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물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심리적 요인 우려 더 커


(팝콘뉴스=최한민 기자)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가 리디노미네이션을 언급하면서 화폐 개혁에 대한 논의가 수면위로 올라왔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 이 총재는 “정치권에서 먼저 논의해야 할 사안이지만 (화폐개혁의) 필요성에는 동감한다”라고 답했다.

지난 2015년 국정감사에 이어두 번째로 밝힌 공식적인 답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물가 상승으로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는 화폐 단위도 점점 커지는데 국가가 이를 조절하기 위해 화폐 단위에서 0을 떼 조절하는 것이다.

요즘 이해하기 쉽도록 예를 들자면 카페에 35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 가격을 3.5로 명시해 놓은 것과 일부 중고거래사이트를 통해 6만 원에 판매할 축구화를 6.0으로 명시한 것처럼 화폐 단위를 줄이는 것이다.

리디노미네이션으로 인해 계산이 간편해지고 서류나 장부상 기재가 편리해진다는 장점도 있는 반면 한 켠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게 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과거 화폐 개혁의 역사를 통해 부동산 가격의 변화를알 수 있다.

화폐개혁은 경기 안정 등의 목적으로 정부가 화폐를 통제해 그 가치를 조절하는 것으로 우리나라는 건국 후 두 번의 화폐개혁이 시행됐었다.

6.25사변 직후1953년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의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해 기존 100원을 1환으로 바꾼 첫 화폐 개혁과 1962년 긴급통화조치법 시행과 함께 환 단위를 원으로 교환한 것이 두 번째다.

1953년 8월 11일자 경향신문에는 ‘부르는 게 시세’라는 제목으로 “휴전조인전에는 (서울의 집값이) 헐한 값으로 매매되더니 조인 후 내 논 집이 생기면 곧 이십여 명의 경쟁자가 붙게 돼 판매가격은 날개 돋쳐 껑충껑충 등귀한다”라고 보도했다.

당시 2월 화폐개혁 이후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까지 서울의 인구는 어림잡아 20만 명이 늘었으며 생필품의 물가도 폭등해 일부 현금이 많은 사람들은 여러 채의 집을 현물로 소유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또 박정희 정부가 지하경제의 돈을 끄집어내려고 시행했던 두 번째 화폐개혁 직후에는 돈의 가치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63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통화개혁 전엔 십 환짜리 한 장만 주면 좋아라했지만 지금엔 백 원을 준다 해도 그다지 좋은 소리를 못 듣는 요즘이다”라고 보도했었다.

박 대통령의 경제개발 계획으로 대한주택공사가 출범하며 서울 여러 지역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건설하면서 대형아파트 단지의 공급을 늘려 주택은 늘어났지만 투기로 변질되면서 부동산 공화국을 양산하는 꼴이 됐다.

1963년부터 1977년 사이 주거지역 지가는 서울 전역에서 87배 상승을 가져왔고, 1970년대 초반부터 강남을 필두로 하는 투기 열풍을 이끌었다.

돈보다는 부동산이나 기타 현물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큰 득을 본다는 인식이 팽배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현물의 가치는 화폐의 가치로 평가할 수 있지만 화폐개혁으로 한 단계 거친 부동산 등 현물은 그 가치의 유동성이 적고 안정적이기 때문에 상대적 가치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또 심리적 요소도 무시하지 못하는데 1천 원을 1원으로 화폐개혁을 한다는 가정하에 현재 10억 원의 아파트를 비교해보면 100만 원이 된 아파트는 체감상 저렴하게 느끼게 된다.

따라서 10억 원 아파트가 11억 원으로 오르기는 쉽지 않아도 100만 원 아파트가 110만 원 되는 것은 오히려 저렴하게 느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부동산 업계도 임금이나 소득의 실질 가치는 변화 없는데도 명목 단위가 오르면 이들이 증가했다고 받아들이는 ‘화폐 환상’ 또는 ‘화폐착각’ 등의 용어로 화폐개혁이 부동산 가격 상승을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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