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구분을 기독교에서 불교관으로

▲ 신흥 종교 비리를 쫓는 종교문제 연구소 박 목사는 사슴동산(녹야원)이라는 새로운 종교단체를 조사하던 중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출처=네이버영화). ©팝콘뉴스

(팝콘뉴스=이지은 기자) 악마라도 욕심과 집착을 버리면 부처가 될 수 있고, 깨달음을 가진 자여도 욕심과 집착이 생기면 어느 순간 악마가 될 수 있다.

1999년 한 시골 마을에서 두 여자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있었다.

뱃속에 있는 쌍둥이 언니는 동생 금화의 다리를 물어뜯었고, 기괴하게 태어나 모두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언니 ‘그것’과 온전치 못한 다리로 ‘금화(이재인)’가 태어났다.

16년 후, 그것은 호적에 등록되지 않은 채 창고 안에서 지냈으며 짐승의 모습을 하고 악한 기운을 퍼뜨려 항상 우는 소리를 내면서 살았다.

신흥 종교 비리를 쫓는 종교 문제 연구소 ‘박 목사(이정재)’는 사천지왕을 모시는 사슴동산이라는 새로운 종교 단체를 조사하던 중 영월 터널에서 여중생이 사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쫓던 경찰과 우연히 마주친 박 목사는 사슴동산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하지만 터널 사건의 용의자는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자살하고,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던 정비공 ‘나한(박정민)’은 16년 전 태어난 쌍둥이 동생 금화를 쫓는다.

금화의 집에 도착해 그녀를 찾지만 창고 안에서 이상한 낌새를 챈 나한은 창고로 다가가 ‘그것’과 처음 마주하게 된다.


선악의 기준을 종교로 반전


▲ 박 목사와 그의 후배 해안 스님은 신흥종교 '사슴동산'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출처=네이버영화). © 팝콘무비


이 영화는 기독교와 불교관 모두 등장하며, 각각의 종교관은 영화의 스토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1899년에 태어난 김제석은 ‘육손’을 가지고 태어나 생로병사를 초월해 불로장생으로 활불했고,살아있는 부처의 경지에 올랐다.

그후, 그의 활동은 단순한 종교적 영역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독립군을 지원하거나 빼앗긴 유물을 회수하는 등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확장됐다.

하지만 해방 이후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국민들의 지지가 높은 김제석이 정부에선 눈에 가시였고, 몇몇 정권의 정치적인 문제로 그의 활동을 위축시켰다.

김제석은 종교적 지위를 내려놓고 사회 환원 활동에 집중했으며, 욕망으로 인한 정지척 탄압에도 그는 집착과 욕망을 갖지 않고 살아있는 미륵으로서 중생 구제에 집중했다.

하지만, 김제석은 1985년 티벳 밀교의 대승이자 예언가 스님인 네충텐파에게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에 당신을 죽일 존재가 당신의 고향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들은 뒤부터 생에 대한 집착과 욕심에 사로잡힌다.

김제석은 자신의 죽음을 막기 위해 사슴동산(녹야원)을 만들어 자신을 보필하고 지킬장군이 필요해 소년원에서 수감하고 있는 4명의 소년범을 충실한 수족으로 포섭하기 위해 그들에게 거대한 종교적 구원을 제시한다.

소년범을 양아들로 데려와 영월(김제석의 고향)을 중점으로 동서남북에 사천지왕(4명의 양아들)을 위한 네 개의 법당을 만들어 그들에게 “너희들은 비록 부모를 죽인 짐승이지만 하늘의 뜻을 이룬다면 부처가 돼 신으로 승천할 수 있게 네 개의 법당에 신도들이 섬겨줄 것”라는 명분을 제시했다.

그들에게 한낱 소년범에 불과한 자신을 위대한 신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을주는 장치로 네 개의 법당을 만든다.

그들에겐 81명의 뱀, 즉 영월에서 태어난 1999년생 여자 아이를 모두 사살하고 부처로 환생하라는 임무를 준다.

기독교는 악은 변할 수 없으며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나, 불교는 그와 반대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불교는 짐승같이 태어나도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고, 깨어있는 자도 욕심과 집착이 생기면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불교의 고정된 선악이 없는 ‘연기론’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연기론설을 반영한 대사 중 “이것이 태어나면 저것이 태어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는 땅에 지렁이가 존재하면 하늘에 이것을 잡아먹는 매가 존재한다는 순리적 현상을 말한다.

이 우주 삼라만상에는 모두 이러한 순리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집착하거나 욕망해선 안 된다.

우주의 법칙은 살아있는 부처 김제석이 설사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연기설에 의한 1999년에 태어난 존재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면 김제석은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김제석은 삶에 대한 욕망과 집착에 사로잡혀 스스로 미륵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진리를 거부해 더 이상 부처가 아니게 된다.

반면에, 그것은 영화 초반부터 짐승의 모습과 행동을 했으며, 악의 기운을 퍼뜨려 동네의 가축을 죽이는 등의 ‘악’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나한이 금화의 집에 찾아오고, 그것은 그를 불러들였다.

혼란스러운 나한은 결국 그것을 죽이려 하지만, 그것은 부처가 돼 나한에게 세 가지 수인(지혜의 지권인, 눈을 밝히는 시무외인, 모든 악마를 굴복시키는 항마촉지인)을 통해 ‘지혜를 얻고 진실에 눈떠라, 그리고 악마를 굴복시켜라’라는 깨달음을 준다.

나한은 아라한의 줄임말이며,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경지에 도달한 자를 뜻한다.

