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퇴하는 양말 산업...협동조합으로 해법 찾을 겁니다"

▲ 양말공장 곳곳을 가득 채운 양말들. 국내에서 판매되는 국산 양말 세 켤레 중 한 켤레는 서울 도붕구에서 만들어진 양말일 정도로, 도봉구는 '양말의 메카'이다. © 팝콘뉴스


(팝콘뉴스=배태호 기자) 직장인이건 학생이건 평일 아침 시간 풍경은 대체로 비슷할 듯싶다.

자석처럼 내 몸을 끌어당기는 침대 혹은 요의 엄청난 힘을 겨우 뿌리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물 한 잔 마시며 정신을 차린다.

화장실로 향해 얼굴을 씻고, 부스스한 머리를 감고 출근 혹은 등교 준비에 나선다.

교복을 입는 학생들은 조금 덜 하겠지만, 사복을 입는 직장인에게 '오늘은 뭐 입지?'라는 생각은 '오늘 점심 뭐 먹지?'만큼 고민이다.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옷을 걸쳐보고 겨우 오늘 하루를 함께할 셔츠와 바지(혹은 치마)를 고른다.

그렇다면 온종일 내 발을 감싸는 양말은?

그나마 여성이라면 조금 더 신경을 쓰겠지만, 대부분 남성 직장인은 검은색 혹은 회색 양말(요즘은 화려한 색상을 즐기는 멋쟁이 직장인도 예전보다는 늘어난 것 같다)을 습관적으로 신는다.

우리 생활에 필수품이지만 너무도 익숙해 오히려 습관처럼 별생각 없이 꺼내 신는 양말 한 켤레.

누군가 문득 스쳐 지나가는 말로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거 알아요? 우리 발을 책임지는 양말 세 켤레 중 한 켤레는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만든다는 사실? 그리고 국내에서 파는 양말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대부분 국산이라는 사실?"

인건비가 비싸서 유명 브랜드 옷도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만들어 국내 시장에서 팔고 있는 상황인데, 값도 얼마 안 되는 양말을 국내에서 만들어 팔고 있다니?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IT 기술을 바탕으로 초고속 인터넷이 생활화되면서 4차산업을 이야기하는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양말 만드는 이들이 궁금했다.

그래서 수십 년째 대한민국 양말 산업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양말협동조합을 결성한 강대훈 서울도봉양말협동조합 이사장을 만나기로 했다.

"노·도·강 대신 대한민국 양말 산업 메카 '도봉구'로 알려지면 좋겠어요"

도봉구라는 지명이 귀에 익은 이들은 아마 부동산 뉴스를 많이 접한 분이라고 생각된다.

이른바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와 비교해 강북 3구 아파트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혹은 차이가 나는지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노·도·강(노원, 도봉, 강북)의 한 지역이 바로 도봉구이다.

또 도봉구는 지금 40대가 된 중년들이 어렸을 때 TV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국산 만화 '아기공룡 둘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뽀로로에 익숙한 아이들은 '아기공룡 둘리'를 알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캐릭터 산업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둘리는 대한민국 중년들과 어린 시절을 같이한 추억 속의 캐릭터이다.

▲ 서울 도봉구는 '아기공룡 둘리'의 고향이다. 그래서 지하철 4호선 쌍문역에는 개찰구를 나오면 가장 먼저 '아기공룡 둘리'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 팝콘뉴스

이를 증명하듯 서울도봉양말협동조합을 찾기 위해 내린 지하철 4호선 쌍문역에는 개찰구를 나서면 가장 먼저 '둘리'와 그 친구들이 승객을 반긴다.

서울 도봉구에서는 '아기공룡 둘리'만큼 유명한 것이 바로 '양말'이다.

대한민국에서 전통적으로 섬유산업을 이끌었던 곳은 대구이다.

