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후지마비 된 장애견 '햇반이', 좋은 사람들 만나 견생 2막 시작

(팝콘뉴스=박윤미 기자)* 개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가족'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려동물만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짝꿍)'라 고백하기도 합니다. 가족과 친구. 이 두 단어에는 아무래도 '사랑'과 '정'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 하나 책임지기 힘든 세상에 다른 생명을 위해 시간과 돈, 그리고 마음을 쓸 이유는 없으니까요.

[반짝 히어로]는 이처럼 사람과 동물 간의 특별한 사연들로 채워 나갑니다. 동물 관련 유의미한 일을 주로 다룰 예정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건들도 가급적 빠뜨리지 않고 기록할 것입니다.

더불어 사람과 동물의 '온전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 주변 숨은 영웅(히어로)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 구조 후 보행기에 탄 햇반이(사진=팝콘뉴스) ©팝콘뉴스

여기 하얀 개 한 마리가 있다. 햇살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을 가진 이 개의 이름은 '햇반이'. 평생 사랑받으며 밥 굶고 살지 말라는 뜻을 담아 누군가 지어 선물한 것이다.

햇반이의 추정 나이는 한 살 반. 반려견과 사는 이들은 안다. 이 나이는 온 집안을 헤집고 살림살이를 망가뜨리는 장난꾸러기 시기, 외출했던 주인이 돌아오면 스카이 콩콩이라도 탄 듯 두 발로 깡충깡충 뛰며 온갖 재롱을 부리는 시기, 산책길에서는 매번 질주본능이 발현돼 누가 누구를 끌고 다니는지 모를 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라는 것을.

햇반이도 마찬가지. 흙먼지 일으키며 전속력으로 달리기, 집 밖의 새로운 냄새 탐색하기 등은 햇반이의 에너지원이다. 다만, 보통의 개들처럼 아무 때나 그럴 수는 없다.

▲ 구조 전 햇반이(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햇반이는 척추와 뒷다리 양쪽 모두가 부러진, 재생 불가능한 '후지마비'를 가진 장애견이다. 그래서 햇반이에게는 뒷다리를 대신할 보행기와 "옳지!", "잘한다" 하고 응원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햇반이는 복이 많은 것일까. 지금 햇반이 곁에는 튼튼한 보행기와 햇반이를 지키는 든든한 사람들이 있다. 가장 가까이에는 햇반이를 돌보겠다며 부모님과 살던 집에서 나와 일 년 가까이 식구(食口)로 지내고 있는 전직 캣대디 동훈 씨가 있다. 햇반이와 동훈 씨가 사는 월셋집과 10분 거리에는 햇반이 소식을 듣고 "살려야겠다"고 마음먹은 재원 씨도 있다. 그리고 서울에서 여수까지 한달음에 가 햇반이를 구조해 온 호섭 씨를 비롯한 대모 30여 명이 있다.

햇반이는 여수의 한 국도변에서 고속으로 달리던 SUV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갑작스레 뛰어든 개를 피하지 못한 운전자는 햇반이를 그대로 들이받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도로 한가운데 피 흘리는 쓰러져 있던 햇반이를 발견한 인근 마을의 주민들은 작지 않은 개를 들춰 안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병원에 데려가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았다. 병원비가 한두 푼인 줄 아느냐는 누군가의 말에 아무도 나서는 이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햇반이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하반신을 전혀 쓸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배 주변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살갗이 벗겨진 상처에는 피고름과 함께 파리 떼가 엉겨 악취를 만들었다.

그렇게 3주 이상 방치돼 있던 햇반이는 '반짝 히어로(반려동물들과 짝꿍이 되기를 자처하는 우리 주변의 영웅들)'들에게 구조됐고,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유명한 동물병원으로 옮겨져 MRI를 비롯한 각종 검사 및 상처 치료 등의 의료 서비스를 받았다. 하지만 마비된 하반신 기능을 되살리는 일은 불가능했다. 골든타임을 놓쳐 신경이 아예 망가졌기 때문이다.

▲ 햇반이와 친구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이렇게 죽음의 문턱까지 밟았던 햇반이는 현재 재원 씨, 동훈 씨 그리고 대모들의 사랑 속에서 제2의 견생을 살아가고 있다. 일곱 번 파양됐다가 마지막엔 창고에 버려진 솔지, 주인의 학대로 네 다리뼈 모두 바스러진 상태에서 구조된 토토, 주인이 세상을 떠나 방치됐던 나이 많은 고양이 루루, 보보와 한집에서 지내고 있다.

재원 씨는 한때 햇반이를 입양 보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대소변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만큼 큰 장애가 있는 큰 개를 원하는 곳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그래서 재원 씨 동훈 씨, 대모들은 '함께 오래오래 햇반이를 돌보기'로 했다.

대모들은 햇반이와 친구들을 위해 다달이 1만 원씩을 후원하고 있다. 개인 구조자로 여수에 다녀온 호섭 씨가 한때 SNS로 햇반이 이야기를 알리며 모금 활동을 벌인 덕에 햇반이는 앞으로 몇 번 더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적극적인 대모들은 햇반이와 친구들을 돌보기 위해 멀리서부터 찾아오는 수고로움을 자처하고, 시간은 없으나 돈은 보탤 수 있는 몇은 계산 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 햇반이와 함께 사는 동훈 씨(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재원 씨는 호소했다. "제발 제발 (동물) 버리지 말아달라. 때리지 말아달라. 우연히 본 새끼 고양이 예쁘다고 마음대로 데려갔다가 쉽게 버리지 말아달라. 그리고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새끼 고양이 데려오면 안 된다고 가르쳐 달라"고.

진심을 꺼내 보이기도 했다. "햇반이를 구조하고 후회한 적도 있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처음 구조할 땐 치료만 잘 해주면 나을 줄 알았다. 그런데 더는 후회하지 않게 된 것은, 보행기를 타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햇반이의 웃는 얼굴을 보고서다. 지금은 햇반이를 포기하지 않은 게 얼마나 잘한 일인가 싶다. 그리고 함께 해주는 고마운 사람들, 햇반이의 대모들이 계셔서 길게 보고 갈 자신도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있던 날 밤, 햇반이 룸메이트 동훈 씨는 기자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SNS를 통해 알게 된 햇반이의 모습이 너무 불쌍했고 마음이 아파 잠깐이라도 돌봐 주고 싶어 시작했던 임시 보호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을 함께하게 될 것이라고는 저도 대모들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후지마비 장애견의 소변을 손으로 눌러서 짜내는 일이나, 항문을 자극해서 대변을 받아내는 일은 저도 처음 해 본 것들이라 서툴렀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끼니마다 밥 챙겨 먹듯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딱히 어떤 마음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에 대한 답은 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햇반이가 가여울 뿐입니다."

* 독자 여러분 주변에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면 주저 말고 아래 이메일로 제보해 주세요. 동물의 개인기나 생김 등에 대해서는 제보받지 않습니다. 박윤미 기자 yoom1730@hanmail.net

저작권자 © 팝콘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