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름을 걸고 빵을 만드는 동네 빵집, '민부곤과자점'

▲ 민부곤과자점 민부곤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강나은 기자)* 백년가게: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곳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

가까운 곳, 어쩌면 허름해서 그냥 지나친 곳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들이 많습니다. 30년 이상 이어왔고, 어쩌면 100년 넘게 이어질 우리 이웃은 가게를 운영하며 어떤 사연을 쌓아 왔을까요. 힘든 시기에 몸도 마음도 지친 소상공인은 물론, 마음 따뜻한 사연 있는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백년가게를 소개합니다.

"꼴랑 50년 빵 만들었다고 그만둘 수가 있나. 저는 빵 만드는 일 말고는 취미도 없어요. 저는 죽는 날까지 빵 만들고 죽을 겁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 자신의 50년을 걸고 하는 일이라면, 이 정도 애정과 자신감을 있어야 할 법했다. 지금은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 제과기능장인 민부곤 대표 역시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을 때만 해도 청년 제빵사였다. 이곳에 젊음을 바치고, 세월을 바쳐 만든 빵이 누군가에게는 젊음을 상징하고, 누군가에게는 세월을 상징하는 추억의 맛이 됐다.

아주 오래전부터 유기농 밀가루, 쌀가루를 사용하고, 자연발효종을 직접 발효시켜 빵을 만들어낸 손은 아직 빵 만들기를 쉬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만들어보고 싶은 신제품이 많았고, 아직도 만족시키고 싶은 고객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그는 쉬는 대신 즐겁게 일하기를 택했다.


아파트 단지에 위치한 30여 년 전통의 동네빵집


1989년, 아직은 아파트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노원구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왔다. 3315세대가 거주하는 보람아파트가 상계동에 들어선 것이다. 주변 다른 아파트 대부분이 1천 세대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한 규모였다. 이렇게 주택가가 아파트 단지로 바뀌던 그때, 민부곤 대표는 빵집을 열 만한 자리를 보러 이곳저곳을 다니곤 했다.

"제가 이전까지 부천에 있었거든요. 그런데 서울에 빵집을 열고 싶어서 오토바이 타고 노원구 상계동이나 송파구 문정동 이런 곳들을 많이 보고 다니곤 했죠."

마음 같아서는 상계동 보람아파트 상가와 당장이라도 계약하고 싶었지만, 임대 조건이 만만치 않아 고민이 되던 찰나였다. 그때 한 지인이 자신이 가계약을 해놓은 장소가 있다며 보여준 곳이 바로 보람아파트 상가 자리였다. 자신이 잠실에 운영 중인 빵집과 여기를 함께 운영하고 싶었는데, 가계약을 해놓고 보니 두 가게의 거리가 너무 멀어 계약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인 채로.

"내가 이 자리를 봤었는데, 여기가 나한테 돌아오려고 그랬는지 딱 맞게 이런 일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 자리를 맡게 됐죠."

민부곤 대표는 1989년 3월 이 자리에 제과점을 열었을 때부터 기분 좋은 예감이 있었다. 당시 또 다른 지인이 같은 해 두 달 전 연 빵집이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 앞 상가에 자리 잡아 꽤 많은 매출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빵을 만드는 기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1970년부터 제과점에 취업한 이종사촌을 따라 제과점에 취업한 그는 풍년제과로 시작해 다음 해 뉴욕제과에 입사했다. 서울 4대 빵집으로 유명했던 그 뉴욕제과였다. 17년간 뉴욕제과에서 일하며 명동에서 시작해 군포, 인천까지 여러 지역에서 공장장으로서 빵 제조를 도맡았던 그는 처음으로 부천에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 그리고 부천에서 노원으로 자리를 옮기고는 여기서 30년 넘는 시간동안 한 자리를 지켰다.

"거의 내 청춘은 여기에 다 바친 거죠."

그는 이곳에서 머무른 오랜 시간을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했다.

▲ 민부곤과자점 내부(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좋은 재료와 부지런한 손길로 만들어낸 건강한 빵


민부곤과자점은 아직도 그때의 추억이 깃든, 정겨우면서도 고급스러운 실내 장식과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안 그래도 빵이 고급 음식으로 취급받았을 때였지만, 민부곤 대표는 더 좋은 재료를 사용해 고급 빵을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다. 다행히도 이 결심은 고객들의 취향에 적중했다.

고객들은 '빵값은 비싸긴 해도 계속 빵만 맛있게 만들어달라'며 이구동성으로 민부곤과자점의 빵을 이야기했다. 주변 제과점보다 약간은 비싼 가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부곤과자점은 좋은 품질로 이를 극복해나갔다.

"사실 예전에는 저희 빵이 정말 다른 제과점보다 비쌌어요. 지금은 가격에 있어서 다른 제과점들의 빵 가격이 워낙 많이 올라서 그와 비교하면 저희 빵이 비싼 건 아닌데, 아무래도 비싸다는 인식이 박혀있어서 그런지 빵이 비싸다는 말은 많이 들어요. 그런데 재료를 생각하면 매우 싼 편이죠."

