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래 가장 완벽한 러시아 소설!

(팝콘뉴스=이강우 기자)악의적인, 그러나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 '찌질한 악마'는 러시아 제1세대 상징주의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작가로 꼽히는 표도르 솔로구프의 대표작이다.

▲ '찌질한 악마' 표도르 솔로구프 저, 2019년 2월 ©새움출판사

러시아 상징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표도르 솔로구프는 국내에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1907년 그는 이 작품 '찌질한 악마'를 출간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러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작가가 됐다.

국내에서는 영역판의 제목을 번역한 '작은 악마'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러시아 문학비평가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미르스키는 그의 책 '러시아 문학사'에서 영역판의 제목보다는 불역판 제목이 더 정확하다고 평했다.

이러한 점을 수용해 '작은 악마' 대신, '찌질한 악마'를 제목으로 출간하게 됐다.


'찌질한 악마'에 등장하는 '페레도노프'는 미덕이라고는 한 점 찾을 수 없는 아주 불괘한 인물이다.

그는 자기애에 흠뻑 빠져 있으면서도 타인에게는 무관심하며, 그들을 자신의 성공과 쾌락을 위한 도구로 취급한다.

교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의 거짓 잘못을 일러바치고는, 아이들이 회초리로 맞는 모습을 즐기는 가학적 취미를 가지고도 있다.

그는 거짓말과 발뺌을 밥 먹듯이 하고도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그의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소동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 세상이 그를 이해해주지 않고 적대시하기 때문인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극적인 출세에 모든 희망을 걸지만 스스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

동료와 이웃에게 호인인 척하면서 속으로는 그들의 행운과 성공을 시기해 함정을 판다.

다른 사람의 충고와 조언은 모두 자신과 자신 권위에 대한 공격이라 여겨 증오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즐기면서도 복수를 당할까 두려워한다.

그는 누구 하나 믿는 법 없이 주변인 모두를 의심하다 마침내 환각과 망상에 시달린다.

작가는 말한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잠재해 있는 어두운 측면, 악마적인 부분을 드러내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저는 이러한 인간의 측면을 좋아하거나 부추기려는 게 아니라, 그 부분을 솔직하게 꺼내 놓고 인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부인하고 외면하고 싶어 하는 그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야만 밝은 빛을 쬘 수가 있는 법입니다."

'찌질한 악마'에서 페레도노프의 이야기와 함께 또 하나의 축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류드밀라라는 여인과 사샤라는 소년의 사랑 이야기다.

루틸로프가의 밝고 쾌활한 셋째 딸 류드밀라는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확고한 자신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인 사샤가 어린 남학생이라는 사실에 도덕과 욕망 사이의 무시무시한 충돌을 경험한다.

그러나 신화에 등장하는 요정처럼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품은 사샤에게 류드밀라는 벌이 꽃을 향하듯 자연스럽게 이끌린다.

그리고 사샤 역시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류드밀라에게 선망과도 같은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

태초의 모습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러시아의 풍광 속에서 본능적 애욕에 몸을 내맡기는 그들의 모습은 어둡고 질척한 '찌질한 악마'의 분위기 중 유일하게 싱그럽고 산뜻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감각적으로 서술되는 두 사람 사이의 장면과 대사는 '찌질한 악마'의 또 다른 백미로 손꼽을 만하다.

이들 두 사람처럼 자연의 축복을 받은 인간 존재가 모든 허식을 벗어나 디오니소스적 해방을 만끽하는 그 순간을, 어쩌면 솔로구프는 탈출구로서 제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번역은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고리키 세계문학연구소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모스크바 교육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대위의 딸', '암 병도' 등을 옮긴 역자 이영희가 맡아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가독성 높은 문장을 선보인다.

작품 속에 언급되는 러시아 문화, 문학, 문인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상세한 설명을 붙였으며, 작가 솔로구프를 더욱 깊숙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해설을 '작가와의 대화' 형식으로 수록했다.

페레도노프에게 불쾌한 감정을 느끼다가도 어느 순간 불쌍하게 생각되는 것은, 아마도 그에게서 나와 내 주변 사람들 모습을 발견하고 동질감을 갖게되어서일 것이다.

독자들도 문학비평가 드미트리 미르스키의 말처럼 '도스토옙스키가 사망한 이래 가장 완벽한 러시아 소설'인 '찌질한 악마'를 통해 저자가 제시하는 악의 세계에서 탈출하는 방법에 대해 같이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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