.

만들어지는 가발의 디자인과 색도 가지각색이다.

김영배 이사장은 "친구들이 원하는 스타일이 여러 가지라 앞머리를 시스루 뱅으로 잘라 달라거나 요즘 유행하는 색으로 염색해달라, 뒷머리는 연예인 누구처럼 해달라는 등 다양한 요청이 온다. 그런 경우 최대한 요구 사항을 반영해 가발을 만들어서 보내고 있다"라고 답했다.


가발 제작 명맥 잇고 시니어 일자리 창출도


▲ 22일 날짜로 기부 된 머리카락(사진=팝콘뉴스). ©팝콘뉴스

1970년대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어준 효자 상품은 단연코 '가발'이다.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꿰맨 덕에 질과 내구성이 뛰어났다. 우리나라 총수출량의 10%를 차지할 정도였으니 효자 중에 효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현재에 들어서서 가발을 찾는 이들이 줄며 가발 제작사의 수도 점차 줄어들었다.

어머나 운동본부는 가발 기부를 통해 가발 제작사의 명맥을 잇고 시니어 일자리 창출도 도모하고 있다.

요즘엔 코로나19로 인한 생겨난 어려움으로 크고 작은 불편함을 겪고 있다.

가발 제작을 위해선 10여 가지의 공정과정을 거치는데 원래 환아를 만나 머리둘레 등 수치도 재고 원하는 스타일을 묻는 등의 대면 과정을 거쳐 왔으나 이를 전부 생략해야만 하는 불편함이 생겨났다.

당분간은 코로나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가발을 만들어야겠지만, 김영배 이사장은 걱정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뭘 더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거듭한다.

김영배 이사장은 본인은 아무런 재능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에게 역시 귀중하고 값진 재능이 있다. '어떻게 하면 남을 더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따뜻한 마음씨다.

인간의 선의는 마치 물과 같아 세상을 순환하며 서로를 돕는다. 어제 내가 받은 고마움을 오늘 다른 이들에게 전해보자. 그럼 내일엔 그들이 받은 고마움을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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