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건물주 "주민 동의 없는 강제수용" 전면 취소 요구

▲ 공공주택지구 지정 후 주택사업 예정인 서울역 쪽방촌(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팝콘뉴스=정찬혁 기자)서울 중심에 위치하지만 오랜 기간 소외된 쪽방촌에 재개발 청신호가 들어왔다. 정부는 주택공급을 위해 서울역 쪽방촌을 공공주택지구로 지정해 대규모 주거공간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추진 의도와 달리 건물·토지주들은 전면 취소를 강력하게 주장해 시작부터 엇박자가 나고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소외된 서울역 쪽방촌


정부는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인근 쪽방촌 일대 4만 7000㎡를 공공주택지구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공공주택 1450호(임대 1250호, 분양 200호)와 민간분양주택 960호 등 총 2410호의 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서울역 쪽방촌은 1960년대 도시 빈곤층이 몰리며 형성된 곳으로, 30년 이상 된 건물이 80%가 넘을 정도로 노후화됐다.

서울역 11번, 12번 출구를 나와 곧바로 골목길에 들어서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낡은 건물들이 보인다. 쪽방촌 건물 곳곳엔 금이 가 있고, 좁은 골목은 차량이 진입하기 버거워 보였다. 건물 벽에는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흡연 금지 등을 요구하는 경고문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 주변에 방치된 담배꽁초와 쓰레기 때문에 건물 곳곳에는 경고문이 붙어있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반대쪽은 트라팰리스를 비롯해 고층 건물이 줄을 지어 서 있어 대조를 이뤘다. 점심시간에 회사원들이 대거 밖으로 나왔지만 쪽방촌 안쪽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쪽방촌 인근 공원 구석에는 노인 몇 분이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울역 쪽방촌 일대는 그동안 민간 주도 재개발이 추진됐으나, 쪽방 주민 이주대책 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무산됐다.

정부는 공공이 주도해 쪽방촌 거주민의 생활을 개선하고 주택공급을 늘리려 했지만, 토지·건물주들의 반응은 달랐다. 사전에 주민에게 사업을 알리지 않았고,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특히 대다수 주택 소유주가 실거주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실거주 다주택자는 현금청산 대상이라 우선 공급권도 받을 수 없다.

실거주하지 않은 소유주에게도 특별공급이 가능하다는 보도가 나갔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비실거주자 공공주택 우선 입주권에 관한 건 제도적으로 가능하다는 수준에서 이야기했지 아직 구체적인 협의가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LH 관계자는 "우선 주민 의견서를 받고 이후에 공공주택지구 지정과 보상에 관한 구체적인 절차와 일정이 나올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 사업 반대 의견을 담은 플래카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토지·건물주 "공공 강제 수용 전면 반대...민간으로도 충분히 가능"


하루아침에 동의 없이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됐지만, 보상이 보장되지 않자 소유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일어섰다.

후암특계1구역(동자) 준비추진위원회 오정자 위원장은 "우리는 공공사업을 전면 취소하고 민간 개발로 해달라는 게 첫 번째 목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사업 발표 당시 "지구지정 여부는 공시 전 공개될 경우 형법상 처벌을 받게 되는 중범죄로, 부득이 집주인과 토지주의 사전 논의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변 장관은 "쪽방촌은 공공주택지구 방식이 아니면 이주 대책과 사업성은 물론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라며 "토지주와 집주인도 충분한 보상과 설득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 장관의 의견과 달리 오 위원장은 "우리도 상생하는 공공임대 찬성한다. 이 지역은 쪽방촌 거주민이나 노숙자를 빼고 사업을 할 수 없다. 우리의 숙제다. 우리도 함께 안고 가는 방향으로 결론을 냈다. 민간이 주도해서 하려고 했는데 정부는 마치 공공이 아니면 못하는 것처럼 밀어붙이고 있다"라며 반박했다.

▲ 주민 의견을 담은 탄원서(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오 위원장과 토지·건물 소유자 일동은 국토부에 제출할 탄원서와 의견제출서를 취합하고 반대 의견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이미 올라와 있다.

주변 도로변에 걸린 플래카드에는 '번듯한 새집에서 살아보려 수십 년 기다리니 헐값으로 팔고 나가라고?', '상생하는 공공임대 찬성한다. 그런데 왜 개개인의 사유재산 강제수용해서 하나?', '소유주 쫓아내는 개발, 누구를 위한 건가?' 등 문구가 담겼다.

