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칼럼] 5세 이상 아동에게 선거권과 투표권을 부여하자!

홍선기 편집위원 | 입력 : 2019/10/07 [09:55]

▲ 독일정치경제연구소 홍선기 연구위원(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법학박사)     ©팝콘뉴스

(팝콘뉴스=홍선기 편집위원ㆍ독일정치경제연구소 공법 및 인권법 연구위원)

 

- 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아이들을 위해 촛불이나 태극기를 들지 않는가? 

또 한 아이가 죽었다. 그것도 맞아 죽었다. 5살짜리 어린아이가 25시간동안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목검으로 무참히 맞아 죽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맞아 죽는 순간까지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듣도 보도 못한 아프리카 어느 국가의 내전에서 발행한 사건이 아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죽어가야 하는가? 슬픔과 분노가 주기적으로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SNS와 언론에서는 법무부 장관 임용과 관련된 내용만 끊임없이 보도된다. 우울감과 무기력함 그리고 죄스러움이 참 힘들게 하는 요즘이다. 

 

최근 법무부 장관 임용과 관련해서 서초동에서 200만 명이 모였다는 둥, 광화문에서 300만이 모였다는 둥의 이야기가 들린다. 진보든 보수든 그들이 촛불이나 태극기를 들고 광장에 나온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지금 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정작 우리 아이들은 맞아 죽고 있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정 개인의 표창장 위조 여부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인파들이 거리에 모여들었는데 더 이상 맞아 죽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촉구하는 집회 시위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전에도 그러했다. 묻고 싶다. 사문서 위조 여부가 맞아 죽어가는 아이들보다 그렇게 더 중요한 이슈인가? 정작 우리는 더 이상 이 땅에서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이 적어도 맞아 죽는 일은 없도록 촛불이나 태극기를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아이들을 위해 촛불이나 태극기를 들지 않는가? 

 

- 거대 담론보단 작은 선의가 희망이다. 

소설가 천명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거대 담론보다는, 도시락 안 싸온 친구를 보면 ‘내 도시락을 반으로 나눠 먹지’ 생각하는 작은 선의가 유일한 희망이에요. 혁명 안 해봤나요? 다 해봤지만 역사는 언제나 대학살로 마감되잖아요.” 

 

어찌 보면 지금의 상황에 가장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언론에 언급되는 거대담론 보다는 주위에서 학대당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는 작은 선의가 절실한 때는 아닌가? 

 

필자가 독일에서 유학할 때 두 딸이 태어났다. 독일에서는 소아과 병원이 마치 주치의 시스템처럼 되어 있어서 당사자들이 지정한 병원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오랫동안 꾸준히 다니게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딸아이가 크고 작은 병치레를 할 때마다 한 병원을 다니게 되어 소아과 의사는 마치 주치의처럼 우리 딸의 병력을 비롯한 주변 상황을 전부 알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우리 부부는 아이의 성장검사를 위해 일정 기간이 되면 주기적으로 병원에 들러야 했다. 이는 법적으로 강제되어 있었다. 당시 ‘스트로마이어’라고 불린 그 의사는 아프리카에서 2년 이상 봉사한 경험이 있는 매우 멋진 노년의 신사였다. 항상 부부가 같이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오는 모습을 좋게 보아주시던 친절한 분이었다. 하루는 성장검사를 위해 우리부부보고 나가서 기다리라고 하더니 검사를 마친 후 들어오라고 했다. 분위기는 평소와는 달리 매우 심각했다. 순간 혹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의사는 아이에게서 이 전에는 못 보던 큰 멍이 발견되었다면서 마치 수사관처럼 매의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며 해명을 요구했다. 학대여부를 추궁하는 것이었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발견한 커다란 멍은 바로 ‘몽고반점’이었다. 오해를 풀고 나서 그는 다시 그 이전의 푸근한 미소와 눈빛으로 미안하다며 사과 했다. 이 사건을 겪고 나서 독일에서는 아동학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인지하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주기적으로 아이의 성장검사를 법적으로 강제하면서 기형을 비롯한 난치병으로 갈 가능성을 조기발견해서 치료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학대여부를 의사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실지로 학대정황이 발견되면 바로 청소년청(Jugendamt)에 신고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면 청소년청(Jugendamt)은 즉시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필요한 모든 수단과 방법(가정방문, 면접조사 등)을 이용하여 사실을 조사할 수 있다. 이는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를 돌보다가 학대정황을 발견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조사 결과 가정법원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청소년청(Jugendamt)은법원에 개입을 요청하고 법원 역시 즉시 아동보호에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비단 의사나 어린이집 교사뿐만 아니라 아동학대의 정황이 있는 경우에는 어느 누구나 가정법원에 그 사실을 통지할 수 있으며, 가정법원은 직권으로 절차를 개시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문화 차이로 인한 손찌검으로 아이를 아동보호시설로 빼앗긴 터키계 부모들이 친권을 회복하기 위해 법적인 소송을 심심치 않게 제기하곤 했다. 

 

- 아이들에게 선거권과 투표권을 부여하자. 

이미 2016년 인천에서 4 살배기 딸을 40시간동안 굶기고 철제 옷걸이로 때려 죽게 한 20대 엄마가 구속된바 있었다. 이처럼 통계에 의하면 아동학대의 80% 이상이 부모에 의해 자행된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학대당한 아이가 아동보호시설에 잠시 있다가 결국은 다시 친권자라는 이유로 다시 부모에게 되돌아간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대당해도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그저 어른들의 처분만 바라보아야 한다. 더구나 우리는 애들이 지속적으로 죽어나가도 아동학대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대책도 미흡하다.

독일에서는 2000년 대 중반 이후 3건의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크게 사회이슈가 되어 큰 폭의 법 개정으로 이어졌고 이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아동 학대방지를 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에 우리사회에서는 계속적으로 충격적인 아동학대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간단하다. 정치권이 아동학대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 역시 간단하다. 애들은 투표권과 선거권이 없기 때문이다. 표가 되지 않는 아이들에게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다.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답은 있다. 어차피 어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직접 해결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에게 선거권과 투표권을 부여하자. 5살 이상이 되어 한글만 읽을 수 있다면 이들이 직접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기회만이라도 만들어 주자. 나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인줄 안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지금의 현실을 보면 이 방법 외에는 답이 없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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