나한은 악인으로 묘사되는 듯하나 진실을 깨닫고 변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은 익숙한 기독교식 관점으로 관객들에게 선과 악을 판단하게 흘러가고, 후반부로 가면서 그와 반대의 상징인 불교적 관점으로 반전을 선보인다.

그 반전은 신이라는 것은 존재의 유무가 불확실한데, 그렇게라도 의지하려는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메시지를 준다.


영화 속 복선과 상징


▲ 그것의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한은 불안해 하고 있다(사진=네이버영화). © 팝콘무비


영화 속 선악의 관점이 뒤바뀌는 장치는 대표적으로 그것을 수호하던 ‘뱀’이다.

뱀은 중반부까진 순수한 악을 상징하는 기독교식 뱀의 이미지였는데,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좌선을 든 부처를 지키고 있던 수호자 뱀의 이미지를 가져와 반전을 주고 있다.

기독교 문화에서 뱀은 마귀와 간사함, 교활함을 상징하지만, 불교의 경전에서 뱀은 ‘수행’의 긍정적인 의미로 비유된다.

또한, 영화 속 자주 등장하는 사슴은 우리나라 토속신앙에서 십장생 중 하나로 꼽히는 동물이며, 영원한 삶을 사는 10가지 영물들 중 하나인 동시에 석가모니가 부처로 거듭난 장소를 상징해 김제석의 영생과 부처 됨에 대한 이중적인 욕망을 잘 드러내주는 동물이다.

창고에서 금화의 쌍둥이 언니를 처음 목격한 광목이 그 후 김제석의 녹야원으로 찾아갔을 때 눈밭에 한 마리 사슴이 죽어있는 장면이 연출돼 있다.

김제석이 영화 안에 최초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본인의 상징으로 내세운 영생의 동물 사슴이 죽어있는 모습은 김제석 역시 영생에 실패할 것을 암시하는 복선이다.

쌍둥이 자매의 탄생일은 5월 22일 석가탄신일이며, 어머니는 출산 일주일 뒤에 사망하는데 이는 부처의 어머니 ‘마야’와 부처를 낳고 일주일 뒤에 사망하는 것과 동일하다.

영화 내에선 김제석은 커다란 코끼리를 집안에 데리고 있는데, 불교에서 코끼리는 부처를 상징한다.

김제석이 코끼리를 총으로 쏜 것은 ‘불법’을 버리고 악으로 돌아섰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 속에서 옛 승려들이 왕에게 코끼리를 선물하던 일화를 설명하는데, 코끼리 눈을 보고 공포를 느끼면 마음이 악하다는 증거니 매일 들여다 보라는 이야기를 한다.

김제석은 코끼리가 두렵지 않은 나한에게 “너는 왜 코끼리의 눈이 두렵지 않냐”고 묻는다.

코끼리 소재로 김제석은 악한 마음으로 완전히 돌아섰으며, 총으로 겨눈 것은 불법을 버렸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박 목사와 고 전도사는 성탄절을 즐기는 거리의 사람들을 보면서 암울한 이야기를 꺼낸다.

동방박사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유대인의 왕 예수의 탄생을 예언하고, 이에 헤롯왕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영아들을 학살한다.

이를 모티브로 ▲동방박사의 예언은 티벳스님의 예언 ▲헤롯왕의 유아 학살은 김제석의 소녀 학살 ▲헤롯왕의 병사들은 김제석의 사천왕으로 표현됐다.

장재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위한 수많은 유아들의 학살이 과연 옳은가’와 동시에 ‘신은 왜 잔혹한 살육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건가? 과연 그것이 신인가? 신은 존재하긴 하는 건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과감하게 던지고 이러한 감독의 생각을 ‘박 목사’라는 캐릭터 안에 감독의 생각을 투영한다.

박 목사는 가짜 김제석을 만나고 엄청 실망하는 모습을 통해 가짜를 쫓지만 사실 진짜를 쫓아 만난다면 불합리한 세상을 따지고 싶은 모습을 보여준다.


비하인드 스토리


▲ 지난 13일 '사바하' 기자회견 중 눈물을 보인 장재현 감독(출처=Vstar 유투브 갈무리) © 팝콘뉴스


무당과 박 목사는 고가의 외제차를 몰고 명품을 좋아하며, 문어 스님은 6천 원짜리 음료를 보고 실망하는 모습이 비춰진다.

장재현 감독은 종교인들의 허영적 모습을 비판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지만, 인터뷰에서 그런 모습이 되려 인간답다고 생각해 종교와 관련해 보수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반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박 목사와 고 전도사는 차 속에서 이야기를 하던 중, ‘해외에서 일가족이 선교활동하러 갔는데 어린 아이에게 모두 살해당했다. 그 아이는 이 모든 게 신의 뜻이라고 하더라. 우린 개미처럼 땅에 붙어서 개x랄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말한다.

이 대사는 신을 믿는 신앙인이지만 신에 대해 회의적인 마음을 볼 수 있다.

장재현 감독이 아프리카에서 활동 중 선교사로부터 알게 된 실제 이야기며, 선교사의 친구가 남아공으로 선교활동 중 그곳에서 자신이 지원해 주던 아이들에게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고 했다.

장재현 감독은 모태신앙에 기독교이며 유신론자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 신에 대한 ▲불만 ▲부조리 ▲원망 ▲탄식을 느껴 그러한 감정을 ‘박 목사’라는 캐릭터 안에 반영했다.

특히 영화 속 코끼리는 섭외가 너무 힘들어 CG로 만들어졌으며, 나한이 잘 때 천장에서 나타난 소녀 귀신들은 실제 배우들이 분장해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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