오 위원장은 "우리뿐만 아니라 이미 인근 다른 지역에서 비상대책위원회를 열었다. 불안 심리가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라며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대통령께 글을 써서 보내고 기자회견도 열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르면 국토부 장관이 공공주택지구를 지정할 수 있지만 동시에 변경, 해지도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가 지구지정 해지를 요청하는 건데, 정부로선 이번에 해지하면 다른 사업도 안 될까봐 강행하는 것 같다. 우리는 하소연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추진위에 따르면 현재 토지·건물주는 약 350세대로 지분공유자를 포함하면 630명 정도다. 한 세대에 4~5명이 지분을 공유하는 곳도 있다. 실거주자는 10%에 불과하다. 10%는 이곳에 오래 산 노인계층이고 대부분 1주택자이다.

16일까지 추진위는 주민의 66%에 달하는 의견제출서를 취합했다. 제출기한인 19일에 70%를 채워 낼 수 있지만, 처음에 제대로 된 공지가 없었고 설 연휴 기간 등을 근거로 연장 요청도 할 계획이다.

지난 8일에는 국토부장관, 서울시장, 용산구청장 앞으로 탄원서도 제출했다. 현재 추가로 연명부를 받고 있다.

이곳에서 20년을 살았다는 ㅈ 씨(67)는 "하루아침에 법을 만들어서 수용한다는 게 공산당과 다를 게 없다. 이전까지 사유재산은 기간을 두고 처분할 기회를 줬는데, 여기는 하루아침에 이러니 예전 북한에서 하던 짓 아니냐. 이게 어디 민주주의 법이냐. 이런 법은 없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어 ㄱ 씨는 "여기 공원을 보면 사람들이 그렇게 술·담배를 하는데 단속도 안 한다. 쪽방촌을 개발한다고 해도 결국 다시 슬럼화될 거다"라고 말했다.

▲ 동파 위험으로 사용이 금지된 야외 화장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단순한 주거 이동 외에 단지 활력 위한 대책도 마련해야


다수의 쪽방촌 주민을 이주 후 다시 입주시킨 뒤에도 문제다. 쪽방촌 주민은 소외된 이웃이고 사회적 보호와 관리가 필요하지만, 주변 주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기도 한다. 향후 쪽방촌 주민 위주로 거주하게 될 단지의 차별이나 치안 문제 등도 해결할 과제다.

인근 ㅅ공인중개소 대표는 "주민들이 민간으로 개발한다고 할 때는 남산 조망권 등을 이유로 규제하더니 공공에서 진행할 때는 40층까지 건물을 높인다고 하니 불공평하다"라며 "이번 사업에 토지주를 위한 대책은 부족하다. 토지주를 부르주아로 보는 건가 싶다. 보상을 해줘도 시세만큼 못 받을 가능성이 커서 다들 우려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ㅅ공인중개소 대표는 "쪽방촌 거주민을 위한 대책도 좋지만 청년을 위한 대책도 있어야 한다"라며 "5.7평이면 이곳 시세로 보증금 500만 원에 임대료 40~50만 원이다. 이를 보증금 183만 원, 임대료 3만 7000원에 제공하면 쪽방촌 주민은 좋아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러나 나머지를 위한 대책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ㅅ대표는 "쪽방촌 거주민들이 힘들게 사신 분들이라 안쓰러운 마음이 있지만, 주민들 입장에서도 청년들이 주택에 들어서야 활력이 넘칠 거다. 신혼부부, 청년들의 비율도 조절해서 적절히 분위기를 만들고 주거문제를 해결하는 게 좋은 방향일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이에 관해 쪽방 주민이 거주하는 공공임대단지에는 복지 시설을 설치해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재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소셜믹스를 위한 국공립 유치원, 도서관, 주민카페 등 편의시설도 설치할 계획이다.

▲ 노후화된 쪽방촌 뒤로 높은 건물들이 보인다.(사진=팝콘뉴스) © 팝콘뉴스


토지·건물주의 뜨거운 반발과 달리 실제 쪽방촌 세입자 반응은 크지 않았다. 이주나 개발에 무관심했고 설명이 부족해 보상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다.

이번 사업으로 쪽방 주민들은 면적은 기존 쪽방의 2~3배 넓은 18㎡에 월 임대료는 현재의 15% 수준인 3만 7000원(보증금 183만 원)으로 거주할 수 있게 된다. 순차적 정비를 통해 이주 수요도 최소화한다.

쪽방촌에서 9년째 살고 있는 ㅂ 씨(55)는 "개발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이주비가 나온다면 이주하고 안 나온다면 이주할 생각이 없다"며 "이후에 싸게 입주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재개발 이야기야 예전에도 계속 나왔는데 실제로 언제 될지 아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30년 넘게 쪽방촌에 거주하고 있는 ㅇ 씨(70)는 "보상된다고는 하는데 잘 모른다. 이사가는 사람한테 주지 않겠냐"며 구체적인 정보는 모른다고 밝혔다.

ㅇ 씨는 "안 벗어나도 된다고 그냥 살아도 된다고 하더라. 그냥 여기 살고 싶다. 어디로 이사할지도 모르고 그냥 살던 곳이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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