유기농 밀가루, 혹은 쌀가루로 직접 반죽하고, 직접 속을 넣어서 굽는 빵의 가치가 공장에서 나와 오븐으로만 굽는 빵의 가치와 같을 수는 없다. 게다가 이런 과정을 보지 않고도 빵을 맛보면 더욱 신선하면서도 건강한 느낌이 드니 그 차이점은 명확하다.

특히 민부곤과자점에서 시그니처 메뉴로 불리는 마늘 바게트의 경우, 만들어 구우면 팔리고, 만들어 구우면 팔리는 통에 고객들의 아쉬움은 있지만, 민부곤 대표는 절대 빵과 속을 주문 제작하지 않는다. 작업이 아무리 오래 걸릴지라도 바로 이곳에서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고, 직접 만든다는 원칙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모든 빵은 내 손을 거쳐서'라는 모토를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낸 빵은 항상 고소한 냄새를 내며 고객들을 유혹했다.

▲ 작업 중인 민부곤 대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민부곤과자점에서 꾸준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또 다른 빵이 바로 자연발효종을 이용한 빵이다. 요즘에는 트랜드로 자리 잡았지만, 민부곤 대표가 십몇 년 전, 독일 제과제빵 학교에서 자연발효종을 공부해 제과점에서 처음 시도해봤을 때만 해도 고객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너무 덜 달고, 너무 딱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아직은 자연발효종 빵을 만들 때가 아니라고 인식했지만, 언젠가는 더 건강한 빵에 대한 수요가 있으리라고 생각해왔다.

"나름 공부했던 것들이 있으니까 아쉬웠죠. 큰 빵집에서는 시도할 수 있지만, 동네 빵집에서는 찾는 사람이 없어서 그동안 못 만들었거든요. '뭐 이렇게 딱딱한 빵이 있냐'며 불만이 속출했으니까요."

그러다 서서히 자연발효종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자 바로 사과를 이용한 자연발효종 빵을 구워냈다. 직접 발효종을 배양해 빵 반죽에 넣고 만드는 일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화학적인 첨가제로는 금세 끝날 작업이 자연발효종을 쓰면 훨씬 번거롭고, 훨씬 길어졌다.

"기어가는 느림보의 마음으로 차분히 하나라도 정성을 다해서 만들자고 마음먹었어요. 여기 있는 르뱅의 경우에도 화학적인 첨가제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보조첨가물인 이스트도 0.01%만 들어가요. 프랑스에서도 0.02% 이하 이스트는 완전 자연발효종으로 칭하죠."

당뇨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나 밀가루 소화가 어려운 이들도 무리 없이 먹을 수 있는 빵으로 이런 담백한 빵을 찾으면서 민부곤과자점은 또 다른 단골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 다수의 표창장이 눈에 들어온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민부곤 대표에게는 아직도 부족한 50년의 시간


민부곤과자점은 백년가게로서만 그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민부곤 대표는 제과기능장이자 50여 년간 한 길만 걸어온 명인으로서 수많은 제과제빵관련 대회에서 심사위원을 맡아 후학을 위해 양성한 한편, 서울시에서 1호 명인으로 선정됐으며 노원구에서도 여러 번 표창장을 수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민부곤과자점이 이 자리를 지킨 것에 대해서 더욱 큰 상을 준 이들은 바로 아직도 이곳을 찾는 단골들이다. 상계동 보람아파트 주변은 아파트 세대수가 많았던 만큼 학교도 많다. 그렇다보니 빵집을 오픈했을 당시에도 학생들이 자주 이곳을 찾았다. 그런데 학생들이 받는 용돈이 넉넉할 리 없었다. 그래서 민부곤 대표는 학생들이 오면 은근슬쩍 빵을 하나씩 더 주기도 하고, 갓 만든 빵을 시식해보라는 핑계를 대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꼬깃꼬깃한 용돈으로 빵을 사 먹었던 아이들이 이제는 중년이 되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이곳을 찾았다. '우리 학교 다닐 때 여기는 추억의 고급 빵집이었어. 이렇게 오랫동안 하고 있지'라며 자랑하듯 빵집을 이야기할 때, '오래 이 자리에 있어줘서 고맙다'며 대표의 눈을 보고 이야기할 때, 민부곤 대표는 어떤 큰 상을 받았을 때보다도 더 큰 보람을 느꼈다.

이제 어느덧 머리가 새하얗게 센 장년이 된 민부곤 대표는 '꼴랑 이 나이 먹었다고 빵을 안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50여 년을 만들어왔지만, 아직도 새로운 빵을 만들 때면 맛있게 먹어줄 고객들의 모습이 생각나 신나고 힘이 솟는다.

"'주변에서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렇게 힘들게 빵을 직접 만드냐'고 물어요. 제가 그럴 때마다 대답하죠. '나는 죽는 날까지 빵 만들고 죽을 거다'라고요. 저는 빵 만드는 일 말고는 취미도 없어요. 아니 취미이자 직업이 빵 만드는 일이에요."

50여 년간 빵을 만들어온 민부곤 대표는 딸과 함께 계속해서 ‘민부곤’ 자신의 이름이 걸린 제과점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자신한다. 지금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의 손주에게도 추억의 빵집이 될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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