그리고 산업화가 시작된 1960년대 이후 도시로 사람이 몰리면서 경기도와 서울에서도 노동집약적인 섬유산업이 붐을 이뤘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전태일 열사가 일했던 동대문 평화시장 일대가 서울의 의류 중심의 섬유 산업지역이었다면, 서울 외곽 도봉구는 양말 중심의 섬유 산업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다 보니 아직도 도봉구에만 250여 개에 달하는 양말공장이 운영 중이다.

특히 네 곳 중 한 곳은 운영한 지 20년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전 한창때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라지만, 그래도 여전히 도봉구에서 양말과 관련해 일하는 이들은 6천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8월 기준 도봉구 인구가 32만 8천여 명인 것을 고려하면 도봉구에 사는 55명 중 1명은 양말을 만들거나 혹은 유통하거나 직접 판매하는 일을 하는 셈이다.

서울 도봉구에서 40년째 양말공장을 운영하는 강대훈 서울도봉양말공장 이사장의 작은 바람은 그래서 '노·도·강 대신 대한민국 양말산업의 메카 '도봉구'로 알려지는 것'이다.

▲ 추석 연휴를 앞둔 9월 28일 오전 서울 도봉구의 한 양말공장 모습. 쉬지않고 일하는 노동자들의 바쁜 손놀림을 보면, 제조업 쇠퇴라는 현실 속에서 활로를 찾으려는 양말산업 현장의 절실함을 느낄 수 있다. © 팝콘뉴스

"IMF 당시 대한민국이 무척 힘들었을 때 양말은 오히려 잘 팔렸습니다"

지난 1980년 양말 만드는 일을 처음 접한 강대훈 이사장.

처음에는 대한민국 여느 아버지처럼 '먹고 살기 위해' 양말 만드는 일을 접했고,좋은 기회를 얻어 직접 공장까지 차려 운영하게 됐다.

한때 수십 대의 양말 기계를 운용했던 강 이사장은 '가장 양말이 잘 팔렸을 때가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IMF 당시'라고 대답했다.

IMF로 인해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외국기업에 한국산 양말을 값싸게 살 수 있다 보니 말 그대로 대한민국 양말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고 한다.

특히 대한민국 양말이 인기가 높았던 이유는 "염색 기술이 뛰어난 덕택이었다"고 강 이사장은 말했다.

또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건비가 올라 가격 경쟁력을 잃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산 양말이 국민 발을 책임질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강 이사장은 설명한다.

"중국산보다 원단이 좋고, 바느질 등을 꼼꼼히 해 오래 신을 수도 있지만, 색감 자체가 다르다"라는 강 이사장의 설명에서 국산 양말, 특히 도봉구 양말에 대한 대단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단순 제조업이 처한 현실처럼 양말 산업 역시 내일이 녹녹치 않다. 해가 지날수록 오르는 인건비가 부담이 되면서 언제까지 이런 자신감으로 양말 산업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강 이사장은 걱정이다.

▲ 서울 도봉구에서 40년째 양말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강대훈 서울도봉양말협동조합 이사장. 공장 화재로 올 한해는 직접 생산을 포기한 채 내년을 기약하고 있지만, 양말협동조합을 통해 양말산업을 지키고, 또 다른 활로를 찾으려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팝콘뉴스

"양말산업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래서 협동조합 결성을 고민했습니다"

자신의 공장 운영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대한민국 양말 산업을 지키기 위해 강대훈 이사장은 '협동조합'에서 답을 찾고 있다.

협동조합이란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인 조합원들이 제품 구매 및 생산, 판매, 소비 등의 일부 또는 전부를 함께 영위하는 조직이다.

일반적인 기업의 목적이 '이윤 추구'라면, 협동조합은 '조합원 권익 향상' 및 '지역 사회 공헌'을 목적으로 운영한다.

특히 일반 주식회사와는 다르게 출자 규모와 무관하게 조합원 누구나 평등한 의결권을 갖는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를 갖췄다는 점도 특징이다.

강 이사장은 '개인사업자가 참여할 수 없는 시장이나 판로 개척'과 함께 '뜻 있는 사업주들이 함께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주변 지인에게 협동조합을 제안했다.

