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이해하는 순간,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팝콘뉴스=이강우 기자)150년이 더 지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니체의 말이 '을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 순간, 철학은 시간과 학문이라는 장벽을 훌쩍 넘어 2019년의 대한민국을 사는 이들의 마음을 열어젖힌다.

▲ '을의 철학' 송수진 저, 2019년 3월© 한빛비즈

저자 송수진은 30대 중반.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학부 시절 행정을 전공했지만 제대로 써먹은 적은 없다.


대학 졸업 후 알 만한 중소기업을 전전하며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서른 즈음 무역회사에 들어갔지만 금융사기를 당해 모은 돈을 다 날렸다.


이후 틈틈이 알바를 하며 세무사 준비를 하다가 도서관에서 해야 할 공부는 안 하고 철학책을 붙잡기 시작해 사회복지 분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현재는 사회복지사, 특히 청소년 상담사로 활동 중이다. 뒤늦게 철학과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을의 철학'에 등장하는 사례는 저자의 실제 경험담이다.

20대의 저자는 식품 판촉 사원으로 길거리에서 시음을 권하고, 본사(갑)에서 파견한 영업사원으로 점주(병)에게 밀어내기를 강권하고, 다니던 회사에서 푼푼이 모은 돈을 금융사기로 날려버린 '을'의 삶을 살았다.

당연하다는 듯 시련이 찾아올 때마다 큰 위안이 된 것이 바로 철학이다.

'을의 철학'에 등장하는 좌절은 모두 사실이고 적용된 철학은 매우 구체적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힘겨운 삶을 살아내는가'를 뜨겁게 고민하는 이 시대 모든 '을'에게 차가운 이성을 처방하는 책이 될 것이다.

저자는 '자본론'을 읽으며 얘기한다.

"마르크스는 '을'로 살아온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그의 텍스트는 내 정신을 관통했다.
온 몸에 고압 전류가 흐르는 기분이었다.
일순간 체기가 내려간 기분, 막혔던 하수관이 뻥 뚫린 기분, 가슴속에 울린 '뭐지!'라는 외마디는 의문이 아니라 충격에 휩싸여 절로 터진 감탄사였다."


학교가 아닌 책으로 철학 공부를 시작한 저자에게는 학문적 계보를 이어야 할 의무도, 그럴 만한 스승이나 선후배도 없었다.


덕분에 철학을 형이상학적 접근이나 학문적 독해가 아닌 '을의 언어'로 해석할 수 있었다.


철학이 밥이자 물이고 목숨이었던 다급함이 만들어낸 삶의 언어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사고를 알게 된 후로는 '생각뿐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바로 사회 복지와 철학 관련 공부를 시작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철학은 알려준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실은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일, 내가 철저하게 길들여져 왔음을 깨닫는 일, 이런 자각들은 저자의 삶과 철저하게 연관된다.


'진짜'라는 명제가 붙으면 원래 삶은 아프기 마련이다.


철학은 결국 세상을 보는 나만의 관점을 형성한다.


스스로를 향한 검열과 증오를 멈추게 하는 것도, 나를 둘러싼 세상을 해석하고 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결국 나의 철학이다.

그렇게 나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비로소 주변의 타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내 곁을 스쳐 가는 모든 이들의 삶 역시 그들의 철학 안에 있다.


니체, 마르크스, 스피노자, 비트겐슈타인...과거의 저자는 이들을 알지 못했고, 알 필요도 없었다.


이들과 저자의 삶은 너무나 동떨어졌다고 여겼다.


그러나 저자가 그렇게 아팠던 건 20대 전반을 지배했던 철학의 부재였다.


그들이 겪은 고뇌를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어제와는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철학을 알고 난 후 저자의 삶은 다정해졌다.


우리를 구속해 온 모든 것에 대해, '을의 철학'을 통해 독자들의 삶을 새롭게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을의 철학'에는 절망적인 현실과 끝없는 자기 검열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읽다 보면 자꾸만 희망이 생겨난다.


지금 '나는 왜 이토록 힘겨운 삶을 살아내는가'를 고민하고 있다면, 독자들은 그 해결책을'을의 철학'을 통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키워드

#을의 철학
저작권자 © 팝콘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