강 이사장의 열정 덕택에 초기 조합원 7명으로 지난해 7월 서울도봉양말공장이 설립됐고, 현재는 협동조합을 통한 공익사업 실천과 함께 사업 확대도 고민하고 있다.

"OEM 줄면서 브랜드 양말 보기 어렵지만, 브랜드 없어도 품질은 그대로입니다"

대부분 양말 공장은 과거 의류 브랜드 업체의 주문자 생산 방식(OEM,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중국 업체보다 가격 경쟁력을 잃으며 이 같은 주문자 생산 방식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

이렇다 보니 자체 생산 제품을 판매할 루트(판로) 확보가 가장 중요한데, 과거에는 동대문과 같은 보세 시장에 생산량 60%를 팔았다고 한다.

아직도 전통시장이나 보세시장에서 볼 수 있는 브랜드가 없는 양말이 대체로 그런 제품인데, 브랜드 로고만 달지 않았을 뿐이지 품질은 다를 바가 없다.

"온라인 판매...거스를 수 없는 '대세', 전국 모든 곳을 판매처로 둬야죠"

요즘은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을 통한 판매가 훨씬 많다.

열 켤레 중 일곱 켤레인 70%가량이 온라인으로 팔리는데, 이렇다보니 서울도봉양말협동조합 역시 조합명을 딴 네이버 스토어를 개설해 인터넷으로 양말을 팔고 있다.

이곳에서는(네이버 스토어) 양말 소재와 디자인에 따라 싼 것은 한 250원, 비싸야 최대 천 원이면 양말 한 켤레를 살 수 있다.

남성용 정장 양말 열 켤레를 만 원이면 살 수 있는데, 3천 원 배송비를 포함하더라도 켤레당 1,300원이면 구입할 수 있고, 1만 5천 원(15켤레) 이상 사면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질 좋고 싼값의 양말을 살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다행스럽게 매출은 조금씩 좋아지는 상황이라고 강 이사장은 귀띔한다.

▲ 서울도봉양말협동조합 네이버 스토어 홈페이지 화면 © 팝콘뉴스

이제 협동조합 결성 1년밖에 안 돼 아직은 걸음마 수준.

협동조합을 통해 판매하는 양말은 별다른 브랜드없이 팔리고 있는데, 조합원들과 논의해 친근하고 쉽게 다가가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 판매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강 이사장은 협동조합을 통해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활동도 하고 싶다는 의지도 강하게 내비쳤다.

판매하고 남는 재고 중 일부는 조합원들과 상의해 지역의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겠다는 뜻이다.

여기에 수익이 나면 조합원들과 뜻을 모아 좋은 일에 쓰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협동조합...돈 보다는, 사람이고 정(情)이죠. 조금이라도 주변에 보탬이 되면 좋겠네요"

정부나 지자체는 협동조합 기본법에 의해 지역 내 크고 작은 협동조합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강 이사장은 우선은 '스스로의 힘'으로 협동조합을 꾸려나가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외부 조력을 통해 설립한 협동조합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자립'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자신들의 힘으로 경영을 유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협동조합을 통한 추가 수익 창출도 바라는 바지만, 이에 앞서 조합원 각자가 자신이 맡고 있는 공장 경영에 최선을 다하면서 개별적으로 하기 어려운 사회적 기여에 함께 힘을 보태고 싶다는 바람이다.

이윤을 등한시하지는 않겠지만, 이윤만을 좇지도 않겠다는 강대훈 서울도봉양말공장이사장.

강 이사장은 협동조합에 대해 "사람이죠. 그리고 정이죠. 각박한 사회에서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생활과 너무도 밀접하게 맞닿아있어 어쩌면 관심을 두지 못했던 양말 한 켤레.

강대훈 이사장의 소박한 바람은 '그 양말 한 켤레'처럼,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해서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냈던 공동체를 다시 복원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서울도봉양말공장이 그리고 도봉구에서 만들어진 양말이 서울시민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에게 한 걸음 더 친숙하게 다가서는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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